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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멘트 】
고 앙드레 김 씨는 우리나라 패션계의 아이콘이자,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민간사절이기도 했습니다.
고인의 자취를 김천홍 기자가 되돌아봤습니다.
【 기자 】
1935년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원래 영화배우를 꿈꾸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스물여섯 살 되던 해인 1961년.
국내 최초로 명동에 문을 연 국제복장학원에 1기생으로 입학하면서 디자이너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듬해 남성 디자이너로는 국내 최초로 의상실을 연 그는 흰색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화려한 스타일로 단숨에 패션계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후 고인은 전 세계를 무대로 한국 패션을 알리는 데 힘썼습니다.
1966년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인 최초로 패션쇼를 연 것을 비롯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와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이집트 피라미드 앞 등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패션쇼를 열었습니다.
그 결과 1997년에는 패션 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문화훈장 화관장을 수상했고, 2000년에는 프랑스 예술문학훈장을 받는 등 자신의 진가를 인정받았습니다.
고인은 또 스타 제조기이기도 했습니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도 그의 옷을 입었고, 이영애, 최지우, 송혜교, 장동건, 배용준, 이병헌 등 숱한 스타들이 앙드레 김 패션쇼를 거쳐 갔습니다.
1999년에는 이른바 '옷 로비 사건 청문회'라는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이는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습니다.
김봉남이라는 서민적인 본명과 독특한 억양이 회자되면서 대중의 인기는 더욱 높아진 겁니다.
고인의 예술세계에 대해서는 평이 엇갈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문화를 사랑하고 패션을 사랑했던 고인이기에 그 발자취는 더욱 깊게만 느껴집니다.
MBN뉴스 김천홍입니다. [kino@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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