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태호 작가 |
'미생' '파인'의 윤태호 작가는 지난 19일 서울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제5회 에버노트 유저 컨퍼런스에 강연자로 나서 노트하는 습관이 창작의 비밀이라고 말했다.
그는 “펜으로 종이에 직접 그리던 예전과 달리 태블릿을 통해 그리는 요즘 웹툰은 그림보다 스토리가 더 중요해졌다”면서 “스토리를 개발하기 위해 항상 노트 어플에 취재한 내용과 자료들을 기록한다”고 말했다.
윤 작가는 최근 '파인'의 연재를 끝냈다. '파인'은 1970년대 후반 전남 신안을 무대로 좌초한 보물선에서 골동품을 꺼내려는 자와 이를 훔치려는 자들 사이의 얽히고설킨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이기심으로 똘똘뭉친 악인들의 이합집산이 매회 반전을 만들어내며 다음카카오 웹툰에서 네티즌 최고 평점을 받았다. 생생한 지역 사투리와 사실적인 당시 배경 묘사가 극에 몰입하도록 돕는다는 평이 많았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파인'을 제작하기 위해 자료를 모은 과정을 소개했다. 그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1977년의 사건, 사고 기사를 모조리 스크랩해 에버노트에 넣어두고 틈만 나면 살펴봤다”며, “에버노트를 열면 마치 내가 1977년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속에서 사건, 사고뿐만 아니라 문화계 뉴스, 토종 사투리, 한국화 된 일본어 등 스토리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덧붙였다.
일주일에 세 번 퇴근해 세 번만 잠을 자는 생활을 하고 있는 일중독자인 그는 '파인' 연재를 끝내자마자 '미생 시즌2'의 제작에 착수했다.
'미생 시즌2'에 대해 그는 “곧 다음카카오에 연재를 시작할 예정”이라며, “이번엔 장그래가 중소기업에서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편의 코트라에 이어 이번엔 무역보험공사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며 관련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날 강연에서 윤 작가는 국민만화가 된 '미생'의 탄생 일화도 공개했다. 그는 “'미생'은 사실 20여년 전인 1994년에 떠올린 아이디어가 발단이었다”며, “당시 창업과 내기바둑에 관한 만화를 준비하면서 자료를 찾기 위해 서울 서초동 국립도서관을 드나들었는데 그때 어려운 경제용어들을 노트에 필사했던 경험이 한참 후 '미생'을 만들 때 도움이 됐다”고 술회했다. 하지만 그 노트의 행방에 대해 그는 “'미생'에 직접 참고하지는 못하고 연재가 끝난 후에야 발견했다”고 말해 객석의 웃음을 끌어냈다.
윤 작가는 이어 2010년 '내부자들'을 그리기 위해 캐릭터별 연표를 만든 엑셀 파일을 공개하며, “각 인물들의 일생과 해당 연도의 주요 사건들을 일목요연하게 기록해두면 긴 연재 기간 동안 스토리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미생', '이끼', '파인', '내부자들'등 윤 작가는 주로 실제 있을 법한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다. 현실과의 단단한 연결고리 속에서 디테일을 강조하는 것이 그의 작품의 특징이다. 또 그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결핍을 갖고 있지만 성실하다. 선하거나 악하거나 관계없이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자신의 목표를 향해 매진한다. 이에 대해 그는 “흥미로운 사건을 만들려면 흥미로운 인간이 등장해야 하는데 이때 흥미로운 인간은 한계가 많은 인간이어야 한다”면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 스스로 발전해 나아가는 인물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많은 작품들을 했지만 비슷한 캐릭터는 하나도 없다”며 “그림 그릴 때 너무 힘들지만 캐릭터마다 전혀 다른 개성을 주려 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독자들이 그가 만든 캐릭터를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묻는 한 참가자의 질문에 “각각의 캐릭터들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삶을 발견하기를 바란다”면서 “타인의 평가에 주눅 들지 말고 힘내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화를 그린다”고 말해 청중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에버노트 코리아가 주최한 이날 컨퍼런스에는 1000여명이 참석해 노트 어플을 통한 아이디어 채집과 기획 비법을 공유
[글·사진 = 양유창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