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아파트 재건축에 이어 재개발 사업장에서도 '흔적 남기기'를 추진한다. 그동안 재건축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제가 적었던 재개발 사업지에 대해서도 향후 강한 규제를 가하겠다는 신호탄은 아닌지 시장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5일 서울시 관계자는 "아직 관리처분을 받지 않은 서울 시내 재개발 사업장101곳을 대상으로 심층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들 중 보존가치가 높은 20곳을 연내 선정해 정비구역 내 일부 건물이나 골목길 원형을 보존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가 언급한 리스트 101곳에는 한남·노량진 등 재정비촉진지구와 대치동 구마을, 송파구 문정동 등 단독주택 재건축 사업지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존 대상에는 유형문화재는 물론이고 과거 주민들의 생활 모습이 담겨 있는 이른바 '생활유산'도 포함된다. 원형이 보존된 건물에 마을 박물관 또는 기념관을 조성해 과거 주민 삶의 흔적이 담긴 영상 등을 전시한다.
서울시는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 철거작업을 계기로 재개발 사업장에서도 과거 추억이 서려 있는 공간을 보존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작년 말까지 1차 용역으로 전체 재개발 지역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마쳤고 최근 2차 용역을 진행하기 위해 사업자를 선정 중이다.
시범 사업장으로 선정된 곳에는 사업성 하락에 대한 보상으로 각종 인센티브를 줄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허용 용적률을 높여주거나 기념관 설치에 드는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그동안 잠실주공5단지, 개포주공4단지 등 주로 대형 단지 재건축 과정에서 굴뚝이나 일부 주거 동을 보존하도록 유도해 왔다. 하지만 재건축 사업성을 떨어뜨리는 데다 단지 미관을 해치는 흉물로 전락할 수 있어 재건축 아파트 소유주들이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가 흔적 남기기 대상에 재개발 사업지를 추가한다는 계획을 밝힘에 따라 논란은 더욱 증폭될 전망이다.
실제로 재개발 사업장들은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흔적 남기기가 사실상 서울시 심의를 통과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용환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