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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홍수라 불리는 요즘, 사람들은 다양한 정보를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접합니다. 마땅한 지불을 하고 정보를 받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불법으로 다운로드 받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공짜로 유출되는 정보들이 많은, 이른바 저작권 침해가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디지털콘텐츠 보안을 위해 앞장서는 여성 CEO가 있습니다. 디지털콘텐츠 시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보안솔루션을 개발하는 (주)테르텐의 이영 대표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녀는 여성 CEO로서 지금의 사업을 일으키기까지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합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MBN ‘정완진의 The CEO’ 제작진이 직접 만나 들어보았습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입니다.
Q. 자신의 학창 시절을 돌아본다면?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고 똑똑하다는 말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곤 했습니다. 덕분에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고, 대학에 진학해서는 수학을 전공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복잡하지만 굉장한 잠재력을 가진 암호학에 관심이 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암호학 석박사과정에 진학했고, 암호학을 전공한 1세대 학생이자 여학생 1호가 되었죠. 그때만 하더라도 암호학이란 학문은 우리나라에 막 들어오기 시작한 때였고, 그래서 그런지 모든 부분이 신선하고 독특했습니다.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암호학을 공부하는 내내 흥미로웠고 제 적성과 잘 맞아 만족스러웠습니다.
Q. 보안업계에 뛰어든 계기가 무엇인가요?
공동대표이자 남편인 윤석구 대표는 전자상거래 쪽 네트워크 보안을 전공한 소프트웨어 공학자였고, 저는 암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두 사람 다 보안으로 통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보안 쪽에 능통한 사람들은 가장 최신의 정보를 남들보다 먼저 입수할 수 있기 때문에 트렌드를 미리 읽어낼 수 있죠. 그래서 빠른 시일 내에 초고속 인터넷 유선 광망이 깔리면서 모든 데이터들이 디지털로 변화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었습니다. ‘디지털콘텐츠 보안솔루션’ 이라는 아이템을 내세워 2000년 ‘(주)테르텐’을 창업하게 된 거고요.
Q. 첫 창업,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요?
창업 후 2년간 보안기술 개발에 몰두했고 디지털 콘텐츠의 불법 복제와 무단 사용을 막는 디지털 저작권 관리 기술인 DRM(Digital Rights Management) 제품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보안시장 구축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Q. 그렇다면 그 위기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2002년부터 인터넷 초고속 서비스가 확산되고 포털 사이트를 통해 각종 콘텐츠들이 퍼져 나가면서 2003년, 연예인 화보 서비스가 유행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한 연예인 화보 서비스가 오픈 2분 직전 해킹 당해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 연예인 화보 서비스를 담당했던 업체가 다른 연예인 화보 서비스 오픈을 앞두고 저희 측에게 보안을 의뢰했습니다. 저는 위험부담이 큰 의뢰 건에 대해 주저했지만 노력해 결실을 맺는다면 회사의 전환점으로 작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기나긴 준비 끝에 의뢰 건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며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것은 물론, DRM 관련 부분 80% 이상의 수주를 따내며 1위 업체로 우뚝 서기 시작했죠.
Q. 극복 후, 승승장구 하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연예인 화보 서비스를 계기로 성장의 기회는 잡았지만 야박하게도 현실이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보통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면 유지보수비를 받는데 우리나라는 유지보수비 비율이 0%에 가까워 매번 신규 기술을 개발해야만 그 기술로부터 매출을 얻어내는 악조건의 상황에 놓여 있었거든요. 그래서 위기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났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어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었죠.
Q. 어떤 시도를 하셨나요?
윤석구 대표와 머리를 맞댔습니다. 사실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긴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돈을 벌 수 있었죠. 하지만 그들에게 회사를 맡긴다면 회사의 성격이 바뀌어 꿈꾸던 회사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윤석구 대표와 저는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지금처럼 기술개발에 몰두하면서 때를 기다리면 언젠간 시장이 나아질 것이고 그러면 여태까지 해왔던 노력이 인정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한마디로 벤처정신을 다시 일으키자는 거였습니다.
Q.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나요?
2008년 애플의 앱스토어가 공식 오픈되고, 2010년부터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때’가 오는 듯 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콘텐츠가 빠르게 이동하고 사용자 또한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그만큼 스마트폰 보안의 중요성이 화두로 떠오른 거죠. 저는 이 시장을 놓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시장을 예측해 솔루션을 만들어놓았던 것을 곧바로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 솔루션은 안드로이드 기반, iOS 기반의 모바일 기기에서 제공되는 데이터나 콘텐츠의 불법적인 유출을 방지하는 기술이었습니다. 기업들과 소비자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고 제자리던 매출은 점차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Q.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보안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데... 어떤가요?
가장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곳은 일본입니다. 품질 검증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이지만 묵묵히 기술개발에만 힘쓴 결과, 일본 3대 출판사 중 하나인 동경서적과 계약을 맺어 일본 700여 개의 초중고교에 전자교과서 서비스를 진행시켰고, NEC 등의 업체들과도 연이어 계약을 맺으며 일본시장에서 점점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 중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2010 G20 한국 정상회의에서 사용하는 특수 단말기에 보안시스템을 납품하고 다보스포럼에서 사용하는 갤럭시탭에 문서 보안 시스템을 탑재하는 등 국제행사에서도 성과를 이루며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Q.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현재 개발한 기술에 그치지 않고 정보자산보호분야와 유비쿼터스 디지털 콘텐츠 보안 분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10여 년간 공들였던 일본 시장에서도 어엿하게 자리를 잡으며 그 성과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차근차근 성장해 창업할 당시 목표였던 글로벌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의 목표를 빠른 시일 내에 이루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