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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탄소년단(BTS)이 지난달 일본 오사카 얀마스타디움에서 공연하고 있는 모습. BTS는 `러브 유어셀프: 스피크 유어셀프-재팬 에디션`이란 제목으로 펼친 총 4회의 콘서트에서 총 21만명의 팬과 만났다. [사진 제공 = 빅히트] |
트위터에는 '#일본팬미팅_취소해'라는 해시태그(온라인 검색을 용이하게 만드는 '#' 기호)를 단 아미(ARMY·방탄소년단 팬클럽)들의 게시물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방탄소년단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일본 공식 팬클럽 홈페이지에 일본 팬미팅 소식을 전한 직후부터다. 공지에 따르면 이번 팬미팅은 11월 23, 24일 일본 지바 조조 마린 스타디움을 시작으로 총 4회에 걸쳐 진행된다.
일부 팬들이 이에 반대하는 이유는 방탄소년단 이미지가 훼손된다는 우려에서다. 이들은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시점에 일본 행사를 진행하게 된다면 대중에게 큰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는 취지의 게시물을 올리고, 또 공유해가며 빅히트의 피드백을 촉구하고 있다. 일본 공연은 외화를 버는 수출이기에 비판받을 지점이 없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지만, 팬미팅 반대 주장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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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탄소년단의 일본 공식 팬클럽 매거진 표지. |
방시혁 빅히트 대표가 "언어가 다를 뿐 메시지는 같기 때문에 한국어 기반으로 음악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으면서도 일본어 노래는 꾸준히 만드는 게 모순이라는 것이다.
국내 팬들의 반발을 사면서도 일본 시장에 대한 특화 전략을 쓰는 건 무시할 수 없는 시장 크기 때문이다. 황선업 음악평론가는 "방탄소년단은 일본에서 돔 콘서트를 도는데 연간 50만명 넘게 관람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는 고척스카이돔에서 3~4번 하더라도 10만명 정도"라고 말했다.
한류 초기부터 일본 시장을 공략해온 한 엔터사 대표는 "일본에서는 공연에 대한 수요가 한국과 비교할 수도 없이 크기 때문에 사실상 K팝의 제1시장"이라며 "한 번 본 콘서트를 수차례 반복해서 보는 팬들이 어느 나라보다도 많다"고 했다.
IFPI '글로벌 뮤직 리포트'에 따르면 일본의 2017년 음악 산업 규모는 26억달러로 1위 미국(59억달러)에 이어 전 세계 2위다.
빅히트 이외의 연예기획사들도 경색된 한일 관계로 애를 먹고 있다. 일본에서 행사를 하고도 대중의 비판을 우려해 공개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는 10월 엑소의 일본 콘서트가 '이야기 세키 수이 하임 슈퍼아레나'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팬들은 취소 요구를 쏟아냈다. 해당 콘서트장이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 장소와 가깝기 때문에 멤버들의 건강이 걱정된다는 이유였다.
CJ ENM은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MAMA)' 개최지를 아직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2017년부터 매년 11~12월 일본을 공동 개최지로 선정했으나 올해는 일본에서 행사를 펼쳤을 때 자칫 반일 여론의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일 갈등으로 생긴 일본 마켓 딜레마에 더해 최근엔 중국 시장에서도 K팝 기획사의 골머리가 썩고 있다. 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위대와 경찰의 마찰로 인해 K팝 아이돌 콘서트를 줄줄이 연기하고 있다. 지난 16일 갓세븐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는 이달 31일부터 9월 1일까지 예정됐던 갓세븐 월드투어 '킵 스피닝' 홍콩 공연을 '안전상의 이유로' 연기한다고 전했다. 앞서 13일 강다니엘도 홍콩 팬미팅을 연기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시위 이슈와 관련해서 한국 연예기획사에 존재하는 더 큰 리스크는 K팝 내 중국 멤버 문제다. 중국 홍콩 대만 등 중화권 출신 K팝 스타들이 중화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잇달아 '중국 정부'와 '홍콩 경찰'을 지지하는 메시지를 표명한 이후 '세계적 스타가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고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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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븐틴 문준휘(준)가 중국 웨이보에 `오성홍기 수호자는 14억명이다. 나도 국기 수호자다`라는 중국중앙방송(CCTV) 게시물을 공유했다. [문준휘 웨이보 캡처] |
그러나 연예기획사는 중국 시장 공략의 키인 중화권 멤버를 놓칠 수 없는 입장이다. 한국 연예인의 대형 공연을 금지한 '한한령'이 2년 넘게 풀리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멤버들은 '솔로' 또는 '유닛'으로 현지에서 꾸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홍콩이나 마카오,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K팝 콘서트를 보러 오는 중국 팬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여전히 신인 그룹을 구성할 때도 중화권 멤버를 뽑아야 하는 실정이다.
양국을 둘러싼 이슈가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한동안 K팝 기획사의 눈치싸움은 계속될 전망이다.
황선업 음악평론가는 "중화권 멤버들이 중국 지지 메시지를 표명한 것은 순전히 자발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왜 중국을 지지하지 않느냐고 묻는 대중의 압박을 느꼈을 것이고, 이에 기획사 차원에서 메시지를 내게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해석
두 나라와 관련된 정치 이슈가 문화 소비에 지나친 영향을 미칠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중국 대륙 진출을 위해선 중국 정부 편을 드는 게 유리하겠지만 홍콩 시위 진압을 옹호하면 월드스타 이미지에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창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