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적 광기와 개인의 파멸…연극 ‘시련’으로 무대서는 이순재

↑ 왼쪽부터 이호성, 정운선, 이순재, 채국희, 지현준

올 연말 명동예술극장은 어느 계절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아서 밀러의 명작 ‘시련(The Crucible)’이 이순재와 지현준 배우, 박정희 연출의 만남으로 극화 된다는 소문만으로 예매 첫날 티켓의 절반, 개막을 보름 앞둔 19일 이미 90%가 팔렸다. 국립극단의 2015년 마지막 작품인 ‘시련’으로 여든셋의 나이에 무대로 돌아온 이순재 배우는 이 작품을 “말년에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큰 작품이 아닐까. 큰 의미가 있는 공연”이라고 말했다.
19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이순재 배우가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 박정희 연출, 이호성, 지현준, 정운선, 채국희 배우와 함께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1953년 발표된 ‘시련’은 매카시즘 광풍에 사로잡힌 1950년대 미국 현실을 강하게 비판한 작품. 1692년 매사추세츠주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세일럼 마녀재판’을 배경으로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과 개인의 이기심이 결합해 만들어내는 맹목적인 집단적 광기가 어떻게 개인과 사회를 파괴해 가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특별히 아서 밀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올라가는 작품이다. 이순재는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원칙을 굽히지 않고 무자비하게 사형을 선고하며 권력의 광기를 보여주는 댄포스 부지사역을 맡았다. 또다른 주연으로 개인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프락터와 강렬하게 대립한다. 선한 역할을 주로 맡아온 이순재가 악역으로 변신하는 것. 이순재는 “‘세일즈맨의 죽음’에 두어번 출연하며 아서 밀러를 무척 좋아하게 됐다. ‘시련’은 특히 대학에서 학생들과 워크샵 작품으로 만들어올리면서 작품의 함의와 캐릭터의 개성이 너무 명료한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기회가 있으면 꼭 한번 서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매카시즘으로 밀러가 곤욕을 치르며 쓴 사회비판적인 이 작품은 오늘 우리 사회에 내놓아도 공감할수 있을만큼 현실성이 넘쳐난다. 고전의 명작성은 시대를 초월해서 의미가 언제든 지속될 수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비록 거짓말을 하더라도 생명을 지키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는게 이 작품의 핵심 질문입니다. 그걸 유지하고 복원하기 위해 많은 희생이 전제되는지 말하고 있죠. 속물적인 종교지도자를 비롯해 캐릭터들이 지금 내놔도 손색없을만큼 생생합니다.”
이순재가 국립극단과 인연을 맺은건 1958년 ‘시라노 드 베르주락’에 조연으로 선 걸 비롯해 같은 해에 단 두차례 연극에 선게 전부였다. 그는 “다시 함께하게 되어 영광”이라면서 “댄포스는 행정과 법률을 모두 다루고 종교에도 심취한 매우 깊이있는 캐릭터라 꼭 해보고 싶었다. 격렬하게 대사를 사용해 힘이 들 것 같은데, 혼신을 다해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했다.
프락터 역은 지현준이 맡았고,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거짓말을 서슴지 않고 마을을 혼란에 빠뜨리는 아비게일 역은 신예 정운선이 맡았다. 박정희 연출은 “배우들이 너무 사랑스럽다”고 운을 땠다. 그는 “이 작품의 코드는 ‘통제되지 않은 욕망, 죽음앞에서의 공포, 거기서 이뤄지는 선택’에 초점을 맞췄다”면서 “무대위에 객석을 올려 관객과 관객이 마주보도록 했다. 제의 공간과 같은 무대에서 17세기의 마녀사냥을 온전히 체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연은 12월 2일부터 28일까지. 1644-2003
[김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