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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와보시죠?" 정동극장 앞으로 마중나온 손상원 극장장(47)이 건넨 인사에 머쓱해졌다. "올 일이 없었다"는 답에 손 극장장이 고개를 선선히 끄덕인다. "잊혀진 극장이 되버렸죠."
2010년은 정동극장의 최전성기였다. 관광객이 봇물 터지듯 밀려들었고 정동극장은 외국인 대상으로 우리 전통 음악·무용을 접목한 '넌버벌 퍼포먼스'를 올리며 늘 문정성시를 이루었다. 손 극장장은 "그 때는 1년에 12만 명의 외국인이 정동극장에서 공연을 봤다"고 했다. 하지만 국내 관객에겐 되레 조금씩 잊혀져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관광 전용 극장이란 이미지가 되버린 거죠. 또 늘 같은 상설작품만 오르다 보니 관객은 물론 예술가도 찾지 않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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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공연을 선보이는 게 2010년 이후 8년만이다. 변화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상설공연의 주 관객층은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그러다보니 관광시장의 변화에 따라 극장 전체의 목표와 성과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관광시장이 점점 힘들어지면서 정동극장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사드로 인한 한한령으로 줄어든 중국인 관광객 영향도 컸을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드 이전부터다. 중국의 경우에는 어느 순간부터 '저가 관광' 상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소위 비행기와 호텔 포함 왕복 20~30만원 패키지 상품이다. 공연을 정가를 주고 관람할 수 있는 상품구조가 아니다. 가격격쟁이 치열해졌다. 티켓이 5000원 미만에 판매되는 경우도 생겼다. 저가 경쟁에 공공공극장이 뛰어들 순 없고, 가격대를 유지하다보니 중국 단체관광객은 사드 사태 전부터 줄기 시작했다. 오히려 올 초에 일본 관광객이 많이 줄었다. 아베 총리의 북한과 전쟁 관련 한 마디에 상품이 다 취소되더라. 개별관광객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워낙 어려워 우리끼리 '모래알 줍기'라고 표현한다.(웃음)
-기획공연은 국내 관객을, 상설공연은 외국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투트랙으로 가는 건가? 비중이 어떻게 되나.
▶맞다. 4시 상설공연은 외국인도 즐길 수 있는 넌버벌 공연으로, 8시 기획공연은 젊은 창작진들의 작품을 발굴하려 한다. 기간과 회차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비중은 5:5다. 내수관객이 50%는 되어야 공연시장이 안정적으로 돌아간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역시관광객과 내수 관객이 함께 가는 구조다. 예를 들어, 뮤지컬 '라이언킹'은 대부분 외국 관광객이지만 뮤지컬 '킹키부츠'는 초연 때 가보니 젊은 뉴요커들이 훨씬 많더라.
-정동극장의 정체성은 여전히 '전통'인가.
▶그렇다. 계속해서 우리 전통을 소재로 한 공연을 올린다. 하지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옛날에 판소리꾼들이 왜 폭포수를 맞으며 소리를 연습했을까. 소리꾼들은 제대로 무대를 갖추지 않은 저잣거리에서 노래하지 않았나. 사람들의 말소리와 발소리 사이에서 공연해야 하니 폭포수의 거친 물소리도 뚫을 수 있는 소리를 단련해야 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오늘날 공연장으로 들어온 소리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전통의 보존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보다 대중화에 방점을 찍고 싶다. 전통도 '재밌다'는 인상을 주고 싶다.
-전통공연의 대중화는 쉽지 않은 목표다. 우리나라사람들이 공연을 많이 봐야 한 달에 한 번인데, 그 기회를 전통공연에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렵다. 내 임기 내에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욕심내기보다는 관객 한 명 한 명이 소중하다. 올해 첫 작품인 '적벽'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적벽가'를 현대무용과 버무린 공연이다. 적벽가는 판소리 중에도 한자어가 많아 가장 어렵다고들 말하는데 현대무용과 만나니 아주 역동적인 작품이 나왔다. 작년 시범공연 때 "적벽을 보고나서 적벽가를 들어보고 싶어졌다"는 관람 평이 있었다. 바로 내가 목표하는 바다.
정동극장이 사람들에게 어떤 극장으로 기억되길 바라는가를 물었다. '툇마루'란 답이 돌아왔다. "정동극장 위치가 너무 좋아요. 광화문 한 복판에 있잖아요. 점심시간 앞에 이 앞 직장이 유동인구가 어마어마해요. 그런데 이 앞만 지나가고 공연장 문턱을 넘어오질 않아요."(웃음) 그래서 작년 '정오의 예술마당'을 기획했
[김연주 기자 / 사진=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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