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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감독 아내 정선영 씨가 '기생충' 오스카 작품상 수상 후 눈물을 흘리고 있다. |
16일 오후 5시 30분께 인천공항을 통해 금의환향한 봉준호 감독(51)은 취재진에게 이 같이 밝혔다.
오스카 수상전부터 "본업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수차례 말했던 만큼 이제 차기작 준비에 몰입한다는 계획이다. 봉 감독의 성공 비결에 대한 각 매체 기사가 쏟아지는 지금, '봉준호가 밝힌 봉준호의 성공비결'을 이날 공항에서의 발언, 그간 국내외 매체와의 인터뷰를 종합해 정리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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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오른쪽) 감독이 그의 통역 샤론 최 씨(최성재)와 함께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신경정신과 의사는 제가 심각한 불안이 있고,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강박적인 경향이 있다고 말해요. 의사가 그런 불안증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제 대답은 '영화 작업'이에요."(2019년 5월 매일경제, 2020년 1월 베니티페어 등)
일찍이 독일 명감독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그의 대표작을 통해 밝힌 바 있다. 봉 감독은 자신을 먹어 치우려는 불안에 굳이 맞서지 않고, 영화 작업을 하며 그 존재를 잊는 사람이다. 실제로 봉 감독은 손에서 영화작업을 한 순간도 놓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안았을 때도, 오스카 작품상 수상 후에도 아이패드와 노트에 계속 차기작 아이디어를 썼으며, 함께하는 팀원들과 작업 진척 상황을 공유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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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충' 촬영 전 봉준호 감독이 그린 스케치엔 세부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빼곡하다. 근세(박명훈)의 서재를 묘사한 한 장의 그림엔 등장인물 역사가 새겨져 있다. <사진 제공=봉준호 감독> |
"아침에 완성된 스토리보드가 없으면, 맨해튼 한 가운데 속옷을 입고 서 있는 악몽 같아요. 스토리보드를 가지고 있으면 깨끗하고 편안한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는 느낌이죠."(2019년 10월 미국 벌쳐)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예술품인 봉준호의 스케치는 촬영장에서 혼선을 줄여준다. 배우와 카메라, 조명이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할지 세세하게 동선이 짜여 있다. 그의 첫 글로벌 프로젝트 '설국열차'에 함께한 크리스 에반스는 "이미 그의 머릿속에 모든 편집이 끝난 상태"라며 "집을 지을 때 못이 많이 필요하다고 추상적으로 얘기하는 게 아니라 '못이 53개 필요하다'고 구체적으로 말을 하는 것"이라고 놀라움을 표한 바 있다. 이에 봉준호는 커버리지(동일한 연기 동작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는 일)도 잘 하지 않는다. 출연진과 제작진에게 '표준근로계약서'를 잘 지켜줄 수 있는 한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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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옥자' 속 케이(스티븐 연)의 팔에 "통역은 신성하다"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사진 제공=넷플릭스> |
"통역은 신성하다"(2017년 영화 '옥자'에서)
'옥자'에선 통역의 중요성이 몇 차례 강조된다. 어쩌다 미국을 무대로 뛰어다니게 된 시골소녀 '미자'의 말을 정확한 영어로 바꾸지 않은 일이 몇 차례 위기를 초래하면서다. 이번 '오스카 캠페인'에서 봉준호는 '언어의 아바타'급 통역을 데리고 다니면서 미자가 겪은 어려움을 피할 수 있었다. 영어도 수준급인 것으로 알려진 그는 본인이 완벽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영어로 직접 전달하면서도, 그렇지 않을 때는 통역사 샤론 최의 입을 통했다.
전문 통역사 대신 영화감독 지망생을 데리고 다닌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자신의 말을 오해 없이 전달하기 위해선 영어 실력만큼이나 영화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외국 관객이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어서도록 하기 위해선 한편으론 발로 디뎌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견고한 벽이 필요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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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택네 가족이 박 사장네 안방에서 파티를 하는 장면은 '기생충'에서 관객을 가장 불안하게 하는 부분이다. 봉 감독은 스스로 불안증과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사진 제공=CJ ENM> |
"영화 공부할 때 늘 가슴에 새긴 말이 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2020년 2월 오스카 감독상 수상 후)
그의 영화엔 개인적인 경험이 가득 차 있다. 그는 "부잣집에서 중학생 수학 과외를 한 적이 있다"며 "당시 국어를 먼저 가르치고 있던 여자친구(지금의 아내) 소개로 과외를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 학생에게 또 다른 미술 교사를 소개해주려 했지만, 자신이 두 달 만에 잘리는 바람에 '기생충'의 기택(송강호)네처럼 침투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괴물'(2006)을 만드는 데는 그의 뇌리에 박힌 한 장면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86~1987년 사이, 어린 봉준호는 창문으로 잠실대교를 바라보다 "똥 덩어리 같은 새까만 물체가 교각을 올라가는 모습"을 봤다고 한다. 약 20년 간 숙성시킨 그 이미지는 봉준호의 첫 1000만 작품으로 세상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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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봉준호 감독이 인사하고 있다. <인천=박창영 기자> |
"언제나 많은 영감을 주는 아내에 감사합니다."(오스카 각본상 수상 후)
봉 감독은 아무리 바빠도 주변 사람을 챙기는 일에 소홀히 하지 않는다. 아내 정선영 씨와 아들 봉효민 감독을 촬영현장에 자주 데리고 올 정도로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한다고 한다. 가정사가 작업 집중도에 영향을 주는 일은 없다.
출연진은 단역까지, 스태프는 막내까지도 이름을 외워 살필 정도로 현장의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애정이 유별나다. 근세 역의 박명훈 아버지가 폐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봉준호는 그의 부친을 특별 시사회에 초대하기도 했다. 할리우드 배우도 앞다퉈 일하고 싶어한다는 봉준호 촬영현장이 만들어진 데는 그의 사람에 대한 애정도 톡톡한 몫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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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봉준호 감독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날 공항은 봉 감독의 귀국 모습을 보려는 취재진과 팬 300여 명이 몰려 문전성시를 이뤘다. 봉 감독은
[인천 =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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