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훈 삼성증권 WM(웰스매니지먼트)본부장은 금융사고 처리 '골든타임'을 3일로 봤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다니던 증권회사가 사흘 만에 쓰러져 나가는 것을 직접 목도했던 그다. 금융사고가 나서 안 좋은 소문이 퍼지고 고객자산이 무더기로 이탈해 증권사가 문 닫는 데까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3일이면 충분했다. 사 본부장은 지난 4월 6일 주식배당 사고가 터지자 그때 생각부터 났다고 한다. 하지만 삼성증권은 전혀 다른 경로를 밟고 있다.
삼성증권 유령주식 배당 사고는 이 회사 우리사주 조합원 계좌에 현금배당금(28억1000만원)이 아닌 주식(28억1000만주)이 입고된 사태였다. 당시 삼성증권의 발행 주식 총수(약 8900만주)의 30배가 넘는 주식이 직원 계좌에 입고됐지만 시스템상 오류 검증 절차조차 없었다. 심지어 사고 난 주식을 팔아치운 직원도 있었다. 직원 21명이 1208만주에 대해 매도주문을 냈고, 이 중 16명의 거래가 체결됐다. 이 모든 일이 불과 30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날 삼성증권 주가는 장중 최고 11% 하락하는 등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고 25분 만에 사고대책반장이 된 구성훈 삼성증권 사장(사진)은 즉각 대표이사 명의의 대고객 사과문을 띄우고 투자자 피해구제 전담반을 설치하는 등 신속하게 대응을 마련했지만 사회적 비난까지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시장에서는 삼성증권의 모럴해저드를 손가락질하기 시작했고 대형 연기금들이 삼성증권과 거래 중단을 선언하는 등 사태는 커져만 갔다.
구 사장은 당장 고객부터 만나기로 했다. 사무실에 앉아서 사과문을 쓸 게 아니라 가급적 빨리 직접 고객을 찾아가 눈을 마주보며 사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고가 터진 지 5일 만에 배당사고 관련 투자자 간담회를 열고, 다음날부터는 지방 고객을 만나러 다니기 시작했다. 현장에서는 비판이 쏟아졌다. 배당사고 피해 보상 규모를 최고가 보상으로 정했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라 신뢰가 깨졌다"는 뼈아픈 비판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구 사장은 불만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시스템뿐만 아니라 조직 개선에 착수했다.
진정한 사과와 성실한 대응이 지속되면서 혹독하게 비판했던 고객들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과 방문을 한 자리에서 자산을 더 맡기는 희한한 일도 벌어졌다. 실제로 삼성증권의 4월 말 고객예탁자산은 사고 전날(4월 5일)과 비교했을 때 3조4000억원 늘어났다. 이 기간 중에 새로운 고객이 유입되면서 삼성증권 실질 고객 수가 1만2000명 추가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구 사장의 사과 방식은 특이한 구석이 있다. 우선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식 사과법을 썼다. 사고가 터진 지 일주일 후 토요일에 전 임원을 불러모아 손글씨로 반성문을 썼다. 일부에서는 보여주기식 '사과쇼'라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주식 거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시스템 디지털화를 지속하다 보니 키보드로 손가락 하나 잘못 움직이면 언제 대형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며 "전 임직원이 이런 위험에 대해 경각심을 갖기 위해서는 옛날식으로 종이에 펜으로 반성문을 쓰면서 마음을 다
사 본부장은 "금융사고 한 번이면 3일 만에도 사라질 수 있는 회사에 더 큰 돈을 맡겨준 고객들을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진다"며 "앞으로 3년 아니라 30년이라도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증권 배당사고가 터진 지는 아직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다.
[한예경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