서울 상권이 불황형으로 변모하고 있다. 강남과 대형 상권의 월 임대료는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는 반면 강북권 골목상권의 임대료만 상승세를 유지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서울 상권 월세 임대료(호가·보증금 제외 1층 기준)는 1㎡당 3만3700원으로 지난 2분기 대비 1.8% 가량 올랐다. 내수 경기 회복세가 부진한데다 유커를 포함한 외국인 관광객 유입이 주춤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대형 오피스가 있는 강북 '회식상권'과 강남 상권이 이른 겨울을 맞은 반면 소규모 청년 창업과 '아날로그 소비계층'을 끌어안은 강북권 골목 상권은 활기가 지피는 모양새다.
상권별 사정은 제각각이다. 강남 대표 상권인 신사(-4.8%)·압구정(-2.0%)·강남역(-7.5%) 일대는 중국인 단체관광객(유커·遊客) 급감에 따른 매출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임대료가 내려간 반면 한산한 분위기는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강남 삼성역(0.9%)과 강북 종각역 상권(12%)은 임대료가 올랐다. 신사·압구정·강남 일대의 경우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권리금이 평균적으로 1억5000만원 선을 오가던 가게들이 무권리금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공실이 이어지자 몸값을 낮춘 반면 인근 대기업 등 회사를 배후로 둔 회식 상권으로 꼽히는 삼성역·종로 일대에선 월세 임대료 수준이 높은 가게들이 재계약에 실패해 줄줄이 매물로 나오면서 기존 시세를 끌어올렸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가로수길에 이은 '세로수길'로도 유명세를 떨친 신사역 일대에선 지난해 말 메인 상권 50㎡면적의 1층 가게가 권리금 1억7000만원, 보증금 4000만원에 월세 330만원에 나왔지만 현재는 같은 면적·층 가게가 무권리금, 보증금 3000 만에 월세 300만원인 매물들이 나온다. 삼성역의 경우 오피스 상권 상주직원을 대상으로 한 1㎡당 월세 10만원 수준의 대형 식당들이 매물 대열에 합류했다. 종로는 특히 시세가 높은 인사동 상권을 비롯해 인근보다 시세가 비싼 오피스 권역 가게들이 줄줄이 매물로 나오면서 기존 시세를 끌어올렸다. 인근 공인중개업계에 따르면 종각역 일대의 경우 1층 80㎡정도 기존 식당 매물이 무권리금·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650만원 선이지만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오피스 권역에서 3분기 이후(이후이므로 3분기 포함임) 나오는 같은 규모·1층 식당 매물은 무권리금·보증금 1억1000만원에 월세 970만원 선으로 시세가 더 높다. 인사동은 면적25㎡에 1층 매물이 권리금 1억5000만원·보증금 1억5000만원에 월세 500만원 선이다.
강북 종로·마포권역 골목 상권은 임대수요가 늘면서 월세가 올랐다. 가게들이 줄줄이 폐업하는 종로 인사동과 달리 익선동 한옥마을 골목은 최근 2년 사이에 상권이 형성되고 유동인구가 늘었다. 가게를 빌려 창업하려는 청년들과 투자자들이 동시에 몰리면서 매매는 3.3㎡당 4000만~5000만원, 임대는 1㎡당 6만~7만원 선이지만 매물이 부족해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이 나온다.
마포구에서는 '망리단길'로 유명한 망원동이 3분기 1㎡당 월 임대료 3만5500원으로 2분기 대비 2.5% 올랐고 '당인리 발전소 카페거리'가 있는 합정과 '연트럴파크'로 인기를 얻는 연남 상권도 각각 13.1%, 1.2%씩 올랐다. 유커 감소로 부진하던 홍대 상권은 보합세를 유지 중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대학가인 신촌과 이대는 3분기 월 임대료가 각각 5.7%, 2.4%씩 올랐지만 불황형 단기 창업 임대가 늘어난 결과라는 분석이다. 신촌 일대에선 '인형뽑기·오락실'등 월세가 비교적 싼 단기 임대매물이 계약을 마친 결과 비교적 시세가 높은 매물들이 남아 평균치가 높아진 측면이 있다. 반면 이대 일대나 종로의 북촌같은 경우는 장기 공실 속에 임대료가 높은 가게들마저 매물로 나오면서 평균 시세가 높아졌다.
김민영 부동산114선임연구원은 "SNS를 중심으로 한 복고풍 소비계층을 등에 업은 골목 상권은 당분간 인기를 이어갈 것"이라며 "현재 4분기의 경우 성탄절과 연말 특수가 있는 계절적 성수기인 만큼 대형 상권도 활기를 띨 가능성도 있지만 대북 리스크를 비롯해 내수 진작을 위한 동력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려워 상권별로 분위기가 엇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임대료 변화 방향이 엇갈리는 만큼 세입상인의 입장에서는 현장 파악이 필수적이다. 청년 창업이 이어지는 망원동의 경우 평일 영업이 활발하지 않아 가게 손바뀜이 잦은 편이고 연남동 일대에서는 예전의 상수동 만큼이나 시세 상승세가 가파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으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시행령(이하 시행령) 개정에 따라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이 10년까지 늘어나게 되지만 한국은행의 올해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흔한 창업 업종인 '음식점·숙박업'의 생존
투자자 입장에서는 수익률 측면에서 연내 환산보증금 기준과 상가임대료 인상률이 어떻게 조정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법무부는 연내 환산보증금(보증금과 월세환산액을 더한 금액으로 상가임대차보호법의 적용 범위를 결정하는 기준)을 올리고 상가 임대료 인상률 상한을 낮추는 등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시행령을 개정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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