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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귄의 후기 걸작 단편을 모은 '세상의 생일'이 번역 출간됐다. 지난해 9월 출간된 '어둠의 왼손'부터 이어진 '어슐러 K 르귄 걸작선'(시공사)의 다섯번째 책으로 마지막 편인 '서부해안 연대기'까지 올해 안에 완간 예정이다.
2002년 발표한 '세상의 생일'은 1995년 네뷸러상 수상작인 '고독'을 비롯해, '세그리의 사정''산의 방식', '세상의 생일' 등이 망라됐다. 르 귄은 서문에서 "우주를 창조한다는 것은 힘든일이다”라고 썼다. 언제나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르 귄의 시선은 여전히 깊고 따뜻하지만 이 작품집에서 보여주는 노작가의 인간에 대한 애정은 좀 더 구체적이고 살가워졌다.
성별이 없는 게센인들의 성인식을 자유롭게 상상한 '카르히데에서 성년이 되기', 남아 선호사상으로 여아가 낙태당하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경고 '세그리의 사정', 네 사람이 있어야 결혼이 성립하는 행성 O에서 펼쳐지는 로맨스 '선택하지 않은 사랑''산의 방식' 등 이 책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인간의 사랑과 성과 삶과 이별이다.
'고독'의 배경은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사라진 이후의 세계다. '11-소로'로 불리는 행성의 남자들은 누구와도 한번에 3회 이상의 대화를 주고받지 못한다. 여자와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산다. 쉽게 성행위를 나누지만, 결혼을 비롯해 타인과 관계 맺을 수 있는 그 어떤 사회적 장치는 사라졌다. 고독 속에 갇힌 개인들만 가득한 내향적 사회를 통해 작가는 '우리'가 아닌 온전한 '개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한다.
'잃어버린 천국들'은 수십 년, 수백 년이 걸려야 도착할 수 있는 별을 향해 쏘아진 우주선의 이야기다. 대부분의 승무원 들은 냉동 상태에 들어가고, 그 자녀들인 중간 세대가 밀폐된 우주선 속에서 자라난다. 출발한 곳도, 도착할 곳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우주선 속에서 학교를 다니고, 결혼하고, 종교 생활을 했다. 마침내 164년 82일만에 발견한 새로운 지구. 우주선의 아이들은 선내에 남기로 한 이들과, 두려움을 이기고 새 행성으로 향하는 이들로 나뉜다. 그리고 평생을 우주선 안에서 보내면서 아무 의미도 없었던 새로운 단어를 배운다. 구름, 바람, 비, 날씨, 시인 같은 단어들. 대지에 도착한 이들은 풀이 자라나는 것을 보고, 춤을 춘다.
작가는 인간의 본질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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