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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맹 가리, 내 삶의 의미, 백선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
1980년 12월 2일 한 러시아계 프랑스인이 쓴 유서다. 입에 권총을 문 노작가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세계인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죽음으로 나아간 그의 선택을 찬사해서가 아니었다. 한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뺄 것도 더할 것도 없이 ‘나’ 자신을 드러내고 생을 마감한다는 것. 범인에게 허락되지 않은 삶을 향한 애도는 그의 생애에 바치는 숙연한 공감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영웅, 유엔 파견 외교관,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뒤 세기적 영화 아이콘인 진 세버그와 재혼한 화려하고도 격정 넘치는 삶의 소유자. 그 와중에 실명으로 한 번(1954년 ‘유럽의 교육’), 에밀 아자르란 필명으로 또 한 번(1975년 ‘자기 앞의 생’), 중복수상이 금지된 세계 3대 문학상인 프랑스 공쿠르상을 두 번 받은 역대 유일의 작가, 로맹 가리(1914~1980)의 치열했던 삶이다.
죽기 몇 달 전, 로맹 가리가 촬영한 구술 회고록 번역본이 ‘내 삶의 의미’(문학과지성사 펴냄)로 나왔다. 작년 가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에서 출간된 뒤 이번에 한국에 소개됐다. 끊임없는 변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자아성찰이 가리 삶의 저변을 장식했지만 그는 ‘삶은 선택이 아니었다’고 단언한다.
“난 내가 삶을 산 거라는 확신이 그다지 서지 않는다. 오히려 삶이 우리를 갖고 소유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마치 스스로 삶을 선택이라도 한 것처럼, 자기 삶인 양 기억하곤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살면서 선택권을 거의 갖지 못했다.”
러시아 이민자 출신으로 폴란드, 프랑스, 미국 등 4대 문화권을 옮기며 다양한 직업과 거치고 경력을 쌓았지만 가리의 청년기는 보통인과 다르지 않았다. 생계를 책임지고자 삼륜차 배달, 카페 보이, 호텔 프런트 직원 등을 거쳤던 가리는 본인은 “삶에 의해 조종당하는 생애”였다고 털어놓는다. 선택의 순간에 침묵해도 삶은 살아지는 것이며, 삶의 주인이 아닌 우리는 받아들일 뿐이라는 잠언과 같은 언설을 그는 회고록에서 드러낸다.
삶의 비극적인 종결과 달리, 그의 인터뷰는 유쾌한 정서로 그득하다. 시쳇말로 ‘꽃뱀’과 동침한 사진을 미끼로 간첩으로 포섭당할 뻔 했다가도 재치로 위기를 벗어난 경험담, 자신이 작가 데뷔를 한 줄로만 알았던 모친의 추궁에 “가명으로 글을 쓴다”고 둘러댔던 이야기 등 유명인의 ‘민낯’은 배꼽을 잡게 만드는 소소한 일상으로 꽉 차 있다.
가리는 미디어에 비친 유명인의 삶이 실체적 삶과는 거리가 있다며 미디어 속 이미지에 속지 말라고도 경고한다. “나 로맹 가리는 언제나 실제의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어떤 로맹 가리라는 이물과 더불어 살고 있다.” 대중이 만들어낸 미디어 속의 환상에 속지 말라는 고금의 진리를 그는 선구안적으로 제시한다.
자기성찰을 유머로 풀어낸 로맹 가리의 회고록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선택 앞에서 누구든 자신의 의도대로 삶을 이끌려 하지만 가리는 삶의 선택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읖조린다. 한 소설가의 소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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