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에서는 화선지에 먹으로 그린 작품을 이해하지 못해요. 그린 것에만 가치를 매기는 문화 때문이죠. 그리지 않고 남겨둔 것, 이를테면 화면의 여백을 좀체 이해하지 못하죠.”
유럽 최대 아시아 미술관인 기메박물관에서 한국 작가로는 처음 개인전을 연 ‘숯의 화가’ 이배(59)의 말이다. 파리에서 25년간 머물며 작업하고 있는 그는 19일(현지시간) “내가 캔버스에 그리는 이유는 안그린 여백을 위해서다. 이 말 뜻을 서구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동양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적잖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화선지가 아닌 캔버스에 숯으로 그린다. 숯가루에 안료를 섞어 붓질을 한 뒤 그 위에 아크릴 미디엄을 칠하고 또 붓질을 하고 이 과정을 세번에서 다섯번 반복한다. 이를 통해 먹이 캔버스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는 시각적 효과를 얻는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중첩시켜 질감을 두텁게 하는 서구 작가들과 그의 작업이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작가는 “내 작업이 서구가 아시아 문화를 이해하는 데 다리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메박물관 제일 높은 전시실인 4층에는 그의 고향 경북 청도 인근에서 태운 숯뭉치들이 설치물로 분해 바닥에 놓여 있다. 다섯점의 설치물이 바닥에 놓여 있고, 석 점의 회화와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 작품이 선을 보인다. 작가는 “소나무 숯들을 고향에서 옮기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긴 작업이었다. 숯은 나무의 가장 순수한 상태로 정결성이 있다”고 말했다. 기메박물관에는 인도 간다라 불상과 한중일 도자기와 불상들이 많이 전시돼 있다. 신성하고 성스러운 기운이 가득 찬 공간이다. 작가는 “먹의 원형인 숯은 물질이면서도 물질이 아닌 정신성을 담는 재료다. 내 작업도 결국 본질과 정신을 보여주는 데 있다”고 말했다. 기메박물관 별관에서는 자수 작가 손인숙 선생의 개인전도 열린다. ‘안채’라는 주제에 맞게 보자기와 한복, 각종 장신구가 아기자기하게 전시돼 있다. 장승업과 신윤복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도 눈에 띈다. 루브르 박물관 옆 장식박물관에서는 전통에 뿌리를 둔 한국 작가들의 공예전이 펼쳐지고 있다. 파리 도심 곳곳에서 한국 문화의 향기가 한껏 피어오르고 있다.
[파리 =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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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메박물관서 개인전 연 이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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