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김진선 기자] “한국어 조금 합니다. 2년 전에도 한국에 왔지만, 2, 3일밖에 없어서 달라진 점은 모르겠지만, 30년 전 한국과 비교하면 굉장히 많이 달라졌죠”
히라타 오리자는 90년대, 자극적이고 격렬한 연극이 유행하던 일본에 일상을 옮겨 놓은 듯 담담하고 아날로그적인 느낌의 작품을 내놓아 주목을 받은 연극 연출가 겸 극작가다. 그의 작품에서 한국은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을 소재로 한 연극 ‘빛의 도시’ ‘한강의 호랑이’ 등을 무대에 올렸을 뿐 아니라, 일본의 조선 강제병합 직전인 1909년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 희극 ‘서울시민’과 ‘도쿄노트’ ‘서울노트’ ‘잠 못 드는 밤은 없다’ ‘이번 생은 감당하기 힘들어’ 등의 작품은 한국에서도 공연되기도 했다. 2002년에는 ‘강 건너 저편에’로 첫 한일합작 작품을 만들기도 했고, ‘연극입문’ ‘현대구어 연극론’ ‘서울시민’ 등 연극에 관한 저서를 내놓기도 했다.
히라타 오리자는 그의 저서나 연극에서 묻어나는 것처럼, 수더분하고 편안하면서도 열린 마음이었다. 특히 연극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듯 했다.
Q. ‘모험왕’과 ‘신모험왕’으로 한국을 찾았는데 얼마 만에 한국에 온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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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C) T.Aoki |
Q. 예전에 공연한 ‘서울시민’ 역시 다루기 힘든 소재인데 굳이 다룬 이유가 있나
A. 1909년 한국인들이 식민지 되기 전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하지만 등장 하는 인물에는 악인이 없다. 한국인들에게 악 감적이 없는 일본인들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분위기를 그리기 위해서는 식민지가 나쁜 것인지 객관적으로 봐야할 것 같다고 생각했고, 식민지 속에서 얼마나 사람들이 변하는지, 악의가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변모하는 과정을 최대한 몰리서 보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 멀리 보면 안 보이니까, 아주 성능 좋은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는 느낌으로.
Q.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은데
A. 어려웠다. ‘서울시민’은 오해 받기도 쉬운 작품이라, 30년에서 50년 뒤에 이해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98년 처음 발표하고, 일본에서조차 내가 무엇을 그리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전쟁과 나쁜 상인, 일본 사람도 불쌍한 사람들 이야기로 그려졌는데 관객들은 당황 했고 우익과 좌익에서 비판을 받았다. 더 보편적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았다.
한국을 두고 일본을 보면 전혀 다른 일본이 보인다. 그건 85년 한국에서 유학한 체험이 기초가 됐던 것 같다. 그전 까지 일본에서 쭉 자랐기 때문에 일본인이라는 한 개인으로만 생각했지 ‘일본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나는 히라타 오리자라는 개인보다 ‘일본사람’이더라. 당시 반일감정이 심해서 무슨 말을 해도 ‘일본’이라는 생각이더라. 어떤 관계 만들어도 모두 다른 것인데, 그때 내가 ‘일본사람’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됐다.
이는 극작가로서 글을 쓰는 데 기반이 됐다. 그건 다른 일본 극작가에게는 없는 것이기에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유럽을 의식하면서 쓴다는 것은 (유럽에)민족이 많으니까 민족 문제가 테마인 것이지만, 반대로 유럽에서 작품을 할 수 있는 식민지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에서 한국이 빠질 수 없다. 일본 극작가 중에는 민족 문제를 다루는 작가가 없다. 한국과 일본이 단일 민족이라 그런 듯하다.
Q. 그러면 객관적으로 일본을 봤을 때 어떤 느낌인가
A. 나도 애국자라서(웃음). 진짜 애국이라는 것은 나쁜 점도 객관적으로 보고 고쳐나가야 한다는 생각한다. 일본은 일본 사람들끼리 되지만, 다른 문화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어렵고, 배려가 없다고 생각한다.
Q. 그럼 한국은 어떤 것 같은지
A. 한국인들은 할 때는 한다. 가끔씩 안 할 때도 있지만(웃음). 일본은 아시아의 유일한 선진국이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은 선진국이 된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배우나 성기웅 연출 등을 보면 객관적으로 이미 한국은 선진국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굉장히 빠르게 성장했지만, 왠지 목표가 사라진 느낌이다. 영화 ‘국제시장’을 봤는데, ‘가난하니까’라는 인식이 짙은 것 같더라. 현재는 가난한 시기를 넘었기 때문에 그 다음을 생각해야 하는 것 같다.
Q. 왜 한국에 와서 유학을 했는가. 당시 한국이 기억이 나는가
A.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본어와 한국어는 어순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대학교 때 전공이 일본 근대화였는데, 당시 한국이 근대화의 완성 단계였다. 올림픽이 열리기 전에, 그 시기에 한국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당시는 63빌딩이 건설되기 전이었다. 민주화 운동을 벌이고, 학교나 학원 근처에서 마스크를 써야 했다. 연세대학교 정문에서 데모가 있어서 후문 쪽에 숙소가 있어서 뛰어가면 사법 경찰이 가방체크를 하고 기숙사에는 도청장치가 있었다. 치약을 눈 아래에도 묻힌 적 있다.
Q. 작품이 특이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는 편인가.
A. 아이디어는 그 때마다 다른데 상황에 따라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Q. 작품을 하면서 언제 만족감이 드는가.
A. 작품을 하면서 가장 희열을 느낄 때는 많이 있다. 2002년 국립극단에서 한일합작으로 ‘강 건너 저편에’라는 작품을 했는데, 일본배우 6명, 한국 배우 5명이 함께 했다. 합작이 처음이라 쉽지 않았지만, 프랑스와 했던 작품과 달랐던 것 같다. 작품이 완성됐을 때 ‘연극하기를 잘 했다’고, 느꼈고 양국에서 연극 상을 받아 더 뿌듯했다.
Q. 연극과 희극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연극은 어렸을 때부터 즐겼으면 하는 분야다. 일본에서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연극 수업을 하기도 한다.
티켓을 사서 공연을 보는 것은 50년 후에는 없어질지 몰라도 ‘연기하는 것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스포츠가 2500년 전부터 있다고 하던데, 사람들이 스포츠를 그저 바라보고 즐기는 시기가 있었다면 요즘에는 직접 운동을 하지 않는가. 연극도 보고, 직접 할 수 있는 장르다.
변화하지 않으면 남을 수 없는 것처럼 연극도 계속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연극처럼 배우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고 느끼는 것은 영화에서 못 느끼는 감정이다. 관객들이 극장에 들어왔을 때 배우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것도, 배우들이 있는 공간에 관객들 들어온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다. 일반적으로 관객들이 자리를 잡으면 배우들이 들어오는 방식과 다른 것이다.
희곡은 도덕적으로 사람들에게 납득하라고 하는 것은 없다. 만약 살인 사간을 저널리스트가 다룬다면 사실을 중점적으로 하겠지만 극작가는 ‘이렇게 해도 살인자도 인간이다’ 혹은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다’라는 관점을 보여야 한다. 물론 관객이 판단하는 것은 싫은 일이지만(웃음), 어떤 사건을 작품을 통해 느끼고, 생각하고, 가장 중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김진선 기자 amabile1441@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