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사라진 시대."
2007년부터 장수 베스트셀러 '트렌드 코리아'를 매년 묶어낸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54)는 지난 12년을 돌아보며 오늘을 이렇게 진단했다. '응답하라 1988'을 향한 환호에서도 알 수 있듯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것이 시대적 흐름이 됐다는 얘기다.
김 교수가 올해도 '트렌드 코리아 2018'(미래의창 펴냄)을 펴내며 내년의 10대 트렌드를 예측했다. 그는 무술년(戊戌年)이자 황금 개의 해, 2018년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WAG THE DOGS'(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를 꼽았다.
최근 정치·경제적 의미를 넘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이 일상에서 자주 발견된다고 그는 진단했다. SNS가 대중매체보다, 1인 방송이 대형 방송국보다, 인디 레이블이 대형 기획사보다 인기를 더 끄는 형상이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일련의 정책은 그동안 소외됐던 시급 노동자,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하청·협력업체의 권익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노력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사회적 약자, 즉 '언더독'의 약진이 눈에 띈다"고 설명했다.
그가 내년 가장 주목할 대상으로 꼽은 건 '워라밸' 세대다. 김 교수는 이 새로운 '직딩'이 2018년 가장 강력한 인플루언서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망했다. 조직보다 개인이 중요한 1988~1994년생 직장인 세대는 귀한 자식으로 자라 개인형 SNS로 소통하며 '퇴준생(퇴사준비생)'을 꿈꾼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집단 문화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이들은 조직 문화를 넘어 사회 전반적인 변혁을 예고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원자화가 가속되는 현상은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추구를 부른다. 덴마크의 휘게라이프, 스웨덴의 가돔 등으로 대표되는 사소한 일상을 보물로 여기는 트렌드다. 이들에게 중요한 가치는 성공 사치가 아니라 커피, 자전거, 인디음악, 아날로그, 동물, 요리, 맥주, 채식처럼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이며 뭐든 집에서 해결하는 '홈루덴스족'을 등장시켰다.
새로운 개념의 휴식 공간인 '나만의 케렌시아'도 대두된다. 투우장의 소가 일전을 앞두고 홀로 숨을 고르는 공간을 뜻하는 케렌시아처럼 도심 속 패스트힐링 플레이스가 각광받고 있음에 주목한 것. 수면카페, 힐링카페, 낮잠 자는 극장을 비롯해 대나무숲과 블라인드 등 익명공간의 발달은 '휴식'이 새로운 상업적 트렌드가 될 것을 알려준다.
기존 관계의 판을 새로 짜는 '대안관계'도 떠오른다. 관계에서도 가성비를 따지는 세대의 등장에 따라 관태기, 랜선이모, 인맥다이어트, 티슈인맥 등의 신조어를 탄생시키는 기능중심 관계맺기가 대세가 되며 싱글웨딩, 비연애, 비혼 등이 보편화 된다는 예측이다.
과잉 공급이 일상화되면서 만성적인 선택장애에 시달리는 소비자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매력 자본'도 떠오른다. 못난이 스니커, 카카오프렌즈 캐릭터의 폭발적 인기에서 볼 수 있듯 인스타그램에 어울리는 개성있는 매력은 필수재가 된다.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플라시보(위약)' 소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성비'보다는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가 더 중요해지면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시발비용, 탕진잼을 위해 소비가 늘어날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밖에도 첨단 기술의 발전은 사람의 접촉을 사라지게 만드는 '언택트' 기술로 이어져 식당의 키오스크, 드론배송, VR쇼핑, 챗봇 등을 보편화시킬 것이며, '만물의 서비스화' 시대에 서비스는 공짜가 아니라 비즈니스모델의 핵심이 된다. 해시태그 운동, 개념소비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촛불 시위의 주역들은 '미닝아웃'으로 신념을 소비하는 반면, 낮은 자존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소비를 통한 자존감 회복'을 추구한다. 김 교수는 "'자존감'이야말로 내년 소비를 좌우하는 키워드가 될 것이라며, 자신에게 선물하는 보상적 소비에 주목하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동안의 작업을 돌아보며 2007년부터 2018년까지 12년간 한국 사회의 메가 트렌드 9가지도 꼽았다. ▲과시에서 가치로 ▲소유에서 경험으로 ▲지금이순간 여기 가까이로 ▲능동적으로 변하는 소비자들 ▲신뢰를 찾아서 ▲'개념 있는' 소비의 약진 ▲공유경제로의 진화 ▲무너지는 경계와 고정관념 ▲경쟁과 휴식사이에서 등이 그가 꼽은 9가지다.
그는 "작년에 예측한 트렌드인 '욜로'는 원래 있던 단어를, 최근 소비현상을 뭘로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찾아낸 키워드인데, 정말 몇개월만에 각광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얼마전 여수에 갔는데
그가 이끄는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는 지난해 10대 히트상품도 꼽았다. 리뉴얼과자, 무선청소기, VR서비스·상품, 인터넷 전문은행, 인형뽑기, 택시운전사, 푸드트럭, 홈 트레이닝, 횡단보도 그늘막, 힐링예능 등이 그것이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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