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의 왕' B.B. 킹이 14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자택에서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습니다.
킹의 변호인인 브렌트 브라이슨은 그가 "저녁 9시40분께 자택에서 잠자던 중 평온하게 숨을 거뒀다"고 밝혔습니다.
CNN 방송도 고인의 딸인 패티 킹을 인용해 킹이 당뇨로 인한 탈수 증상으로 지난달 라스베이거스의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본명이 라일리 B. 킹인 그는 변방에 머물던 블루스 음악을 주류로 끌어올린 기타리스트 겸 가수입니다.
1925년 미시시피 주의 가난한 목화 농가에서 태어난 킹은 교회 성가대원으로 활동하고, 전도사였던 삼촌으로부터 기타를 배우면서 처음 음악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목화 농장에서 받는 일주일치 급료를 하룻밤의 거리 공연에서 벌 만큼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보인 킹은 1947년 테네시주 멤피스로 무작정 떠나 친척이자 유명 블루스 뮤지션인 부카 화이트로부터 본격적인 블루스 수업을 받게 됩니다.
멤피스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디스크자키로 활동하며 '빌 스트리트 블루스 보이' 또는 '블루스 보이'라는 애칭을 얻게 된 킹은 '블루스 보이'의 머리글자를 딴 'B.B. 킹'이라는 이름으로 1949년 첫 번째 싱글 '미스 마사 킹'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루실'이라는 이름을 붙인 깁슨사의 기타를 애용하며 '스리 어클락 블루스'(1952년), '유 업셋 미 베이비'(1954년), '스위트 식스틴'(1960년), '더 스릴 이즈 곤'(1969년) 등의 명곡을 탄생시켰습니다.
대표곡인 '더 스릴 이즈 곤'으로 1970년 첫 번째 그래미상을 따낸 킹은 30차례 그래미상 추천 명단에 올라 15번 번이나 수상했습니다. 그 중 두 차례는 2000년대에 수상했을 정도로 60년 이상 왕성한 음악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래
비브라토 주법으로 유명한 그의 기타 연주와 노래는 에릭 클랩튼, 스티비 레이 본, 셰릴 크로, 존 메이어 등의 후배 뮤지션들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외신들은 평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