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플라이언스팀의 의결권을 담당하는 여직원 한 명이 2월 말부터 매일 야근하다시피 했는데도 아직 의결권 공시 정리도 못했습니다."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지난 두 달간 패닉 상태에 빠졌다. 전년도에 불과 20~30개 기업 주총에만 의결권을 행사했던 운용사들이 올해는 100개 이상의 기업을 커버하면서 일손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 한 기업에서 주총 안건을 5개씩만 낸다고 해도 100개 기업이면 처리해야 할 안건이 500개가 넘는 셈인데, 3월 한 달 동안은 매주 금요일 주총이 100곳 이상 몰리면서 업무량이 폭주한 것이다.
결국 일부 운용사 중에서는 의결권 행사 지침을 내부적으로 만들어놓고 이 조건에 따라 기계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한 회사도 나타났다. 일년 내내 의결권만 들여다보는 직원을 신규 채용하지 않는 한 대형 운용사들도 직원 1~2명이 이 일을 맡고 있는 건데 한 기업에 과도한 시간을 쏟을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반대 의견=적극적 의결권 행사'로 인식되면서 일단 반대표를 늘리고 보자는 식의 부작용도 나타났다. 가령 사외이사를 3연임하면 무조건 반대라든가 그룹 계열사에서 임원이 이동하면 반대하는 식으로 내부 지침을 정해놓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지난해에는 찬성했던 사외이사 연임을 올해부터 반대하는 운용사들도 생겨났다. 사외이사를 두 번 연임하든 세 번 연임하든 간에 독립적인 이사회 활동을 해치는 건 마찬가지 아니냐는 질문에 뾰족한 대답도 없다. S자산운용사의 P대표는 "올해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첫해이고 해서 한번 제대로 하고 싶었는데 의결권 행사 전에 올라온 서류를 보니 내용이 무려 200여 개에 달했다"며 "그걸 일일이 들여다볼 시간도 없고 해서 그냥 사인해주긴 했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가 나왔다 해도 논리적으로는 하자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국내 최대 A그룹의 한 계열사는 올해 주총에 감사선임건 의안을 상정했다. 삼일회계법인 출신의 회계사를 감사로 선임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운용사들 중 반대 의사를 표명할 곳이 있다는 것을 이 기업의 IR담당 상무 B씨가 눈치챘다. B씨는 "주총 전날까지 이들 운용사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하느라 3월 내내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항변했다.
대형 운용사들 간 서로 눈치를 보면서 의견을 맞추는 일도 나타났다는 얘기다. 자산운용사의 의결권 행사 내역은 사전 공시 사항이었으나 2013년부터 감독규정이 변경되면서 사후공시로 전환됐지만 이면에서 운용사들 간에 의견 맞추기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의결권 행사가 초대형주에만 집중되는 쏠림 현상도 문제다. 현재 운용사의 의결권 행사 기준은 100억원 이상 투자
[한예경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