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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만부 가까이 팔린 만화 전집 ‘조선왕조실록’을 그린 박시백 화백(51)은 지난 12년의 세월을 ‘사명감’으로 정리했다. 2003년 1권을 펴낸 이후 10년만에 20권을 완간했다. 총 4618쪽, 2만5000컷이었다. 지치지도 않는지 지난 2년간 전집을 훑어 캐릭터, 텍스트, 이름 표기 등 잘못된 부분 202건을 바로잡고 최근 개정판을 냈다. 또한 앱북과 전자판도 출간된다.
22일 서울 연남동 출판사 휴머니스트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중요한 개정을 요하는 역사적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계속 고쳐나갈 것”이라고 했다.
세자의 복식에 관한 기록을 여러차례 검토한 결과, 청색, 검은색, 야청색이 혼용된 세자의 복색은 야청색으로 통일했다. 세종 말년에 기록된 복식에 관한 논의에서 세자가 익선관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접하고 그 부분도 반영했다. 전작에서 돌성으로 그려진 행주산성은 토성으로 바꿨으며, ‘S’자 모양으로 굽어진 거북선의 용머리는 포가 나와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직선으로 바꿨다.
중종(조선 제11대 왕)의 외모 변화에 얽힌 일화는 재미있다. 박 화백은 각 인물을 자신이 해석한 느낌대로 표현했다. 다만 실제 있을법한 사실감을 더하기 위해 학원 강사들의 얼굴이 박힌 전단지를 참고했다. 원작에서 그는 중종을 갸름한 얼굴에 자색 수염을 가진 인물로 형상화했는데, 개정 작업때 ‘선조실록’을 보고 자신의 이미지와 흡사해 깜짝 놀랐다고.
“실제 기록에도 갸름한 얼굴에 자색 수염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양 눈사이에 검은 사마귀가 있다는 기록이 있어 양 미간에 검은 점을 추가했습니다.”
2001년 한 신문사에서 만평을 그리던 그는 조선왕조실록에 빠져들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실록 연구에 매진했다. 하루 12시간씩 공부한 결과물을 토대로 1년에 두권씩 내기 시작했는데 초반에는 반응이 미미했다. 완간 후 교육만화로 입소문이 나면서 불티나게 팔렸다.
“방황하고 있다가 이 책을 읽고 역사학자의 꿈을 가졌다고 하는 고등학생의 팬레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또 어떤 독자는 전권의 틀린 한자 표기를 정리해 보내주기도 했지요. 개정판에 반영했습니다.”
개정판에는 400명만 다룬 인명사전을 900명으로 확대했다. 그는 이 시대 주목할 위인으로 조선 제17대 왕 효종을 꼽았다.
“북벌 계획을 추진한 효종은 몽상가처럼 보이지요. 하지만 어려운 조건에서 왕이 된 그는 나라의 미래를 치밀하게 구상했습니다. 왕위를 오래 지켰다면 시대가 요구한 꽤 개혁적인 군주가 되지 않았을까싶네요.”
권력의 소용돌이로 점철된 500년을 곱씹은 그는 “정치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권력을 다루는 것, 두 가지의 조화가 중요하다”면서 둘의 조화가 잘 된 인물로는 세종대왕을 꼽았다.
“정책을 만드는 기획력과 성실함, 민주적으로 토론하고 결정이 내려지면 끝장을 보는 추진력까지 모든 걸 갖춘 천재였습니다.”
그는 시대의 요구에 복무하는 사람을 충신, 자기권력을 탐하는 자를 간신으로 규정했다. 그는 “고려 말 정도전같은 사람은 기존 왕조의 입장에선 반역이지만 시대적 요구에 따랐다는 점에선 충신”이라고 했다.
최근 열풍을 일으킨 유성룡의 회고록 ‘징비록’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역사를 평가할 때 회고록을 기준으로 삼는 태도는 주의해야합니다. 너무 화자의 입장에만 치우쳐있지요. 유성룡을 깎아내리자는 뜻이 아니라, 그 시대의 정치적 흐름을 보면 ‘징비록’은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어린 시절 ‘바벨 2세’ ‘요철발명왕’을 닳도록 본 그는 초등학생때 이미 200쪽짜리 분량의 만화를 3권이나 습작한 만화지망생이었다. 만화가의 자질이 꽃피기 시작한 때는 대학시절(고대 경제학과)이었다. 총학생회 신문, 서대협(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신문 등에 사회 비판하는 만평을 그렸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이후 한 신문사에 취직해 4년간 만평을 그렸다. 정치 이슈를 한 컷에 담아내는 기술은 만화가 생활에 자산이 됐다.
“결국 만화는 한 컷에 압축하는 작업이죠. 죽 있는 사건에서 이야기를 취사 선택하고 호흡을 고르게 유지하는 일련의 작업이 만화니까요. 만화 한 컷 한 컷이 모여 20권이 됐네요.”
요즘 그가 빠진 웹툰은 이상규 작가의 ‘호랑이형님’이다. “요즘 작가들은 참 대단하다”며 무뚝뚝하던 그가 엄지 손가락을 척 든다.
“만화가야 그림 잘 그리는 건 우선이고…. 자기만의 소재, 전문성있는 소재가 필요해요. 전문적인 공부일 수도 있고 스타프래프트(게임)일 수도 있죠. 야구든 게임이든 자신이 확보한 전문성으로 만화를 그릴 수 있어요.”
지난 40대를
“나이 드니까 공부가 쉽지 않네요.” 어색하게 웃는데 조용하지만 강한 장인(匠人)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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