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항공사의 사무실이 모여 있는 서울 종로와 을지로, 그리고 광화문 부근에서 저녁 식사나 술자리를 갖다 보면 업계 동정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조금 과장을 보태 테이블 건너 하나씩 여행•관광업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직장인의 애환을 풀어내고 있으니 최신 트렌드는 이곳에서 다 전해들을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이곳에서 최근 술자리의 단골 안줏거리로 오른 것 중 하나는 국내 조종사들의 영어 실력에 대한 얘기다. 이유인즉, 국내 한 국회의원이 5년간 항공영어구술능력증명시험에 1/4에 달하는 조종사들이 불합격을 하고 있다고 주장을 편 것이 호사가들의 입을 근질거리게 했다. 만약에 실제로 25%나 되는 조종사들이 영어 구사를 원활하게 하지 못한다면 이는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니 이 통계가 사실일까에 대한 공방이 후끈 달아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 유관부처와 국적 민항사들은 국내 조종사들이 국제기구와 정부에서 정한 영어자격 기준을 대부분 충족하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아울러 철저한 책임 하에 조종사들의 영어 자격이 관리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국내 항공사 조종사들의 영어실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 조종사 1/4 영어시험 불합격? 취업준비생 시험결과까지 포함 오류 = 항공영어구술능력증명시험은 항공업계에 종사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열려있는 시험이다. 민항기 조종사나 현직 관제사들도 시험을 보고 있지만 시험을 보는 인원 중에서 국내 대학 항공관련 학과의 학생들과 군에서 근무하고 있는 항공 관련 종사자들도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 자료의 데이터들은 현재 항공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항공업계에 취업하고자 하는 취업 준비생들의 수치를 모두 합해서 나왔으며, 사실상 대부분의 불합격자들 또한 이들 취업 준비생들이라는 것이다.
정부 주관부처인 국토교통부도 국제 항공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조종사 및 관제사는 국제기준(4등급) 이상의 항공영어구술능력 자격을 취득 및 유지하고 있으며, 국내 항공사 조종사가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비율은 100%, 관제사는 94% 수준이라고 즉각적인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따라서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언어 문제 때문에 항공안전에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항공업계와 정부부처의 설명이다.
◆ 국제민간항공기구 등 철저히 조종사들 영어실력 관리 = 조종사, 관제사 등 국제항공산업 종사자들이라면 의무적으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zation)의 규정에 따라 항공영어구술능력증명시험(EPTA•English Proficiency Test for Aviation)을 통과해야 한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를 냈다.
항공과 관련된 주제 및 상황을 바탕으로 듣기(Listening)와 인터뷰 평가(Personal interview) 방식을 토대로 치러지며 가장 높은 6등급부터 가장 낮은 1등급까지 6개의 등급으로 평가된다. ICAO 협약에 따라 2008년 3월5일부터 국제항공운항에 종사하는 전 세계 항공종사자는 4등급 이상이 돼야 국제운항 업무에 종사할 수 있게 됐다. 4등급(Level 4)은 정상/비정상 상황에서 모든 항공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수준에 해당한다.
국제민간항공기구가 이와 같이 항공영어구술능력증명시험 자격을 강제화한 것은 항공기 운항에 있어 공용어가 바로 영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면 항공기 운항 도중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이러한 경우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보다 강력한 제재 조건을 내건 것이다.
국내 항공사들도 마찬가지다. 조종사들의 영어 능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한편, 내부적인 테스트도 병행하며 조종사들의 영어 실력을 높이고 관리하는 데 노력을 쏟고 있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항공영어구술능력증명시험 4등급 이상의 자격을 획득하지 못하면 해당 조종사의 국제선 운항을 금지시키고 있을 정도로 강력히 대처하고 있다. 항공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한항공의 경우 4등급을 획득하지 못한 조종사를 국내선과 국제선 모두 운항에서 배제하고 있다.
◆ 모든 조종사가 항공영어 자격증 보유한 국적항공사 있다 = 오히려 국적 항공사들 가운데는 소속 조종사 모두 항공영어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곳도 있다.
그 중에서 대한항공은 2008년 이전부터 외국인 강사에 의한 영어교육을 실시해 왔고, ICAO에서 영어 자격증 도입 지침 발표한 이후에도 자격증 취득을 위해 단계별 교육 계획을 수립해 자가 학습을 위한 교재까지 개발 및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대한항공은 모든 조종사들이 항공영어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전 조종사를 대상으로 외부 기관 위탁 교육 및 검정을 실시하여 조종사 전원이 내부적으로 정한 자격요건 취득 후에 실제 업무에 투입하게 함으로써 영어 구사능력 부족으로 인한 안전 운항문제를 사전에 차단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항공 안전을 자랑하고 있는 국내 항공업계의 위상을 생각할 때, 정확하지 않은 자료로 국적 항공사의 안전을 쓸데없이 의심하게 한 것은 안타깝다는 것이 국내
항공업계 관계자는 “최근 제기되는 국내 조종사들의 영어실력에 문제는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며 전혀 문제도 없다”며 “국내 민항사의 대부분의 조종사들이 영어 자격을 보유하고 있어 안전 운항에도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매경닷컴 장주영 기자 semiangel@mk.co.kr] 매경닷컴 여행/레저 트위터_mktour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