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동양인 최초로 독일 최고 권위의 바이로이트 음악축제 개막공연 주역을 꿰차며 세계적 성악가 반열에 오른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46). 놀랍게도 수년 간 옆집에서 살갑게 지냈던 독일 쾰른의 이웃들은 5년 넘게 '바이로이트의 영웅'의 실체를 몰랐다. "제 얼굴이 그려진 포스터가 동네에 걸린 걸 보곤 '네가 유명한 오페라 가수였느냐'며 깜짝 놀라더라고요.(웃음)" 일상 속 사무엘 윤은 노래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남편이자 아빠다.
본색은 무대에 오르기 직전 분장실에서부터 드러난다. 다정한 모습은 간 데 없다. "스스로 180도 달라지는 것을 느껴요. 세포 하나까지 모조리 집중합니다." 지난해 말 시카고 리릭 오페라에서 바그너 '라인의 황금' 알베리히 역으로 성공적 미국 데뷔를 치른 그를 두고 시카고트리뷴지는 "가공할 위력을 지닌 이 한국 성악가가 표현한 알베리히는 지극히 어둡고 위협적인 힘으로 가득했다"고 평했다.
'라인의 황금'의 알베리히부터 '오텔로'의 간교한 이아고, '파우스트의 겁벌'의 악마 메피스토펠레, '토스카'의 비열한 경찰 스카르피아까지. 주로 무겁고 드라마틱한 희대의 악당 역할로 이름을 날려온 사무엘 윤이 간만에 유쾌한 작품으로 한국 팬들을 만난다. 오는 11일 콘서트 형식으로 펼쳐질 도니제티의 코믹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그는 연인들 사이에 끼어드는 능청맞은 약장수 둘카마라로 분한다. 그러나 이 역시 그저 그런 약장수에서 그치진 않을 거라고 그는 장담했다.
"아예 선하거나 아예 악한 역할은 쉬워요. 문제는 어느 한 색깔로 정의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죠. 둘카마라 역시 그렇죠. 저의 둘카마라는 팔색조 같을 겁니다. 코믹하다가도 언뜻 이아고의 교활함이, 메피스토펠레의 사악함이 불쑥 튀어나올 거예요."
지금 세계 주요 극장에서 주인공만 맡는 그이지만 이 곳까지 오는 길은 험난했다. 서울대 음대를 거쳐 이탈리아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에서 공부한 그는 한때 국제 콩쿠르를 14번씩 떨어져 가며 이를 악물었다. "굳이 다른 유럽 성악가들을 제치고 동양인인 저를 고르지 않으면 안되게끔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성량이 얼마나 큰지, 고음을 얼마나 매끄럽게 내는지보다 중요한 건 그 특별한 '플러스 알파'였죠." 하나의 역할 안에서도 천사부터 악마까지 아우르는 다채로운 색깔을 뽑아내는 그만의 노래와 연기력은 콧대 높은 유럽의 오페라극장과 축제들에서 '사무엘 윤이 아니면 안 되게' 만드는 킬러콘텐츠가 됐다.
18년째 쾰른 오페라극장의 종신단원으로 근무하는 그는 2015년부터 1년에 한 명씩 자신의 극장에서 활약할 한국의 후배 성악가를 공개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다. "누구보다도 힘들어 봐서 잘 안다"는 그에게 후배 성악가 양성은 오페라만큼이나 중대한 삶의 목표가 됐다.
"좋은 성악가로 성장하는 과정은 기악 연주자들에 비해 고돼요. '피아노 신동'은 있어도 '성악 신동'은 없는 것처럼요. 인재를 잘 키워내는 시스템이 중요하죠. 이른 시일 내에 한국의 성악도를 세계 주요 극장들에 보내주는 제도를 정착시키고 이를 위한 재단을 설립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결국은 저의 만족을 위한 일이죠."
향후 5년간 전 세계에서 스케줄이 꽉 차 있다는 그는 "오늘도 3시간 눈을 붙이고 왔다"며 씩 웃었다. 내년
'사랑의 묘약' 공연은 1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오신혜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