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표도시환경정비사업이 예정된 청계3가 옆 서울 중구 입정동 237 일대 모습. 현재 소규모 공구상가가 밀집해 있다. [매경DB] |
'을지면옥' 등 노포(老鋪) 철거 논란이 나온 지 하루 만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보존을 위한 재검토"라는 '한마디'를 던졌고 담당 공무원들이 같은 날 일사천리로 현장실사를 나가면서 대대적인 계획 변경을 예고했다. 서울시는 문제가 된 지역들에 한정해 수정할 예정이라지만 인근 다른 상가 주인·세입자까지 '형평성'을 문제 삼으며 줄줄이 나서면서 계획 좌초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경우 이 일대에 공급 예정이었던 공공주택에 차질이 예상되고 오락가락하는 시 행정에 대한 불신만 커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18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의 세운재정비지구 담당 공무원 10여 명은 지난 16일 오후 중구 입정동 2-4 일대 '세운3구역'과 입정동 237 일대 '수표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 현장을 방문해 점검했다.
박 시장이 이날 오찬을 겸한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청계천·을지로 일대 재정비로 철거 위기에 놓인 노포들이 되도록 보존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히자마자 전격적인 실사에 나선 것이다.
이날 현장 점검을 이끈 강맹훈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은 매일경제와 전화통화하면서 "수표도시환경정비사업의 경우 사업 추진도 덜 진행됐고 반대가 워낙 심해 현재로선 사업 추진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강 본부장은 "관할 구청인 중구청과도 향후 인허가 협의 과정에서 시의 입장을 반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업 무산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도심 명물인 '전통 맛집'을 유지하자는 취지 자체엔 사회적 공감이 크다. 그러나 10년 이상 서울시가 검토한 계획인 데다 박 시장 본인이 이 일대를 재생·개발하는 '다시 세운 프로젝트'를 홍보까지 해놓고 하루아침에 전면 재검토를 시사한 데 대한 '후폭풍'은 상당할 전망이다.
수표도시환경정비사업은 지난달 중구청에 사업시행인가 승인을 신청한 상황이다. 현재 사업계획대로라면 지하 5층~지상 24층, 연면적 11만7813㎡ 규모의 대형 업무용 오피스빌딩이 들어설 예정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인허가권을 가진 중구청은 상급 기관인 서울시 입장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사업이 '올스톱'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재 을지면옥과 양미옥 등 노포가 위치해 있고 철거가 30%가량 진행된 세운3구역 일대 토지주와 사업시행자는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세운3구역에는 공동주택(아파트) 1862가구, 업무시설, 판매시설, 문화시설 등 다양한 시설이 복합 개발될 예정이다. 이 구역 한 토지주는 "노포들의 처지와 주장도 이해하지만 사업이 무기한 지연되면 미리 대출을 받은 영세 토지주들은 대출받은 이자 등을 해결하지 못해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구상가 상인 300여 명(집회 측 추산)은 이날 오후 청계천로 일대에서 집회를 열고 재개발이 아닌 리모델링으로 동일한 상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선반가구 제조영업을 하는 이용진 씨(67)는 "냉면집 을지면옥은 살고 공구상인들은 피해만 보는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 없어 그동안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상인들까지 한자리에 모였다"고 설명했다. 도시정비사업에 밝은 한 전문가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에 대해 너무 단순하게 접근했다"며 "보존을 하더라도 먼저 해당 지역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듣고 박 시장이 발언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이어 "10년간 검토하고 수정된 계획이 박 시장의 '한마디'로 뒤집혔으니 개발에 찬성하는 쪽이든 반대하는 쪽이든 이제 누가 시의 정책과 계획을 믿겠느냐"고 꼬집었다. '나비효과'는 이뿐만이 아니다. 노포 보존을 위해 기존 사업계획을 변경하면서 세운지구 정비사업이 지연될 경우 서울시가 지난해 말 내놓은 도심주택 공급 확대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울시가 지난달 31일 도심재정비사업을 통해 2022년까지 공급 예정이라고 밝힌 3770가구 가운데 70%가 넘는 2
[최재원 기자 / 문광민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