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우리가 실패하면, 성난 의회는 연방준비제도의 실권을 모조리 빼앗으려고 할 것이다. 나는 연방준비제도의 파괴를 이끈 결정을 내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2008년 9월 16일 백악관에서 침울한 표정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보좌관들과 밴 버냉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은 긴급회의를 열었다. 통제하기 어려운 금융위기와 1년 이상 싸워왔지만, 이 날 내려질 결정은 무게감이 남달랐다. 세계 최대 보험회사인 AIG에 850억 달러를 구제금융하는 결정을 앞두고 부시 대통령에게 설명하는 자리였다. AIG는 리먼 브라더스보다 규모가 50% 이상 컸다. 130개국의 7400만명의 고객을 거느린 AIG의 붕괴는 금융회사의 연쇄도산을 부르는 방아쇠가 될게 분명했다.
세계경제의 운명을 가늠할 결정이었지만 그 누구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다. 그날 저녁 의회에서도 재무장관 폴슨과 버냉키는 상하원의장을 비롯한 의원들과 마주앉았다. 최선을 다해 이 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득했지만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 해리 리드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두 분의 결정이고 두 분의 책임입니다.”
버냉키와 이사회가 결정으로 내리더라도 고맙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국가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정치적으로 인기없는 결정을 내리는 것인 연준이 독립된 중앙은행으로 존재하는 이유였다. 장고 끝에 버냉키는 발표했다. ‘동부 서머타임 오후 9시, 연준은 850억 달러를 AIG에 대출한다.’
2006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 연준을 이끈 밴 버냉키의 자서전 ‘행동하는 용기’(까치)가 6일 전세계에서 동시 출간됐다. 연준을 떠난 뒤 1년 동안 집필한 책으로 자신의 인생을 전체적으로 회고하면서, 특히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극복한 막전막후를 충실하게 들려준다.
경제학자로서 대공황을 연구했던 버냉키는 2007년의 금융위기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채고, 제로 금리라는 사상 초유의 정책으로 소방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버냉키의 많은 정책은 전례가 없는 시도였다. 그는 “정책을 개선하여 국민들이 더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쓰이지 않는다면, 경제학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자문해왔다”고 이 책에서 말한다.
1부에서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소도시 딜런에서 성장한 버냉키의 어린 시절과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로 오랜 시간을 보낸 후, 부시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서 연준의 총재로 활동하는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2부에서는 최악의 금융위기로 치닫는 미국 경제를 보호하고자 ‘행동하는’ 버냉키와 연준, 재무부 동료들의 모습이 상세히 서술된다. 3부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양적 완화 정책을 펼치는 연준과 위기가 어느 정도 극복된 뒤 테이퍼링을 고민하는 버냉키의 모습이 그려진다. 2014년, 임기를 마친 버냉키는 브루킹스 연구소로 첫 출근하는 모습을 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버냉키는 “경제위기는 연준의 투명성을 더 높였을 뿐 아니라 연준이 금융의 안정성 유지를 그 임무의 중심으로 회복하는 데 일조했다”고 회고한다. 그는 “통화정책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면서 “교육의 질, 기술혁신의 속도, 그리고 좋은 임금의 일자리를 만드는 일 등을 결정하는 건 의회의 도움이 필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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