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품질·디자인 양 날개 달고 ‘3위’ 향해 전진 ◆
4만대가 들어가는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야적장에 남아 있는 재고는 6월 말 현재 5000대에 불과하다. 사진은 텅 비어 있는 야적장 전경.
LA 세리토스에 위치한 기아차 딜러숍도 재고가 없어 아우성이다.
#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 위치한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은 무려 4만대가 들어갈 수 있는 야적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야적장이 텅텅 비다시피 했다. 6월 21일 현재 앨라배마 공장 야적장에는 불과 5000대 정도의 차만 놓여 있다. 재고가 거의 없다는 얘기다. 6월 22일에 방문한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어바인시에 위치한 푸엔테힐리스 현대차 딜러숍에도 차가 별로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미국에서 제일 큰 딜러숍이라는 이곳에는 700대의 차를 전시해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채워져 있는 차는 70대에 불과하다. 닛산 딜러숍이 망해 나간 자리에 들어왔다는 현대차 딜러숍 매니저 마이클 김 씨는 “현대차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좋은 엘란트라(아반떼) 재고는 2대에 불과하다. ‘내려놓으면 팔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가 더 있으면 훨씬 더 많이 팔 수 있을 텐데 안타깝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 LA에 사는 허란 씨(35)는 최근 옵티마를 구입하기 위해 기아차 매장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생각했던 가격에 비해 차량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3년 전에도 한 번 기아차를 사려다 주변에서 다들 말려 포기했다. 당시 가격보다 조금 더 오른 수준이겠거니 생각하며 딜러숍을 찾았지만 오산. 2만달러 정도면 충분히 살 수 있으리라 했는데 웬만한 옵션을 장착하면 2만5000달러로도 부족했다. 딜러는 할인도 거의 해줄 수 없다고 했다. 재고가 없어 고생인 마당에 차 가격을 깎아줘 가며 팔 이유는 없다는 논리였다.
LA카운티 세리토스에는 LA 내 최대 자동차 딜러숍 단지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위치한 기아차 세리토스 딜러숍의 올 상반기 매출액은 단지 내 23개 브랜드 딜러숍 중 3위다. 기아차 세리토스 딜러숍 매니저 허비 웨스턴 씨는 팔려고 내놓은 중고차 목록을 주르르 보여줬다. 포드 머스탱, 도요타 캠리, 혼다 어코드가 자주 눈에 띈다. 중간 중간 렉서스, BMW, 아우디도 있다. 딜러숍이 보유한 중고차는 기아차를 구매한 고객이 놓고 간 것이다. 렉서스와 BMW를 탔던 고객이 기아차로 갈아탔다는 의미다. 웨스턴 씨는 “1년 전만 해도 기아차를 사라고 하면 ‘KIA? Are you kidding?’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진지하게 고려해보겠다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 정대용 LA한국일보 기자는 지난해 10월에 열렸던 LA오토쇼에서 무척 놀란 기억이 있다고 귀띔했다. 현대차와 기아차 프레젠테이션에 참석하기 위해 볼보 등 여타 글로벌 브랜드 프레젠테이션을 포기하는 기자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텅텅 비었던 현대차, 기아차 부스에 기자들이 장사진을 이뤘다고도 덧붙였다.
미국을 대표하는 신문 월스트리트저널에는 자동차 전문 기자가 5명 있다. 2명이 미국차, 1명이 일본차, 1명은 독일차, 1명은 한국차 담당이다. 몇 년 전에는 한국차 담당 기자가 생기리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미국의 권위 있는 자동차 전문지 ‘오토모티브’지도 자동차 점유율을 계산할 때 미국산, 일본산, 독일산, 한국산으로 나눠 집계한다.
정대용 기자는 “예전엔 쏘나타를 구입하면 수많은 자동차 브랜드 중 왜 캠리나 어코드를 사지 않고 쏘나타를 샀는지 구구절절하게 설명해줘야 했지만 요즘은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된다. 쏘울도 마찬가지다. 경쟁 차량인 닛산 큐브보다 5달러 비싸지만 불티나게 팔린다. 이게 달라진 현대차와 기아차의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라고 설명했다.
1996년 올림픽이 열렸던 미국 남부 조지아주 애틀랜타시는 남북전쟁 때 ‘남군의 심장’으로 불렸던 도시다. 전통적으로 남부의 중심지였다. 북군 수장이었던 링컨 대통령은 ‘철저한 남군 소탕’을 지시했다. 그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도 당연히 애틀랜타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작가 마거릿 미첼 여사 집이 애틀랜타에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직접 목격한 북군의 남군 소탕 작전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자세히 묘사돼 있다.
현대·기아차 글로벌 호황의 최전선인 미국시장을 둘러보기 위해 애틀랜타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에 들어갔다. 애틀랜타공항은 입국 절차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공항 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곳으로 손꼽힌다. ‘애틀랜타공항에서 봉변당하지 않고 잘 입국하는 법’ 등 다양한 노하우가 인터넷 공간을 떠돈다. 워낙 많은 얘기를 들은 탓에 다소 긴장된 마음으로 입국심사대에 섰다. “왜 왔느냐?”라는 질문에 “앨라배마에 있는 현대차 공장을 방문하러 왔다”고 답했다(현대차 공장이 위치한 앨라배마주는 조지아주와 맞닿아 있어 현대차 관계자들은 대부분 애틀랜타공항을 이용해 입국한다. 현대차 공장은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 위치한다). 바로 “현대차에서 일하느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잠시 고민하다 “yes”라고 했더니 별다른 추가질문 없이 여권에 도장을 꽝꽝 찍어준다.
실제 입국 이후 조지아주와 앨라배마주에서 만난 수많은 이들이 ‘현대차 직원이라 하면 무사 통과하기 쉽다’는 얘기를 전해줬다. ‘애틀랜타공항에서 가장 입국심사대를 통과하기 손쉬운 방법은 현대차 직원이라 얘기하는 것’이란 노하우를 추가로 올려야 할 판. 현대차의 미국에서의 위상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시장점유율 3%를 넘겨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포니 신화와 엑셀 신화가 한창일 때도 시장점유율은 2.6%에 불과했습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때 처음으로 3%를 넘었어요(현대차 기준, 기아차를 포함하면 수치가 달라진다). 3% 넘는 데 자그마치 20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3%를 넘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습니다. 언제 4%를 넘었는가 싶더니 5%를 넘고 매일 쑥쑥이에요. 감개무량하지요.” 임영득 앨라배마 공장 법인장 설명이다.
임 법인장 얘기처럼 요즘 미국시장에서 현대·기아차는 그야말로 하늘을 난다.
현대·기아차는 올해 미국시장에서 처음으로 100만대 이상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2010년 현대·기아차가 미국에서 판매한 물량은 89만대였다. 이 또한 미국시장에 진출한 지 24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판매량 50만대를 돌파한 수치였다. 올해 예상대로 100만대 이상을 팔아치우면 1년 만에 50만대에 이어 100만대 판매 기록을 연거푸 세우게 되는 셈이다. 시장점유율도 수직상승하고 있다. 2008년 5.4%에서 2009년 7%로 뛰어오른 데 이어 2011년 5월에는 10%를 넘어섰다.
기아 쏘울, 닛산 큐브보다 5달러 비싸
점유율이 올라간 만큼 현대·기아차가 자주 눈에 띄는 건 당연지사. 6월 21일 애틀랜타 센테니얼올림픽공원(첫 올림픽이 열린 지 100년이 되는 해인 1996년에 애틀랜타 올림픽이 열렸기 때문에 센테니얼올림픽이라 불린다, centennial은 ‘100년마다, 100년간의’라는 뜻) 인근 주차장. 38도를 넘나드는 땡볕에 주차돼 있는 50여대 차 중 현대차, 기아차 로고가 꽤 보인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플로리다주, 조지아주 등 미국 남부에서 살았다는 재미교포 송재철 씨(39)는 “예전엔 한인들이 한국차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미국까지 왔는데 미국차, 유럽차, 일본차 등 한국에서 못 타본 차를 타봐야 할 것 아닌가란 생각에서다. 그런데 최근 2년간 부쩍 현대차, 기아차를 사겠다는 한인이 많아졌다. 벤츠를 탔던 애틀랜타 한인회장도 에쿠스로 바꿨다. 나도 기아 세도나(그랜드카니발)를 타는데 만족스럽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국 내에서 현대·기아차를 생산해내는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차 조지아 공장도 더불어 바빠졌다.
몽고메리시 한편의 899만㎡(약 270만평) 대지에 우뚝 서 있는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은 이미 30만대 생산능력을 초과했다. 풀가동을 넘어 올해 가동률은 110%인 33만대가 될 예정. 이를 위해 2교대로 하루 22시간 라인을 돌린다. 한때 3교대로 할 것인가도 고민해봤지만 그래봐야 가동 시간이 2시간 늘어날 뿐이라 큰 도움이 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올 초까지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에서는 쏘나타, 엘란트라, 싼타페 등 3가지 차종을 생산했다. 그러나 최근 싼타페 생산라인을 기아차 조지아 공장으로 돌렸다. 쏘나타(올해 22만대 생산 예정)와 엘란트라(올해 11만대 생산 예정)가 워낙 잘 팔려 두 차 물량 맞추기도 쉽지 않아서다.
기아차 조지아 공장도 사정은 크게 다를 바 없다. 조지아 공장 생산능력은 원래 20만대였다. 이걸 늘려 올해 27만대를 생산할 예정이다. 이것으로도 한참 모자라다 보니 1억달러를 투자해 내년 하반기까지 36만대 생산이 가능하도록 설비를 증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나마 설비를 증설할 수 있는 기아차 공장은 더 이상 설비 증설이 불가능한 현대차 공장에 비해 사정이 나은 편이다. 기아차 조지아 공장은 9월부터 K5 현지 생산에 들어간다. 이미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끈 K5 현지 생산이 시작되면 기아차는 다시 한 번 바람몰이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인들은 같은 차라도 ‘Made in America’ 차에 유독 집착하는 경향이 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가 미국에서 워낙 잘 팔리고 있다 보니 두 회사와 미국에 동반 진출한 부품업체들도 초호황기를 누리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기아차 조지아 공장과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두 곳에 공장이 있는 모비스아메리카의 지난해 매출액은 10억달러를 넘어섰다. 2009년 6억달러에 비해 50% 이상 매출이 늘어났다. HMMA(모비스 앨라배마)도 설비 증설에 여념이 없다. 이미 50만대 규모 범퍼도장 라인을 운영하고 있는 모비스 앨라배마는 오는 8월에 30만대 규모 제2라인을 완공한다.
앨라배마 공장과 조지아 공장 중간 지역인 오펠리카에 위치한 만도도 마찬가지다. 만도아메리카의 지난해 매출액은 7억1500만달러. 2009년에는 4억달러가 채 안 됐다.
왜 이렇게 미국에서 현대차가 인기일까?
높아진 품질과 공격적인 마케팅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가격만 싼 차’는 더 이상 현대·기아차 앞에 붙는 수식어가 아니다. LA에서 자동차 부품을 판매하는 A씨는 “예전엔 현대·기아차를 사지 말라고 했다. 처음 살 때는 싸지만 고장이 잘 나는 데다 부품 값도 비싸서 AS 받기 어렵다는 논리였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고장도 잘 안 나고 부품 값도 많이 저렴해졌다. 도요타 캠리가 제일 낫다고 추천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나도 조만간 개인적으로 쏘나타를 구입할 계획”이라고 얘기했다.
미국 실정에 맞는 다양한 마케팅 프로그램과 미국인 정서를 효과적으로 파고든 광고도 한몫했다.
추가 설비 증설 목소리도
특히 현대차에서 실시한 ‘실직프로그램’ 반향이 컸다. 현대자동차를 구입한 뒤 1년 안에 실직이나 건강상 문제로 자동차를 유지하기 힘들어질 경우 차를 되사준다는 보증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을 이용한 고객은 300명에 불과하지만 신차 구매 고객의 15%가 이 프로그램에 마음이 동해 현대차를 구매했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로 현대차 인기몰이에 큰 역할을 했다.
슈퍼볼, NBA 등 미국인이 열광하는 스포츠 메인스폰서가 된 것도 주효했다. 슈퍼볼이나 NBA 메인스폰서는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 해도 기업 인지도가 떨어지면 차지할 수 없는 지위다.
미국에서 잘나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현지 법인들이 무작정 ‘신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현대차 33만대, 기아차 27만대 등 60만대 이외 차량은 한국에서 수출한다. 올해 100만대 이상 팔려나가면 한국에서 40만대 이상을 보내야 한다. 그러나 워낙 전 세계 지역에서 골고루 현대·기아차가 잘나가고 있다 보니 한국 본사에서 미국시장에만 차를 보내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LA에 위치한 현대·기아차 판매법인은 한국에서 들어오는 물량이 수요를 못 맞춰주게 될까봐 그게 걱정이다. 크리스토퍼 하스포드 HMA(현대차 미국판매법인) 이사는 “이미 지난해 11월에 조만간 ‘수요가 공급을 넘어설 것’이란 예상이 나왔다. 일시적인 요인이라기보다 대세라는 분석도 덧붙여졌다. 어떻게 이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인가 고민이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 그저 답답해할 뿐”이라고 설명한다.
워낙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치는 만큼 미국 공장 증설에 대한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그러나 결정이 쉽지만은 않다. 전호인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상무는 “공장을 증설하려면 적어도 1조원 이상의 투자비가 필요한데 그렇게 증설했다 다시 차가 안 팔리면 큰일인 만큼 의사결정이 매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한편 진검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폭스바겐이 테네시주에 지은 공장에서 5월 말부터 파사트가 생산되고 있다. 파사트는 쏘나타 경쟁차종. 하반기에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간다. 테네시주 폭스바겐 공장은 20만대 생산능력을 지녔다. 파사트 인기 여파에 따라 쏘나타 판매 곡선이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 도요타 리콜 사태와 동일본 지진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은 일본 업체들도 다시 전력을 가다듬고 있는 중이다. 9월쯤이면 일본 자동차 생산능력이 완전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최근의
[앨라배마·LA = 김소연 기자 sky6592@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14호(11.07.13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