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힘을 모아 철원지역 비무장지대(DMZ)에 길이 20km 공중정원을 세울 수 있을까.
재일 설치미술가 최재은(64)은 지금 당장 불가능해 보이는 꿈에 도전하고 있다. 그가 지난 2015년부터 추진해온 프로젝트 '대지를 꿈꾸며'는 철원지역 DMZ 안 평강고원이 역설적으로 생태계 보존지역이라는 사실에서 착안했다. 갈등과 분단을 생명의 힘으로 극복하자는 의미에서 공중정원, 통로, 정자, 종자은행, 지식은행 등을 설치하는 계획을 세웠다. 순전히 개인의 힘과 돈으로.
25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프로젝트를 발표한 최 작가는 "언젠가 찾아올 통일을 위해 준비했다"며 "정부와 기업 지원 없이 내 작품을 팔아 번 돈으로 진행해왔다. 통일부에 초안을 보냈지만 답이 없다. 유엔을 비롯해 정부에 다시 제안해보겠다"고 말했다.
대신 그의 사명감과 열정에 감동한 세계적인 작가들이 동참하고 있다. 2014년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 건축가 시게루 반, 덴마크 디자이너 올라퍼 엘리어슨, 인도 건축 사무소 '스튜디오 뭄바이', 단색화 대가 이우환, 설치미술가 이불, 일본 설치미술가 가와마타 타다시 등이 정자 디자인을 제안했다. 건축가 승효상과 최 작가는 탑을 구상했다. 제2땅굴을 이용한 종자 은행과 지식은행 설계는 건축가 조민석이, 그 매뉴얼은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뇌공학과 교수가 기획한다.
최 작가는 "남북 문제만이 아니고 세계 공동 프로젝트다. 대부분 작가들이 재능기부로 동참했다"면서 "북한 작가들을 위해 7개 공간을 비워놨다"고 설명했다.
이날 발표회에서는 모두 12개의 정자 중 5곳의 디자인이 발표됐다. 정자와 탑은 지뢰 때문에 땅에서 3~5m 떨어진 정원 위에 세워진다. 최 작가는 "지뢰를 완전히 제거하는데 498년 걸린다고 들었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철원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한반도의 중앙에 있으며 고구려의 정통성을 잇기 위해 궁예가 세운 태봉국의 도성인 홍원리 '궁예도성'이라는 유적지 의미가 컸다"며 "미래에 용산과 원산을 잇는 경원선이 통과할 것으로 기대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 프로젝트는 2015년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아트선재센터 관장)가 기획한 '리얼디엠지프로젝트'에 작품을 낸 것이 계기가 돼 시작됐다. 초안은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본전시에 초대
이날 프로젝트 발표회에서는 DMZ 등을 탐사한 결과를 토대로 인간이 사라진 이후의 세상을 상상한 논픽션 '인간 없는 세상'(The World without Us) 저자 앨런 와이즈먼이 DMZ 의의를 강의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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