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만 봐도 딱 아는 분이시죠. 아나운서에서 정치인, 정치인에서 다시 방송인으로 활동을 준비하는 유정현 전 의원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 안녕하셨습니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요즘 방송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하니까 정말 반갑더라고요.
-감사합니다.
▶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공천 못 받고 무소속으로 나가서 선거 때도 고생을 많이 했었는데요. 일 년 동안 국회의원 생활 4년을 하면서 많은 부분을 소비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 재충전의 시간을 갖자 해서 책도 많이 보고요. 대한민국에서 4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치에만 몰입하다보니까 몰랐던 부분들 많이 배우고. 아이들과 좋은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했어요. 아빠 역할을 정말 오랜만에 해본 것 같습니다.
▶ 얼굴이 더 좋아지신 것 같아요.
-정치를 안 하게 되니까 확실히 얼굴이 좋아지고 혈색도 좋아진 것 같습니다.
▶ 오랜만에 뵈니까 정치인 할 때는 저도 누렇게 되고 힘들긴 했지만 너무 좋아지셨어요. 축하드려야 될지 모르겠네요.
-조찬이 없으니까 살 것 같습니다.
▶ 정치인을 하다보면 느는 게 악수하는 습관이잖아요. 아직도 악수하는 습관은 조금 남아있는 것 같아요.
-조금 남아있더라고요. 4년 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어떻게 보면 세게 트레이닝을 했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아직도 악수하는 게.. 예전에는 어떤 의원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악수할 때는 무조건 세게 잡아서 나를 각인시켜줘야 된다는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는데 지금은 편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 국회의원들은 술집이나 노래방 가서도 악수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데 얼마 전에 첫 방을 제가 직접 봤습니다. 잠도 안자고 끝까지 봤는데 눈물을 펑펑 흘리시는 것 같았어요.
-무소속으로 나오면 참 괴롭습니다. 당원들이 저를 지지하다가 당원들한테 너무 큰 갈등을 드린 거예요. 인간 유정현도 좋지만 당의 명령을 따라야 되는 부분도 있지 않습니까. 제가 ‘억울합니다.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주십시오’ 같은 플랜카드를 들고 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저한테 딱 오시더라고요. ‘유 의원, 억울해요?’ 그러시더라고요. ‘억울합니다. 억울한 일 당하는 사람 없는 세상 만들어 보겠습니다’ 얘기하니까 그 할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대한민국에서 서민으로 산다는 것, 우리 지역구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 과장해서 얘기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정현 의원이 당한만큼 억울한 일 안 당해본 사람 없다. 그래도 당신은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 한번 하지 않았느냐. 뭐가 그리 급해서 4년을 못 참고 무소속으로 나왔느냐’ 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사실 너무 많은 생각을 했어요. 이 할아버지의 말씀이 100%맞는 얘기고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겉모습만 봤을 땐 남루하다는 표현까지는 그렇지만 건강 드링크제 두 개를 주시면서 ‘자네를 찍을 테니 열심히 해봐’하시면서 가는데 요즘 아이들 말로 멘붕이 온 거죠. 저 어르신의 말씀이 100 % 맞는데 내가 과연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과연 내가 재선이 되도 억울한 일 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이런 것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다 보니까 그때가 오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날은 하루 종일 선거운동을 못했습니다.
▶ 가슴이 너무 찡해서요?
-가슴이 너무 찡했죠. 그리고 국회의원 하면서 정치라는 게 뭔가 제가 정치권에 들어가기 전에 했던 생각과 정치를 하면서 느끼는 정치가 많이 다르더라고요. 어떤 할머니께서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우리 동네 좀 잘 살게 해줘’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국회의원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할머니, 제가 동네를 발전시켜도 우리 동네를 부자 동네로는 못 만들어요’ 라고 말씀 드렸어요. 그랬더니 그 옆에서 듣고 계셨던 할아버지가 ‘유 의원, 잠깐만 이리 와봐’ 라고 하시더니 혼내시는 거예요. 정치인은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소리만 하는 것인지 왜 당신 얘기를 하냐는 거예요.
▶ 진실과 상관없이?
-그렇죠.
▶ 사탕발림이라도?
-그 분의 말씀은 저 할머니가 우리 동네를 잘 살게 해달라는 말이 안된다는 거 저 할머니도 알지만 정치인한테 희망을 가지고 얘기하는 건데 그걸 현실적으로 저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 동네를 발전시킬 순 있어도 우리 동네를 부자 동네론 못 만든다? 그것은 국민의 희망을 짓밟은 거다. 당신이 큰 정치인이 되려면 국민들이 원하는 얘기만 해라. 너 얘기 하지 마라. 너 얘기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우리가 듣고 싶은 얘기를 해주는 게 정치인의 의무며 책임이라고 말씀하시니까 더 어려운 거예요. 과연 정치라는 게 뭔가.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문제고 내가 앞으로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고민이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도 아마 정치를 하면서 제가 머릿속으로 많이 고민을 했던 시절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 마음이 순수하시니까 여러 가지 그런 고민도 하고 가슴이 찡하면서 이 분들한테 그렇다면 어떻게 대할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저 말고 다른 의원들도 저와 같은 상황에서 그 얘기를 들었으면 저하고 비슷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 여러 가지 인생 역전이 많았잖아요. 방송, 정치, 복귀 과정을 겪으셨는데 유정현 전 의원님의 인생 그래프를 저희가 준비해봤어요. 20대부터 50대까지 넉 장이 준비되어 있는데요.
-여기에 50대가 있으니까 제가 50이 넘은 줄 아실 것 같은데 제 나이가 아직 50은 안 넘었습니다.
▶ 27세에 아나운서로서 인생을 출발했잖아요. 저도 사법시험 고시출신인데 요즘 사람들이 아나운서 고시가 사법고시보다 열 배 어렵다는 얘기까지도 합니다.
-PD,기자, 아나운서가 대게 인기 직종인 것 같아요. 저 때도 언론고시라는 말이 있었고.
▶ 그때 몇 대 일 정도 됐었어요?
-몇 대 일이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한 100대 1에서 많으면 200~300대 1 정도 됐겠죠. 중요한 건 제가 KBS 한번 MBC 한번 떨어져봤거든요.
▶ 떨어지셨어요?
-최종면접에 올라온 사람들은 거의 비슷합니다.
▶ 가서 보니까 얼굴이 다 비슷하던가요?
-KBS에서 봤던 사람이 2차 떨어졌다가 붙고. SBS에서 떨어진 사람이 그 다음해 KBS 붙고 MBC 붙고. 이렇다 보니까 실질적인 경쟁률은 10대 1, 20대 1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그 당시에 아나운서가 되면서 뉴스보다는 예능전문 mc가 되겠다고 선언하셨잖아요.
-저는 뭘 선언하거나 그런 적이 없어요. 제가 아나운서가 된 이후에 처음 맡은 프로그램이 ‘토요특집, 출발 모닝와이드’ 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아직도 SBS에 있는 프로그램에 리포터로 처음 나갔고요. 두 번째가 제 연배는 다 기억하실 거예요. 일요일 오전에 ‘좋은 친구들’이라는 코미디 프로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제가 ‘헐리웃 통신’하고 ‘바른 생활 사나이’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주말에 숙직을 서면 TV 뉴스를 합니다. 그러면 보도국으로 전화가 온데요. SBS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개그맨을 어떻게 뉴스에 투입하냐. 그러니까 제가 개그 프로그램인 ‘좋은 친구들’ 에 나온 개그맨으로 아셨던 분들이 많은 거예요. 그렇다보니까 뉴스 하는 것에 대해 보도국에서 반대가 있으니까 조금씩 뉴스를 못하게 되고, 말이 늦다보니까 스포츠 중계가 불가능한. 그러니까 선배님들이 ‘너가 할 길은 MC밖에 없다, MC를 열심히 해라’ 라고 해서 한 거지 제가 어디서 선언을 한 적은 없습니다.
▶ 요즘 김성주 아나운서도 이른바 아나테이너의 제 2세대로 이어가고 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예능전문 MC 아나운서로는 제 1세대 원조 아닌가요?
-아니에요. 원조는 제가 볼 때 ‘KBS 열전 달리는 일요일’을 했었던 최성규 선배나 손범수 선배나 김병찬 선배 정도가 1세대인 것 같고요. 그리고 제가 있고 제 뒤로 김성주 아나운서나 전현무 아나운서가 있는 것 같은데 후배들을 보면 정말 잘하는 거 같아요. 김성주 아나운서가 하는 축구중계를 보면 정말 잘하지 않습니까. 보니까 인간성도 좋은 것 같아요. 전현무씨도 제가 방송복귀하면서 느낀 건데 정말 끼가 많은 사람이에요. 웬만한 개그만 보다 더 많은 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옳은 길을 잘 가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 이소라 씨가 얼마 전에 방송에 나와서 유정현 의원하고 방송사고 친 것을 얘기하시던데 기억하세요?
-기억나죠. 그때 ‘불새’ 라는 주말 연속극의 시청률이 굉장히 높았습니다. 그래서 생방송에서 이경영 씨하고 이영애 두 주인공을 모시고 10분 정도 이야기 하는 자리였습니다. 제가 ‘인기리에 방송중인..’ 이라고 해야 하는데 ‘연기리에 방송중인 불새의 두 주인공 이경영 씨 이영애 씨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했는데 저는 그때까지 연기리에 방송중이라는 얘기를 한 줄 모르고 있는데 이소라 씨가 그때부터 쿡쿡 웃기 시작하더라고요.
▶ 이소라 씨가 듣고 있다가 알고 유정현 의원은 나중에 알면서.
-그렇죠.
▶ 이소라 씨는 그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참았다고 했는데 그 당시에 어떤 생각 하시면서 참으셨어요?
-어떤 생각이 아니라 일단 저는 허벅지를 꼬집었어요. 저한테 조금 엄하게 대하시는 PD 간부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 얼굴을 떠올리면서 꼬집었는데 웃을 때 호탕하게 웃으면 될 텐데 저나 이소라 씨나 속으로 웃는 스타일이에요. 사람이 얘기를 하는데 옆에서 허허허 웃으면 한번 보고 왜 이래, 하면 될 텐데 웃음은 참아야 되겠고 허벅지를 꼬집으면서 하다 보니까 서로 얘기를 못하게 된 거죠. 그때 사실 이경영 선배한테 너무 속상했어요. 이영애 씨는 계속 같이 웃었어요. 그런데 이경영 선배님은 표정이 ‘아 얘네들 손님 데려다놓고 뭐하는 거야’ 것처럼 약간 여유가 있어 보이셨어요. 한마디만 해주시면 좋았을 텐데 끝까지 안 해주셔서 결국 2분정도 아무 얘기를 못하고 방송이 끝났고 저는 담당PD가 무서워서 도망가려고 했는데 담당 PD가 달려오더니 ‘정현아 한밤의 TV연예 방송했던 여태까지 제일 재밌었다’ 하시면서 재밌어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무슨 소리냐, 나 경고 받을 것 같다’ 고 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제가 평소에 어려워하던 국장님한테 전화가 왔더라고요. 내려오려고 해서 내려 가봤죠. ‘너무너무 재밌었다. 그러나 아나운서한테 딱 한번이어야지 또다시 이런 일이 있을 때는 유정현 너의 대한 신뢰도는 땅에 떨어질 거고 너가 무슨 얘기를 해도 사람들은 안 믿을 거다. 잘 생각해서 방송해라’ 고 해서 ‘알겠습니다’ 하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 다행이네요. 이번에는 30대를 보겠습니다. 33세의 프리선언을 하셨네요. 요즘도 아나운서들이 프리선언을 많이 하지만 그 당시에는 큰 결심이 필요하셨을 것 같은데 어떤 이유로 프리선언을 하신 거예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믿으실지 안 믿으실지 모르겠는데요. 제가 만 6년을 SBS에서 근무했습니다. 제가 프로그램을 4~5개 하고 주말이면 숙직을 서야 되요. 주중에는 바쁘니까 숙직을 설 수 없고 주말에 숙직 서고..
▶ 숙직은 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나요?
-밤 10시, 11시, 12시 뉴스, 새벽 5시, 6시 7시 종합 뉴스를 하고 퇴근하는 거예요. 그리고 12시 30분 정도에 TV뉴스를 할 때도 있다 보니까 제가 프리를 하기 일 년 전 쯤에 과로로 쓰러졌습니다. 그래서 ‘한밤의 TV연예’도 이소라 씨가 혼자 진행하고 ‘출발 모닝와이드’도 일주일동안 다른 MC가 해주고. 그 당시에 SBS 제작본부에 제일 높은 직책에 계신 분한테 찾아가서 ‘제가 육체적으로 도저히 안 될 것 같습니다. 저를 제작국으로 파견해주시면 프로그램을 위해서 전심을 다해서 더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하겠더니 그분 말씀이 ‘니가 몇 살이지?’ 그러더라고요. ‘서른 셋입니다’ 했더니 ‘너 회사를 나가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멀쩡히 다니느 회사를 왜 나가라고 하십니까’ 했더니 아직도 기억나는 게 ‘정현이 너는 내가 봤을 때 참 괜찮은 놈인데 너 술 한 방울도 안 먹고 못 먹지 않냐. 네가 부장이 되고 국장이 되는 모습이 사실 잘 안 그려진다. 좋은 방송인으로 남기 위해서는 방송 일만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런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부모님하고 상의를 했죠. 그랬더니 군 생활 30년 했던 아버지는 ‘무슨 말이냐, 너가 잘못했으니까 나가라는 거지’ 그러시고 어머니는 ‘나가라 할 때 나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하시더라고요. 제가 하고 있던 프로그램의 담당 PD한테 얘기를 했습니다. ‘본부장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냐’ 그랬더니 4명이 모두 ‘무조건 나와라, 우리가 밀어 주겠다’ 그런데 그것뿐만 아니라 프리랜서를 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은 아나운서들한테 이 얘기를 하면 안 믿겠지만 저는 SBS를 일 년 단위로 계약했습니다. 프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타 방송사를 안가는 조건으로. 그러니까 프리를 한 이후에도 제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SBS로부터 보호를 받으면서 사랑을 받았다고 할 수 있죠. 전속금도 받고 출연료도 받고 CF도 찍을 수 있었고. 아나운서 같은 경우는 행사를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일이 예전에 있었습니다. 99년도에.
▶ 프리 하고 나니까 어떤 점이 좋으시던가요?
-가장 큰 변화는 경제적으로 변화가 생기고요. 또 하나는 아무래도 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가 확실히 더 조성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방송을 열심히 했었고..
▶ 광고도 많이 들어왔었죠?
-이런 얘길 하면 참 쑥스럽습니다만 아마 아나운서 출신 중에 초콜릿 광고를 찍은 사람은 제가 유일하지 않을까..
▶ 당시 광고 멘트도 기억 하세요?
-그런 건 전혀 기억이 안 나죠.
▶ 김성주 아나운서 얘기를 아까 잠깐 하셨는데 전현무 아나운서도 있고 요즘 보면 유정현 아나운서의 뒤를 이어서 활동하고 있는 예능 전문 아나운서를 보시게 되면 어떤 느낌이 드세요?
-정말 잘합니다. 실력과 능력과 끼를 겸비했다고 생각해요. 방송 능력적인 면에서 볼 때 저보다 다 고수인 것 같아요.
▶ 요즘 방송을 보면 말이 많이 거칠어졌잖아요. 물어뜯기도 하고 센말을 던지기도 하는데 어떻게 보면 4,5 년 동안 풍토가 많이 거칠어 진 것 같은데 이번에 복귀하면서 어떻게 느끼셨어요?
-복귀하면서 느낀 게.. 어린 학생들이 만약 긴 이야기를 짧게 짧게 줄여서 쓰지 않습니까. 그게 사회를 반영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대화를 하면서도 네 명이 있으면 남 얘기를 하는 이런 분위기는 그 사회를 반영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가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있고 남에 대한 배려가 좀 부족해지지 않았나. 최근 4,5 년 사이에.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 인생 그래프를 좀 더 보겠습니다. 42세, 정치인으로서 꽃다운 나이에 뺏지를 달았는데요. 국회의원에 도전할 때 수입도 괜찮고 인기도 많고 모든 면에서 다 대우를 받는 입장이었는데 그 험난한 정치판에 들어가겠다고 결심할 때 어떤 동기가 있
었나요?
-저는 아버지가 군 생활을 30년 넘게 하셨어요.
▶ 원래 장군 출신이셨나요?
-네. 그리고 저희 친할아버지께서 지금으로 따지면 서울경찰청장을 역임하셨고요. 그렇다보니까 저는 꼭 국회의원은 아니더라도 나라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희 작은 아버지께서도 검사 생활을 20년 정도 하셨고 지금 사촌동생들은 판검사를 하고 있는데 이런 친구들을 보면서 느낀 게 방송을 하면서 애국하는 것도 좋지만 나라를 위해 실질적으로 일 해보는 것도 굉장히 보람 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제 나이 42세 때 지금이 내가 나라를 위해서 일할 시기인 것 같다는 저 나름대로의 확신이 섰기 때문에. 고승덕 변호사님도 해보셔서 아시겠지만 그 당시에 누가 너한테 공천 줄게,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란 건 절대 안 된다는 건 잘 아시잖아요. 자기의 모든 것을 던지고 내 경력과 경쟁력으로 싸움을 해서 승리하면 공천을 받는 것이고 그게 아니면 4년 동안 다시 도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방송을 하면서 얻은 사랑이라고 할까요. 그걸 등에 업고 국회의원에 도전했다는 게 맞지 않을까..
▶ 그 지역구의 직전 의원이 민주당이었나요?
-그렇죠.
▶ 민주당을 새누리당으로 밭을 바꾸신 건데 당선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시작하신 건가요?
-제가 중랑구에서 국회의원을 4년을 했는데 제가 처음 공천을 신청한 곳은 중랑구가 아닙니다. 제가 다닌 고등학교가 있는 동작구에 공천신청을 했는데 저하고 홍정욱 의원을 그 당시 공천심사위원장이신 안강민 공천심사 위원장께서 불러주셔서 유정현, 홍정욱 당신들은 이렇게 좋은 지역구에서 하면 안 된다. 더 어려운 지역에 가라. 그런데 그게 불과 3주 전 한 달 전 이야기입니다. 선거 치루기 직전이죠. 저는 조금 빨리 만세를 불러서 중랑구에 가서 4주 정도의 선거 기간이 있었고 홍정욱 의원은 조금 더 버티다가 나중에 보름 전쯤에 공천이 확정되었어요. 어렵게,어렵게 생활했습니다.
▶ 국회의원을 하면서 가장 힘든 일이 어떤 일이었나요?
-일단 저는 웃음이 굉장히 많은 사람인데 웃지 못하는 상황이 많은 경우. 그리고 인간적으로 고민스럽고 괴로웠던 것은 인사청문회였던 것 같아요.
▶ 어떤 점이요?
-물론 제가 여당 의원이었지만 야당 의원들은 본인이 원하시건 안 원하시건 공격을 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까. 여당을 향해서 쓴 소리를 하고 대통령이건 임명권자가 지명한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든 흠집을 내려고 하는 게 야당이고 여당은 그 부분에 대해서 조금 보호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뻔히 보이는 것에 좋은 얘기만 할 순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면 어떤 정책에 대한 잘못보다 개개인의 잘못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콕콕 찍어야 되는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여당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굉장히 괴로웠는데 야당 의원님들은 저보다 몇십 배.. 물론 국회의원들 중에는 그런 것을 즐거워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나 제가 알고 있는 많은 분들은 그 부분에 대해서 더 미안해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 맞아요. 저도 악역 한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면서 괴롭던 기억들이 나는데요. 저희가 준비한 걸 보니까 이건 아마 다시 한 번 시청자분들한테 털고 가는 부분인 것 같은데. 여배우 A양과의 스캔들. 여러 가지 루머가 있었잖아요. A양과 썸씽이 있다는 거였는데. 나중에 보니까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습니다. 당시에 확산된 이유가 보좌관이 보고 했을 때 한우 부위라는..
-소문이 많이 나다 보니까 보좌관들 입장에서도 유 의원은 시간을 보더라도 그럴 시간이 없는데 아닐 거야 하면서도 주위에서 하도 얘기를 많이 하다보니까 혹시나 하는 1%의 가능성. 부담스러워서 정색을 하고 보고를 못했던 겁니다. ‘의원님,, 요즘 이런 유머기 있습니다’ 가 아니라 비서와 인턴 10명 정도 같이 회식을 하는 곳에서 얘기를 했는데 저는 인지를 못한 상태에서 슬쩍 넘어간 거죠.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았을 때 왜 내가 그걸 인지하지 못했을까. 고깃집 이었으니까. 갈비살3분 주세요, 꽃등심 3인분 주세요가 아니라 맛있는 분위를 진공포장 해놓으면 거기에 가서 골라먹는 정육식당이었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제가 어떤 사람의 이름을 오해 하지 않았나. 저는 사실 너무너무 속상한 것 중에 하나가 제가 수사 의뢰를 했을 때 물론 저를 나쁘게 보시는 분들은 유정현 정말 스캔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염치없이 수사의뢰까지 하냐고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저는 그 정도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수사 의뢰를 했습니다. 그때는 모든 언론이 신났다는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는데 신나는 방송을 했습니다.
▶ 고발했다는 것을 스캔들 내용을 섞어가면서..
-그렇죠. 그리고 제가 영등포 경찰서에 수사 의뢰를 했을 때 연예계의 루머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나훈아 선생님도 피해자신데 나훈아 선생님이 기자회견을 아F랫춤을 내리려고 하는 사진도 제 얘기 아래로 깔리고. 그러면 사람들 입장에서는 제가 수사 의뢰한 게 중점이 아니라 저에게 그런 루머가 있다는 게 중점이 되고요. 결국 범인 3명이 잡혔는데 범인 잡힌 이야기는 신문사 두 곳에서밖에 안 났고요. 전혀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습니다.
▶ 저희 집사람도 나중에 이야기를 듣더니 아마 유정현 의원님의 사모님이 젊고 예쁘시잖아요. 그래서 부부가 같이 다니는 걸 오해하지 않았나.
-부부가 여관에 왜 들어가요. 그리고 생긴 게 닮지 않았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지만 남자 부모와 여자 부모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원래 털털하셔서..
▶ 이것 때문에 가장 상처 받은 분은 어느 분이셨어요?
-장모님이셨죠. 그리고 집사람. 그리고 처제. 국회의원 부인들은 주위에서 안 보이는 봉사활동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고아원이나 경로원에 간다든지. 제가 수사의뢰를 한 이후에 집사람이 어느 경로당에 갔는데 뒤에서 할머니들이 그러시더라는 거예요. ‘서방은 할 짓 다하고 다니는데 와이프는 와서 뒷고생 다 하네’ 그런 얘기를 들었다는 거예요. 그런 얘길 듣는 상황에서 ‘저희 남편 그런 사람 아니에요’ 라고 말할 수도 없는.. 범인도 잡힌 게 아니었기 때문에. 저도 딸이 있는데 딸이 결혼을 했는데 제 사위에게 그런 루머가 있다고 하면 저는 사위에게 직접적으로 얘기 못할 것 같아요. 장인어른이나 장모님도 저에게 아무 말씀 안하셨는데 그 즈음에 장모님이 위암수술을 하셔서 운동을 꾸준히 하셔야 하는데 집사람이 저한테 얼굴을 대놓고 하는 얘기가 ‘우리엄마, 창피해서 스포츠 센터도 못 다닌데’ 이 얘기를 하는데 너무너무 미안한 거예요. 뭐라도 있으면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럴 텐데 밑도 끝도 없는 루머는 정치적인 의도에서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루머가 인터넷에 확산된 건 2010년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3일 전이었습니다. 정확히 기업합니다.
▶ 정치적인 의도로서 음해라고 하죠. 네거티브. 그것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사모님이 제일 가슴에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싶어요. 가장 억울한 게 우리 남편은 아무 잘못한 게 없는데 잘못이 없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잖아요. 사모님에게 짧게..
-그런 건 쑥스러워서..친한 동료 의원 중에 저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정현 형, 형하고 형수 사이에 그 정도 신뢰도 없어?’ 저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제가 욕하지 않는 사람인데 그 자리에서 쌍욕을 했습니다. ‘이건 진짜고 아니고의 문제이지 부부간의 신뢰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하냐’ 요즘 강용석 의원이 많이 뜨고 있고 저보다 어리다고 해서 혹시 강용석 의원이라고 생각하실 분이 있을 텐데 강용석 의원은 절대 아니고 다른 저보다 젊은 의원이 저한테 그런 얘기를 했을 때 제가 그 얘기를 했습니다. 신뢰 문제가 아니고요. 없는 루머를 만든 것에 대해서, 그리고 남편으로서 부인한테, 고 변호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가장 억울할 사람인 집사람한테 해줄 수 있는 남편의 최소한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고발을 한 겁니다.
▶ 그 말씀에 심정이 다 나타나 있다고 보고요. 무소속으로 출마하시고 다시 방송으로 돌아오셨는데 정치를 해보시니까 밖에서 볼 때와 안에서 볼 때 차이가 있잖아요. 4년 해보시고 정치란 나에게 이거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제가 국회의원 4년 생활 하면서도 고민을 해봤고 무소속으로 나와서 떨어진 이후 고통이 있을 때도 생각을 해봤는데 아직도 정치는 모르겠어요.
▶ 앞으로의 복귀계획은?
-저는 정치는 안할 생각이에요. 제가 물론 4년 동안 열심히
▶ 오늘 모처럼 모셔서 좋은 모습을 뵙게 되어서 고맙고요. 앞으로 방송에서 계속 펼쳐나가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 유정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