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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의 세계화부터 농수산물 사이버거래소까지, 우리나라 농수산식품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CEO가 있습니다. 바로 지금부터 만나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김재수 사장입니다. 농림부 재직 시절부터 우리 농촌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던 김재수 사장. 그는 아직도 우리 농업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살만한 농촌을 만들기 위해 뛰는 김재수 사장을 MBN ‘정완진의 The CEO’에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입니다.
Q.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신다면?
아버지가 고등학교 교사셨습니다. 그래서 교육열이 참 뛰어나셨던 것 같아요. 중학교에 올라 갈 때도, 고등학교, 대학교를 들어갈 때도 항상 시험의 연속이었는데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과외를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공부를 열심히 하던 편이어서 좋은 성적을 유지했고 고민 끝에 경북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Q. 대학 시절은 어떠셨나요?
당시 행정고시를 보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그 때가 대학교 3학년 때였는데 어느 덧 많은 친구들은 이미 행정고시 1차에 합격 됐거나 아니면 행정고시를 모두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 저도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행정고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행정고시에 합격하게 됐고 공무원의 길로 들어 선 거죠.
Q. 어떤 일들을 맡아서 하시게 됐나요?
농림부 유통 통계원에 배치를 받아 일하기 시작 했습니다. 주로 업무가 농산물 생산비와 농가 소득, 소비량 등을 조사하는 것이었는데 이때부터 우리 농산물의 생산, 유통 과정 등을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또 직접 농가를 찾아가 농민들의 애환을 들으며 조사를 하기도 했고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농민들과도 가까워 졌죠. 아시다시피 농수산물이라는 것이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해서 수요 예측을 하는 것이 힘든데 그에 따른 농산물 파동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파동이 일어날 때면 저는 현장으로 달려가 농민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고 의견을 조율하며 협상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파동의 연속이었던 농림부에 있으면 이런저런 많은 일들을 해결하고 또 배워나가며 유통정책과장, 농업정책과장 등 총 9개 과를 거치기도 했습니다.
Q. 힘든 일이 있으셨다면?
사실 파동의 연장선상에 있었기에 매번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중 마늘 파동이 기억에 남습니다. 값싼 중국산 마늘을 들여오자 우리 농민들이 반발을 해 관세를 부과했는데 중국 정부에서 휴대폰과 폴리에틸렌 수입을 거부했죠. 가까스로 마늘 분쟁이 타결 됐지만 2002년 다시 파동이 일어났습니다. 경북 의성에 많은 농민들이 모여 시위를 시작했고 농기계를 불태우는 등 거센 반발을 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고 농민들과 협상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Q. 해결은 어떻게 하셨나요?
제가 직접 의성으로 달려갔습니다. 시위 현장은 아니나 다를까 정말 살얼음판 같았습니다. 각종 물건들이 저를 향해 날아오기도 했고요. 정말 살벌했죠. 저희가 제시한 것은 마늘 재배의 기계화였습니다. 기계를 도입해 마늘을 재배하면 그만큼 생산량이 늘어날 것이고 생산량이 늘어나면 중국산 마늘에 기대는 수입량이 많이 줄어 들 테니까 말이죠. 설득 끝에 협상은 잘 이루어졌고 파동은 끝이 났습니다.
Q. 또 기억에 남는 성과, 어떤 것이 있을까요?
농촌진흥청의 청장으로 있을 때가 기억납니다. 당시 농촌진흥청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많을 때였는데요. 좋지 않은 인식을 바꾸기 위해 농촌진흥청에 대한 수많은 홍보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보도자료, 전문지 등등 좋은 홍보 통해 농촌진흥청의 위상을 높임과 동시에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 시켰습니다. 그리고 “코피아 센터”라는 우리나라의 앞선 농업 기술을 후진국에 전파하는 센터를 만들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방법 등을 알려주니 그야말로 고기를 낚아서 주는 것이 아닌 고기를 낚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었죠. 또한 “코피아 센터”를 통해 농업의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었으니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Q.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사장을 맡게 된 계기는?
농림부부터 농촌진흥청 등 제가 공직에서만 무려 33년 하고도 3개월을 재직했습니다. 그리고 공직에서 물러나 저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휴식기를 가졌는데 그 때 한 지인이 저에게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사장 자리가 비어있으니 한 번 지원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공무원 생활을 통해 농수산물에 대한 많은 지식과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저에게 적극 추천 하신 겁니다. 저도 한참을 고민 끝에 지원을 하게 됐고 사장 자리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Q. 사장 취임 후, 가장 먼저 하신 것은?
먼저 업무파악을 하는 것이 역시 우선이었습니다. 당시 ‘농수산물유통공사’였던 사명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로 변경했습니다. 그리고 주로 농산물 생산 위주였던 체계에서 유통 위주로 조직 체계를 개편했습니다. 또 전문 인력을 더 충원하고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장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Q. 새로운 사업, 어떤 것들을 하셨나요?
먼저 우리나라 음식, 즉 한식을 세계화시키기 위한 신사업을 전개했습니다. 한류 열풍과 함께 우리 음식과 식품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한식 연구 개발과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자금 지원과 마케팅 등 한식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습니다. 또한 음식 박람회 등을 열고 해외에 이미 진출해 있는 한식당과도 협력했습니다. 그 결과 한식의 선호도가 향상하는 성과를 얻어냈습니다. 또한 한식과 더불어 우리 곡물을 이용해 만든 전통주를 양성하기 위해 전통주 박람회 등을 열고 전통주 지자체 홈페이지와 연계 판매하는 등 우리 식품을 널리 알리기 위한 사업을 주로 펼쳐 나갔습니다. 또 농수산식품 유통의 가격 거품을 빼고 사이버 거래소를 활성화 시켜 소비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어 내기도
Q.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농업은 제일 1차원적인 일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있습니다. 하지만 농업은 1차원적인 일이 아닙니다. 가장 고부가가치 산업이고 매우 창조적인 산업입니다. 농업이야 말로 미래의 좋은 먹거리가 될 산업인 만큼 우리 농촌을 일으켜 세우고 농업의 발전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노력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