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따라 일본 정부가 대출을 비롯한 '금융'을 경제 압박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금융당국도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일본계 자금 움직임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에 착수했다.
7일 금융감독원과 국제금융센터 등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미쓰비시파이낸셜그룹과 미쓰이스미토모, 미즈호, 야마구치 등 4개 일본계 은행의 국내 총여신은 18조299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한국 기업과 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이 빌린 돈을 합한 숫자다.
일본 4개 은행의 국내 총여신 규모는 지난해 9월 말 21조817억원에서 12월 말 19조5196억원 등으로 점점 줄고 있다. 일본 은행들이 한국 내 풀었던 자금을 거둬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일본 금융사들이 일본 정부의 반도체 수출 규제에 발맞춰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을 거부하거나 신규 대출을 줄이는 방법으로 한국에서의 자금 회수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대한 다양한 압박 방법을 갖고 있다고 밝혔는데 금융 역시 그중 하나가 될 수 있다"며 "일본계 은행들이 당장 움직이지 않겠지만 일본의 수출 규제는 한국 금융시장에도 서서히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혁균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자국에서 저리로 수신을 할 수 있는 일본 은행들은 다른 은행들보다 유리한 금리로 대출을 해줬던 게 사실"이라며 "일본 은행들이 자금을 회수하면 기업들 입장에서는 금리 부담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연구원은 "일본 은행들의 자금을 빌린 국내 업체 대부분이 자금 여력이 풍부한 삼성전자·LG디스플레이 등 국내 대기업들이기 때문에 일본 은행들이 만기 시 자금을 회수할지라도 신용등급이나 건전성 등에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에 들어와 있는 일본계 자금도 요주의 대상이다. 금감원은 5월 말 현재 일본계 자금이 보유한 상장주식 가치를 12조4710억원으로 집계하고 있다.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들이 발행한 채권도 일본계 자금이 많이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전문가들은 단순한 자금 회수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미시적인 금융 보복이 더 우려된다고 말한다.
일본 전문가인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은 "일본 정부는 한국에 수출입하는 일본 기업과 한국에 투자하려는 일본 기업에 대해 별도의 상한선을 두지 않고 무역보험을 제공해 오고 있는데, 이 같은 무역보험에 한도를 설정하거나 절차를 까다롭게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이 같은 제한을 둘 경우 일본 기업의 한국에 대한 수출입이나 투자에 악영향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주하거나 글로벌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데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또 다른 금융 전문가는 "많은 한국 기업이 해외 인프라스트럭처 사업을 수주할 때 일본 금융기관에서 지급보증이나 대출을 받거나 일본 기업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으로 수주에 나서는 경우가 많은데 앞으로는 일본 금융회사나 기업들이 이 같은 활동을 자제하거나 소극적으로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한일 관계 악화가 지금보다 심화되고 더욱 장기화되며 생산이나 무역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의 타격이 실제적인 숫자로 나타날 경우 한국의 국가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자문위원은 "일본에서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상정해 자금 조달처 다변화가 필요하다"며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비교적 충분하지만 그래도 외환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금융 당국 역시 이달 초부터 잇달아 점검회의를 열고 금융권에서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를 점검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일본 현지에서 영업 중인 우리 기업들의 신용 위축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일본계 은행에서 돈을 빌리거나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국내 은행이나 기업의 유동성 상황 역시 주시하고 있다.
김태현 금융위원회 사무처장 주재로 5일 열린 회의에서 금융위는 "일본과 거래하는 기업들 현황 및 일본 채
[김동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