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바이오로직스 후폭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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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16일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특혜상장 논란에 대해 답변한 내용이다. 당시 임 전 위원장은 "우리나라 투자자에게 좋은 기업에 투자할 기회를 주고, 자본시장도 풍요롭게 하기 위한 목적에 의해 거래소가 적극적인 유치 활동을 했던 것"이라며 "어느 기업에 특혜를 주자는 것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사정은 이랬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한다고 밝힌 것은 2015년 7월 1일이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당시 3년 연속 적자로 국내 유가증권시장 상장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반면 뉴욕증권거래소는 상장요건을 이익이나 시가총액 중에 선택할 수 있었다. 나스닥도 이익, 시총, 자기자본 등으로 요건이 다양화돼 있다. 미국 테슬라가 적자 상태에서 나스닥에 상장해 수년 만에 시총이 10배 이상 증가했던 사례가 화제가 됐던 시기였다.
거래소는 서둘러 그해 11월 시가총액이 6000억원 이상이고 자기자본이 2000억원 이상인 경우 '대형 성장 유망기업'으로 상장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고 당국은 이를 허가했다. 2016년 상장 당시 일반공모 청약 경쟁률은 45대1이었다. 결국 해외 증시에 상장하려던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상장 문턱까지 낮춰주면서 국내로 되돌린 것은 거래소와 금융당국이었다는 얘기다.
이 사안은 지난해 7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공판에서도 논란이 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거래소가 상장 규정을 바꾼 것은 삼성의 청탁과 청와대 압력 때문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를 받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도 당시 야당 의원들이 동일한 논리를 전개했던 것이다.
금융당국의 갈지자 행보가 모처럼 활기를 찾고 있는 국내 기업공개(IPO)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코스닥 살리기를 주요 정책 목표로 내걸고 상장요건 완화 등 IPO 활성화에 나선 상황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입장에서는 결국 나스닥을 버리고 국내 상장을 택한 것이 악수를 둔 셈이 됐다"며 "앞으로 해외 상장과 국내 상장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다수의 기업들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주요 거래소는 우량기업 유치를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중국 스마트폰업체 샤오미는 글로벌 거래소의 구애를 뿌리치고 홍콩증권거래소에 IPO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번 IPO로 조달하는 금액만 100억달러(약 11조원)에 달한다. 2014년 알리바바의 뉴욕 증시 상장 이후 역대 최대 이벤트다.
국내 상장을 계획하고 있는 우량 벤처가 해외 상장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 게임업체인 넥슨은 2011년 일본 도쿄 증시에 상장됐다. 모바일 메신저업체 라인은 2016년 도쿄와 뉴욕 증시에 동시 상장하는 길을 택했다. 사업 관련성이 더 큰 지역에서 IPO를 하겠다는 경영진 의사가 반영된 조치였지만, 이런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한국 벤처조차 한국을 회피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처리 논란으로 다수 바이오 기업들이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다"며 "연구개발비를 자산으로 볼 것이냐를 놓고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어 바이오 기업들의 불안감이 크다"고 전했다.
실제로 금융당국 입장 선회로 큰 손실을 떠안게 된 투자자들은 소액주주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말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 소액주주는 약 8만명으로 전체 발행주식의 17%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외국인 지분율은 올해 4월 10.5%까지 늘었다가 현재 9.8% 수준으로 소폭 감소한 상태다.
증권 투자자 게시판 등에는 회계기준 위반과 관련해 조치 사전통보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려 주가를 떨어뜨린 당국을 상대로 소송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반대로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대상으로 투자자 소송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이뿐만이 아니다. 상장 과정에 참여했던 회계법인과 증권사는 물론 한국공인회계사회, 한국거래소 등도 소송전에 휘말릴 수 있다. 증권선물위원회 결론과 향후 행정소송 등의 향배에 따라 어떤 방향이든 대규모 투자자 소송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최종적인 법적 결론이 나올 때까지 법무 리스크의 '늪'에서 허우적거려야 하는 셈이다.
현재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5.4%를 보유한 미국 제약사 바이오젠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만약 바이오젠이 삼성바이오에피스 기업가치 훼손을 이유로 소송을 전개할 경우 사안은 국제적 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심지어 상황 전개에 따라 한국 정부를
[신헌철 기자 / 홍장원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