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셰프들
중식계의 왕사부로 불리는, 왕육성
![]() |
“예 알겠습니다. 사부!”
“사부! 말씀하신 요리 준비됐습니다”.
중국 무협영화에서나 나오는 ‘사부’라는 단어가 난무하는 중식당이 있다. 보통 양식당에서는 셰프라는 호칭을 쓰지만 이곳에선 사부라는 단어만 사용된다. 중식대가 왕육성(62세)씨가 근무하는 중식당이 바로 그 곳이다.
왕 사부의 부모는 모두 화교다. 그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한국땅에 자리 잡은 이유는 기구하다. 주물기술자로 광복을 맞은 한국에 기술 전수를 위해 초청 받아 왔지만 6.25전쟁으로 남북이 분단되면서 고향인 중국으로 돌아 갈 수가 없게 됐다. 결국 아버지는 한국에서 결혼을 하고 터를 잡는다.
아버지의 주물산업이 사양산업이 되면서 덩달아 그의 집안도 가세가 기운다. 5남매 중 장남인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생계를 위해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기 화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식당 일이었다. 어릴 시절 어머니 등 뒤에서 배운 물만두, 볶음밥 만드는 기술이 요긴하게 쓰였다.
![]() |
![]() |
1972년 대관원이라는 곳에서 요리를 처음 배웠다. 줄을 서서 기술을 배울만큼 유명한 중식당이었다. 주방은 쉽게 들어 갈 수 없던 곳이기에 그는 홀에서 서빙을 하면서 홀 매니저에게 요리를 배웠다. 그 당시 홀 매니저들은 비록 주방에 있지 않았지만 요리를 모르면 서빙을 할 수 없었기에 그들의 머릿속에는 셰프 못지 않게 수백여 가지의 레시피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2년 간의 대관원 생활 후 중식당 4대 문파(아서원, 홍보석, 사보이호텔 호화대반점, 신라호텔 팔선)중 한 곳으로 알려진 홍보석에서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한다. 매일 정상 출근시간보다 2시간 전에 도착해서 하루를 준비했고 퇴근 후에는 그날그날 배운 기술들을 일기장에 그림을 그리며 기록을 했다. 그는 지금도 그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고 회상한다.
홍보석, 호화대반점을 거쳐 프라자호텔에 있을 당시 코리아나호텔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왔다. 그는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고 중식당 대상해의 오너셰프로 활동했다.
![]() |
↑ 좌측부터 진생용, 장홍기, 왕육성, 추본경, 학본춘 |
그가 운영하는 중식당은 문인들의 놀이터다. 어른들의 수다가 끊기지 않는다. 요리 연구가와 푸드 스타일리스트, 교수 등 요리 관련 된 사람들이 자주 모이는 곳이며, 종종 중식계 왕사부들의 요리 사랑방이 되기도 한다.
그 장소는 다른 곳과 다른 점이 많다. 먼저 회원제다. 고객만족과 고객관리를 위한 노하우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재 회원 수는 오픈한지 8개월 만에 2000여명에 이른다. 또 짜장, 짬뽕, 우동같은 면 요리는 내지 않는다. 오향냉채, 대게살볶음, 카이란소고기볶음, 멘보샤, 소고기양상추쌈 등 그가 엄선한 요리만 맛볼 수 있다.
![]() |
![]() |
왕사부는 후배양성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올해 초부터 그의 인생 제2막을 시작했다.
제1막이 자신을 위한 삶이었다면, 제2막은 후배들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시작은 서울 마포 서교동에 위치한 '진진'이 바로 그곳이다. 그는 아버지의 고향인 천진의 '진'과 마포의 옛 이름인 양화진의 '진'을 더해서 진진'이라고 지었다. 진진은 40년 넘는 경력의 그의 요리기술과 15년 이상의 경영노하우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그의 후배 양성 프로젝트는 자신이 100%를 투자하여 제자들에게 가게를 하나씩 차려주는 것이었다. 일반인에게 체인점을 내주는 게 아니라 그의 제자들에게만 내주는 것이다.
또한, 제자들이 이익을 많이 가져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제자들은 자신의 가게처럼 더 열심히 일하고 있다.
![]() |
'요리사는 정년이 없다'라고 말하는 그에게 지금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그 역시 젊었을 때에는 남들처럼 돈 많이 벌면 성공이고 행복한 인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순이 되어서야 ‘주는 것이 받는 것이다’라는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마음을 비우고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고 사니 자신은 너무나 행복한 삶을 산다고 자신의 삶을 자평한다.
그에게 요리란 "행복의 조건"이다. 품질 좋은 식재료로 정성껏 만드는 그의 일품요리를 먹는 사람들이 행복함을 느끼면 그 행복함이 자신에게도 전해지기 때문이다.
Next. 한국의 셰프들 열 네번째 이야기 손님은 한국 최초의 음식감독이자, 푸드앤컬쳐 아카데미 김수진 원장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기획·글=이길남 / 사진=이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