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브로드웨이에서 온 뮤지컬 배우 마이클 리가 다시 브로드웨이로 돌아간다. 오는 10월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하는 뮤지컬 ‘엘리전스’ 무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마이클리는 현재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예정된 일정을 모두 소화하는 대로 한국에서의 활동을 잠시 뒤로 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된다.
그러고 보면 마이클리에게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는 특별한 인연으로 묶인 작품이다. 마이클리가 본격적으로 국내 뮤지컬 무대에 뛰어들 수 있게 한 작품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였으며, 잠깐의 안녕을 알리게 된 작품 역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이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게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국내 활동의 문을 열고 닫게 된 셈이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는 제 인생 최고의 작품 중 하나에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 장르 중 하나가 바로 록앤롤인데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는 이 같은 락앤롤을 통해 극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스토리도 매우 좋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카톨릭 신자로 살아왔고, 종교는 제 삶에 큰 영향을 미쳤죠. ‘지저스 크라이스 슈퍼스타’ 출연이 제 개인적인 신앙심을 굳건하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돼 주고 있어요.”
마이클리가 한국 땅를 처음 밟은 것은 지난 2006년이었다. 당시 마이클리는 ‘미스사이공’에 출연하면서 눈길을 끄는데 성공했지만, 2010년 ‘미스사이공’으로 다시 한국 무대에 오를 때까지 국내에서의 작품 활동은 전무했다. 이후에도 국내 뮤지컬 라인업에서 마이클리라는 이름은 한동안 들을 수 없었다. 그런 마이클리의 본격적인 활동 시작을 알린 것은 2013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 지저스 역으로 출연하면서부터였다.
길었던 공백기를 매우 듯 마이클리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시작으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벽을 뚫는 남자’ ‘서편제’ ‘프리실라’ ‘더 데빌’ 그리고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등에 출연하면서 그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냈다. 가장 한국적인 작품인 ‘서편제’에서부터 다양한 라이센스 뮤지컬까지, 마이클리는 브로드웨이에서 인정받은 가창력에 섬세한 연기력을 더하며 그 명성을 확고하게 다져나갔다.
2년이라는 시간은 마이클리를 변화시키기 충분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우리말에 서툴렀던 마이클리는 이제 통역이 없어도 일상의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실력이 향상돼 있었다. 물론 인터뷰는 정확한 뜻을 전달하기 위해 통역이 함께 했지만, 현장에 있던 이들과 한국어로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을 수 있을 정도로 한국문화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한국사람 다 됐다’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한국에서 적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걱정보다는 순조롭게 진행된 것 같아요.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전반적으로 느꼈던 것은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가 줄어들고 있다는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세계가 작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하하. 이는 뮤지컬 시장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어요. 2006년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를 생각하면 한국 뮤지컬은 큰 부흥을 이뤘어요. 통계적으로만 봐도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세 번째로 큰 뮤지컬 산업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아닐까 싶어요. 브로드웨이가 100년 역사를 가졌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은 20년 만에 거둔 성과니 규모만으로도 큰 발전을 이끌어 냈다고 봐도 무방하죠.”
마이클리가 설명하는 국내 뮤지컬 시장은 짧은 시간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브로드웨이와 국내 뮤지컬 무대를 모두 경험해본 마이클리에게 두 뮤지컬 시장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들어보았다.
“지금 봤을 때는 다른 점 보다는 비슷한 점이 더 많아요. 그래도 아쉬운 점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준비하는 시간이 짧다는 거죠. 브로드웨이에서는 4~5주 걸려야 되는 작품이라도 4~5일이면 끝이 나니…지금의 한국 스태프들을 보면 빠른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뮤지컬을 만들어 내기 위해 바쁘게 움직여요. 국내 뮤지컬 시장 사정상 이해는 되지만 그런 부분을 고쳐나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무대에 올리는 공연의 수에 비해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 또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봐요.”
마이클리의 브로드웨이 복귀작인 ‘엘리전스’는 일본계 배우 조지 타케이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엘리전스’는 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면서 일본은 패전국이 된 이후, 미국에서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되는 일본계 미국인들의 억압과 편견을 다룬다.
“‘엘리전스’ 속 인물들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인데 단순히 얼굴이 일본인과 똑같다는 이유로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을 받아요. 그로 인해 그들은 자신이 살고 있던 집을 국가(미국)에 빼앗길 뿐 아니라, 수용소와 같은 곳에 모여서 생활하게 되죠. ‘엘리전스’의 내용은 상상에 의해서 만들어진 픽션이 아닌,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뮤지컬이에요. 미국인들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한 페이지인거죠.”
‘엘리전스’에서 마이클리가 맡은 역할은 뛰어난 머리와 리더십을 가진 법대생 프랭키이다. 극중 인물들의 자유를 위해 반란을 이끄는 역할이기도 하다. 미국에 여전히 인종차별적인 모습이 존재한다고 밝힌 마이클리는 작품 선택의 이유에 대해 작품이 본연이 가지고 있는 힘을 무시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생긴 모습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권리가 박탈당한다면 어땠을까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미국에는 여전히 인종차별적인 요소들이 많이 있어요.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역할이 매력적이었을 뿐 아니라, 역할을 떠나서도 작품이 가지고 힘도 컸어요.”
마이클리가 브로드웨이에 다시 돌아가는 것은 축하해줄 일이나 단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 바로 한국과 일본의 뿌리 깊은 반감이다. 더욱이 ‘엘리전스’의 시대적 배경은 우리나라가 일제치하에서 독립된 시기와도 일치한다.
“한국과 일본의 뿌리 깊은 반감은 한국에서 생활하고 그 문화를 알아가면서 알게 됐어요. ‘엘리전스’에 출연하면서 이 같은 반감에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뮤지컬은 단순히 ‘일본인’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아요. 일본인을 소재로 한 미국의 내용인 것이죠.”
대답을 마친 마이클리는 갑작스럽게 기자에게 되묻는다. “저는 한국인일까요 미국인일까요?” 마이클리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미국인이라고 말하기에는 외모와 핏줄은 한국인에 가까웠으며, 그렇다고 한국인이라고 말하기에 그의 자라온 배경은 미국인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하자 마이클리는 빙그레 웃으며 “동양계 미국인으로 자랐던 어린 시절, 전 미국문화만 접했던 순수 ‘미국인’이었지만 정작 그 속에서는 항상 ‘외국인’이었다”며 말을 이어갔다.
“그렇기에 ‘엘리전스’ 속 인물들의 차별과 억압, 소외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어요. 많은 한국 사람들은 저를 한국 사람으로 바라봐요. 보는 시선이라든가 하는 행동이라든가 전반적으로 봤을 때 저는 전형적인 한국인과 거리가 멀지만, 외모가 같다는 이유로 저를 한국인으로 바라봐 주시는 거죠. 한국에서조차도 그런데 미국에 있었다면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몇 배가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죠. ‘엘리전스’라는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미국인으로서, 더 나아가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브로드웨이에 다시 돌아가는 마이클리에게 “브로드웨이는 여전히 꿈의 무대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답변은 “Of Course”이었다.
“제게는 여전히 꿈과 같은 곳이에요. 무대에 있어서는 천국과 같은 곳이죠.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지난 2년 동안 한국에서의 무대는 정말 환상적이고 즐거웠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로드웨이에 대해 듣고 자랐기 때문인지 한국에 있더라도 브로드웨이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항상 궁금했고, 관심을 기울였었죠. 브로드웨이 복귀는 제게 있어 매우 특별하면서도 저를 흥분되게 만들고 있어요.”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마이클리라는 배우의 목표에 대해 들었다.
“배우로서 어떻게 하면 발전해 나갈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나중에는 진심으로 뮤지컬 연출도 해 보고 싶고요. 나이가 들어서 일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 자체만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공연의 전체를 바라보고 싶어요.”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