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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오거리 사진관 |
‘사랑별곡’(구태환 연출)에서 노년은 새로운 기회다. 삶의 끝에서 다시없을 마지막 용기를 낼 기회. 주인공 순자는 한평생 자신 때문에 불구가 된 첫사랑을 마음에 품고 자신을 탓하며 살아온 여자다. 돈을 벌어야 하는 장터에서도 쉬어야 하는 집에서도 허리 한 번 제 대로 펴지 못하고 언제나 쪼그려 앉아 생을 지샜다. 그리고 그런 아내의 마음을 알기에 한평생 모질게만 대한 남편 박 씨가 옆에 있다. 질투와 원망 때문에 아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보지 못한 남자다.
서로를 떠나보낼 시간에 이르러서야 둘은 이젠 마지막이란 생각에 서로에게 마음을 열 용기를 낸다. 그렇게 노년은 서로에게 고마웠던 점, 원망스러웠던 점 그리고 사랑을 말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엇갈린 두사람의 마음 뒤에는 시린 사랑이 숨어있었다. 순자 역에는 배우 손숙이 남편 박 씨 역에는 배우 이순재와 고인배가 캐스팅됐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었던 추억의 물건이나 사진을 소지시 40%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추억티켓’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10월 1일까지 동국대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02)1544-1555.
‘웃어요 덕구씨’(김학재 연출)에서 노년은 깨달음의 시기다. 주인공 천덕구는 한평생 자식과 아내를 위해 고물상을 운영해왔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식도 아내도 모두 그의 곁을 떠나고 남은 건 세월에 늙고 지친 몸뿐이다. 그러나 그는 쉽사리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때때로 자신을 찾는 자식들의 전화에도 곁에 없는 아내와 잘 있다고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는 자신의 삶이 뒷마당에 쌓인 고물 같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작품은 천덕구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는 아비와 남편으로서의 삶을 마친 후 노년의 고독을 견뎌내기 위한 자기애를 혹독히 가르친다. 극 내내 덕구는 ‘자기를 알아봐 달라고, 아비로서의 할 바가 끝났다고 자기 인생의 끝이 아니라고’ 소리 없이 외친다. 천덕구의 노년의 외침 속에서 깨닫게 되는 삶과 존재의 의미가 묵직하다. 배우 이용이, 이영석, 김학재 등이 출연한다. 김태수 레퍼토리의 연극 ‘웃어요 덕구씨’는 10월 2일까지 대학로 여우별 씨어터에서. (02)765-9524.
마지막으로 ‘오거리 사진관’(한윤섭 연출)의 노년은 아쉬움의 시기다. 작품은 1년 전 치매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어머니의 꿈에 나타나 “집에 다녀가겠다”고 말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어머니의 생일날 죽은 아버지가 정말 살아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자 아들, 딸, 며느리는 놀라서 허둥댄다. 오로지 어머니만 아이처럼 기뻐하며 남편과 살아생전 못 다한 일을 하려 한다. 바로 사진찍기다. 극 중 어머니는 살아생전 사랑하는 남편과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찍어보지 못한 것을 통탄해한다. 치매가 가장 두려운 삶의 마지막을 준비할 시간을 앗아가기 때문이라고 작품은 말하는 듯하다.
연극은 치매라는 병으로 인해 벌어지는 허구의 일을 그리지만 병을 겪어내는 가족들의 모습은 사실적이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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