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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다이칸야마츠타야 서점 |
음악이야 만국의 공통 언어라서 그렇다지만 해외의 서점에는 대체 왜 매번 들어가보는지 모르겠다. 글을 쓰고 책을 펴내는 직업이라서 그럴 것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를 제외하고는) 글을 읽을 수 없는 책들뿐이지만 어떤 디자인으로 책을 펴내는지, 어떤 종이를 사용하는지, 책을 읽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 것이다. 얼마 전 들렀던 대만의 ‘청핀서점(誠品書店)’과 일본의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은 ‘서점산책자’인 나에게 작은 충격을 주었다. 거기에 어떤 책이 꽂혀 있는지, 베스트셀러가 어떤 책인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대만과 일본의 두 군데 서점은 ‘서점은 이러이러할 것이다’는 나의 생각을 깨뜨렸고, 문화를 판매하는 미래의 공간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1990년대 초, 지방에 살다가 서울의 서점에 와서 가장 놀랐던 것은 엄청난 규모였다. 지금은 사라진 ‘종로서적’의 계단을 올라가면서, 층마다 다른 분야의 책들이 빼곡하게 쌓여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세상은 넓고 읽어야 할 책은 많았다. ‘교보문고’의 넓은 공간을 바라보면서 이곳에 내가 쓴 책을 꽂아두고 싶다는 꿈을 품기도 했다. 수많은 서점들이 모두 장사가 잘 되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이제는 꿈에서나 만날 법한 풍경이지만 그 시절엔 누구나 책을 선물했다. 선물을 사기 위해 책을 고르는 풍경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다.
옛시절이 좋았다고 탄식하려는 게 아니다. 세상은 변했고 책을 읽는 사람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책을 읽을 공간이 필요하고, 내일에 대한 토론을 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다.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가 알던 서점을 해체하고 재배열했다는 점이다. 널찍한 공간에 수많은 책이 가득 꽂혀 있는 장면을 기대한 사람은 츠타야 서점에 들어가서 무조건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서점의 배치는 체계적이지 않다. 공간을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여기에 외국소설이 있으니 이쯤에 디자인 책이 있겠지’ 추측했다가 매번 배신당한다. 서점은 1호관에서 3호관까지 세 개의 건물로 이뤄져 있지만 세 개의 건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는 없다. 건물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없게 한 것은 공간을 디자인한 ‘클라인 다이섬 아키텍처’의 의도였다. 건물을 디자인한 아스트리드 클라인 씨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너무 넓은 공간에 방치되면 불안해집니다.”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에서 나는 어린 시절의 골목길을 떠올렸다. 골목을 돌 때마다 새로운 풍경들이 펼쳐지던, 비좁았지만 아늑하게 느껴지던 골목길을 떠올렸다. 우리는 광장을 걸어갈 때보다 골목길을 걸어갈 때 더 마음이 설렌다.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은 어떤 공간에서 설렘이 시작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을 만들었고, 일본 전국에 1천 4백여 곳 이상의 츠타야 매장을 운영하는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 주식회사(CCC)’의 사장인 마스다 무네아키 씨는 자신의 책 ‘지적 자본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건물이 좋아서가 아니다. 사실은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이 중요하다. 건물과 건물의 거리, 그곳에 비쳐드는 햇살과 그늘의 조화…, 즉 풍경이다. 빛이 풍경을 만들어낸다. 빛이 없으면 사람은 사물을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식도 불가능하다. 사람에게 풍경을 느끼게 하는 것은 빛과 눈의 위치다. 거기에 가장 적합한 위치를 찾아내는 것이 건축가나 디자이너의 작업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이 문화의 공간을 확장한 사례라면 대만 타이페이의 ‘청핀서점’은 새로운 시간을 창조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청핀서점(본점)은 24시간 영업을 한다. 문을 닫지 않는 서점이다. 24시간 운영하는 서점을 이용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싶었는데, 밤늦게 도착한 서점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즐기고 있었다. 책이나 음반을 사기 위해 들른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진공관 앰프를 통해 재생되는 음악을 들으면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공간을 압축해 놓은 것 같았다. 그들은 정보를 얻으러 서점에 온 것이 아니라 삶을 얻으러 서점에 온 것 같았다.
언젠가부터 책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바뀌고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거나 “좋은 책을 읽는 것은 훌륭한 과거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아예 책을 읽지 않거나, 오직 정보를 얻기 위해 책을 읽는다. 대형서점들은 점점 거대해지기만 한다. 베스트셀러는 점점 더 많이 팔리고, 팔리지 않던 책들은 점점 더 적게 팔린다. 동네마다 작은 서점이 생겨나며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사람들의 욕구를 온전히 채워주지는 못하고 있다.
다이칸야마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마스다 무네아키의 전략에서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의 미래를 엿본 것 같았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발명한 것이 아이폰이나 아이맥이 아니라 ‘컨텐츠를 손쉽게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이었듯 마스다 무네아키는 책과 음반 대신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한 것이다. 마스다 무네아키 씨는 츠타야 매장을 통해 음반 대여 사업을 오랫동안 지속해 왔는데, 사람들이 음반을 사지 않고 빌리는 이유는 싸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이 들을 음반을 직접 편집하려면 음반을 사는 것보다는 빌리는 쪽이 낫기 때문이었다.
물건을 손쉽게 사려면 인터넷 쪽이 훨씬 편리하다. 무료배송에다 사은품도 끼워주고, 가격이 싼 것도 많다. 굳이 매장에 나가서 물건을 볼 필요가 없다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늘 서점을 산책하는 것은, 음반 가게와 문구 매장을 기웃거리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내 삶을 편집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정보와 저 책의 디자인을 결합하고, 지금 흘러나오고 있는 음악의 분위기에 지금 만지고 있는 연필의 촉감을 아우르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시간을 편집하고, 나의 공간
[도쿄·타이페이 = 소설가 김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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