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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에 유학생으로 처음 갔을 때, 그는 구호단체에서 일하며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이 변화하는 걸 지켜봤다. 그의 꿈은 정부의 지원금이 아닌 아프리카의 빈곤 문제를 장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CIA 요원이기도 했던 휘트는 1997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며 동료와 보드게임 ‘크레니엄’을 만든 스타였다. 줄리아 로버츠 같은 명사의 마음을 사로잡고, 스타벅스에서도 날개 돋친듯 팔려나갔다. 광고까지 찍었을 정도다. 이후에도 내놓는 게임마다 그해의 게임으로 뽑혔다. 휘트의 형 맥스는 ‘버라이어티’의 편집장을 지낸 언론인. 온갖 망언을 퍼부으면서 동생의 새로운 게임을 구박해온 형은 동생의 인생을 건 도박에 동행하기로 했다.
2008년 1월 빌 게이츠는 다보스 포럼에서 ‘창조적 자본주의’를 주제로 연설했다. 기업들에게 경제적 사다리에서 가장 낮은 단계에 있는 소비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혁신적인 제품 개발을 촉구하면서 자선만으로는 빈곤에서의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는 시장의 힘이 필요하며 그들이 스스로 길을 다져 나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맥스는 빌 게이츠의 연설에 감동했다. 전세계적으로 경기가 침체되고, 일자리가 사라지고, 은행이 망하는 상황에서 개발도상국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벤 매키벤이 ‘심오한 경제’라는 책에 쓴 새로운 실험에 주목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지속가능성이 훨씬 높은 소규모지역시장을 육성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패러다임이었다. 맥수는 벤 매키벤의 실험이 아프리카라면 가능할거라고 봤다.
가나는 이상적인 곳이었다. 절반 이상이 전기가 없는 곳에 살고, 많은 사람이 장이 서는 읍보다 더 멀리 가본적이 없다. 가나가 사하라 이남 국가중 1인당 GDP가 10위안에 드는 곳이긴 했지만 빈곤율이 높았고, 성인의 공식적인 교육이 평균 4년에 불과했다. 인구의 4분의1이 문맹이었다. 하지만 도착해보니 그곳은 지옥에 가까웠다. 찌는듯한 더위, 수많은 벌레와 병균, 어쩌다 한 번 나오는 물, 스릴 넘치는 교통상황, 원조에 익숙해 공짜를 당연시하는 문화, 가나인들의 무감각한 시간관념, 관료들의 부정부패…. 수많은 난관과 좌절이 형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2009년 1월 창업을 했다. 형제의 사업 실험은 좌충우돌이었다. 부로는 직원이 배터리를 실은 트럭을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고객들을 직접 찾아다니는 1차원적인 마케팅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하루에 1달러로 먹고 사는 지상에 10억명 정도 되는 사람 중 서른 명 정도를 모아놓고 ‘우스운 짓’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인입니다. 건전지를 빌려드립니다. 건전지 수명이 다하면 언제든 바꿔줍니다. ”
밝은 초록색 바탕에 검은 당나귀 로고가 찍힌 ‘부로’건전지를 팔았다. 몇번이고 다시 충전할 수 있는 니켈-수소 AA건전지. 비용은 한달에 75페세와, 미달러로 70센트에 불과했다. 사업은 계절에 따라 부침이 컸다. 형제와 동업자들은 매일 코포리두아 마을을 돌며 헌건전지를 새것으로 교환해주고 임대료를 수금했다. 점차 에이전트를 늘려갔다. 수금을 하면, 수수료를 나눠줬다. 교사, 농부, 술집 주인, 재단사, 심지어 지역 정치가도 이 일에 뛰어들었다. 2011년이 되자 한달에 3000개의 손전등을 DHL로 들여왔고, 6000개의 건전지가 도착했다. 부로 건전지를 동력으로 돌아가는 장치들도 팔리며 월수익이 늘기 시작했다. 그동안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물 펌프나 개량된 종자같이 실질적인 상품도 팔려나갔다. 기적에 가까운 성공이었다.
이 작은 기업이 가져온 결과는 엄청났다. 전기와 상하수도 같은 공공시설이 없는 시골 사람들에게 건전지는 손전등과 라디오라는 두 가지 필수 기기를 작동시키는 도구다. 손전등은 마을 사람들이 밤에 달팽이나 영양 같은 동물을 사냥할 수 있도록 돕고, 아이들이 저녁을 먹은 후에 숙제를 할 수 있게 했다. 밤에 걸어다닐 때는 손전등이 생사를 갈라놓을 정도다. 휴대용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가나인들에게 뉴스와 오락을 제공하는 유일한 도구다. 이들은 라디오로 레게음악을 들었다. 게다가 이 전지는 버려진 폐전지를 아이들이 가지고노는 위험도 줄여줬다.
부로는 다른 사업에도 영감을 불어넣었다. 초기 직원들은 하나둘 독립했다. 누군가는 양식장을 설계하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또 다른이는 택시 회사, 건설회사 등을 운영하게 됐다. 그들이 아프리카의 순박한 사람들에게 불어넣은 건 ‘시장경제’라는 씨앗이었던 것이다.
형 맥스는 결국 아프리카에서 돌아왔다. 하지만 강렬한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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