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돈을 떼어 먹는 것은 분명 미덕은 아니다. 일각에서 신용회복제도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유다. 하지만 과도한 빚의 굴레를 감당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무조건 상환만을 강요하는 것은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를 수 있다. 주변에서 채무 독촉으로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신용회복제도가 필요한 이유다. 지난 한 해 동안에만 9만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신용회복제도를 통해 삶의 희망을 찾았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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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신용회복위원회] |
남편은 건설현장에서 도목수로 일했는데 번번이 임금을 받지 못했다. 남편은 어떻게 남에게 피해를 주느냐며 빚을 내서 자신이 데리고 있던 목수들에게 임금을 지급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빚은 많았지만 성실한 남편과 사랑스러운 두 아이 때문에 하루하루 행복했다.
하지만 얼마 뒤 풍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저도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해 지인 중 돈이 급한 사람에게 보증을 서 주기도 하고 심지어 제 명의로 사채를 얻어 빌려주기도 했다. 순수하게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서 그랬지만 그들은 잠적했고 보증과 사채 빚은 비수가 돼 돌아왔다.
빚을 갚을 능력이 되지 않자 집도 잃고 초등학생 두 아이와 함께 길바닥으로 내쫓겼다. 급한 대로 식당일부터 시작했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버텨보려 했지만 IMF 한파가 닥치면서 빚의 굴레에 더 빠졌다. 공사판을 전전하던 아이들 아빠는 수입이 끊겼다. 큰 딸의 수입과 식당일로 버는 돈으로는 빚을 감당하기 버거웠다. 심지어 아들은 고등학생 때부터 성인이 돼서도 빚을 함께 짊어졌다.
어느새 아이들은 결혼해 가정을 갖게 됐고 빚 감당을 더 이상 아이들에게 지우기 싫었다. 그러나 빚은 계속 늘었다. 힘겨워 하던 차 걸려온 아들의 전화. 엄마의 목소리 톤만 들어도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리는 아들이었다.
하지만 차마 돈이 필요하다고 말 할 수는 없었다. 아들은 제가 끝까지 말을 않자 신용회복위원회에 같이 가자고 했다. 고집을 부리다 결국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하기로 했다. 사실 이때 남의 돈을 떼어 먹는 것은 큰 범죄이고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망설였는데 아들은 "그동안 어머니는 할 만큼 했다"며 위로했다. 용기를 내 신복위에 문을 두드렸다. 신복위는 현실적으로 채무를 감당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 줬다. 그날 신복위를 나온 저에게 아들은 한 식당에 들어가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을 내밀었다. 숟가락을 뜨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신복위는 빚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재기를 지원하는 신용회복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신복위에서 실시하는 개인워크아웃과 프리워크아웃(사전채무조정)은 법원의 개인회생, 개인파산과 같은 채무조정 제도에 해당한다.
앞서 사례에서 언급한 개인워크아웃은 연체 기간이 90일이 넘는 금융채무불이행자에게 이자를 모두 감면해 주는 제도다. 구체적으로 이자는 전액, 원금은 채무의 성격과 채무자의 가용소득으로 채무원금을 상환하는데 소요되는 기간을 고려해 최대 30~60%, 사회취약계층은 최대 90%까지 감면받을 수 있다. 프리워크아웃은 연체이자가 전액 감면되며 이자율은 신청 당시 약정이자율의 50%까지 조정할 수 있다.
신용회복지원을 받으면 우선 채권 금융기관의 상환 독촉이 중단된다. 채무조정을 통해 일시상환과 연체이자의 부담도 없어지고 상환 능력을 고려한 변제 계획으로 완제 가능성이 커진다.
또 여러 금융기관의 빚을 한 곳에 모아 관리할 수 있어 편리하다. 채무조정 효력은 보증인에게도 있기 때문에 성실히 상환하면 보증인이 빚 독촉을 받지 않아도 된다.
신용회복지원이 확정되면 신용거래정보로 등록됐던 연체정보가 해제되고 2년 경과 후 신용등급에 따라 신용카드도 발급할 수 있다. 물론
신복위 채무조정제도는 채권자간 자율합의를 통해 채무자가 상환 가능한 수준으로 채무를 사전 감면하는 제도로, 법원의 개인회생제도보다 강제성은 다소 낮으나 유연하고 신속한 구제가 가능하다.
[디지털뉴스국 전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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