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광!”
지난 2008년 9월 19일. 지하 100m에 묻힌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가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불이 나면서 LHC 내부에 있던 산소는 빠르게 사라졌고 거대한 도넛 모양의 가속기 곳곳에 설치한 센서에는 적색등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우주 기원을 찾아내겠다고 14년 동안 11조 4000억 원 돈을 투자해 만든 LHC는 가동 열흘만에 멈춰야만 했다. 용접 부위 미세 균열이 전류를 이기지 못한 게 폭발의 원인이었다. 전 세계의 기대를 한껏 받았던 LHC는 이 사고로 1년간 가동 중단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뒤 3년 후인 2013년 LHC는 과학자들이 그토록 애타게 찾던 '힉스입자'를 발견하며 자존심을 지켰다.
우주의 신비를 밝혀 준 LHC가 오는 3월 새롭게 태어난다. 과거 폭발 사고를 일으켰던 부위를 말끔히 정리했고 더 높은 에너지의 양성자(물질을 구성하는 작은 입자. 그 크기가 1000조분의 1m에 불과하다) 충돌 실험으로 베일에 가려져있던 '제5의 힘'과 '암흑물질'등 새로운 현상 찾기에 나선다.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지대 지하 100m에는 지름 8㎞, 둘레 27㎞ 규모 거대한 원형 터널이 설치돼 있다. 이 터널의 한 지점에서 반대 방향으로 양성자를 쏜 뒤 수주일 동안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시킨다. 1만 바퀴 이상 돌면서 가속된 양성자가 충돌하면 태초에 일어났던 빅뱅(우주 대폭발)을 재현할 수 있다. 불과 1000만분의 1초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우주가 처음 생겨났을 때를 재현하는 것이다.
LHC는 양성자가 7TeV(테라일렉트로볼트)의 에너지를 갖고 있는 상태에서 충돌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두 양성자가 만나면 14TeV의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폭발 사고 이후 지금까지는 일정 구간에서 조심스럽게 3.5~4TeV의 에너지를 갖고 있는 양성자만 충돌시켰다. 최수용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는 "지난 1년간 LHC 가동을 멈추고 양성자 에너지를 6.5TeV까지 높여도 안전하게끔 업그레이드 작업을 해왔다”며 "전체 27㎞ 둘레 중 8분의 1에 해당하는 3.3㎞ 구간은 충돌 실험이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6.5TeV 에너지를 갖고 있는 양성자 1조개가 충돌을 하면 13TeV의 에너지가 발생한다. 이는 10량 정도 열차가 시속 100㎞로 달릴 때 발생하는 운동에너지와 같은 정도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양성자가 엄청난 규모의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이처럼 양성자 에너지를 높여 충돌시키려는 이유는 인간이 찾지 못한 더 많은 입자들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7TeV 충돌 에너지에서 힉스입자가 발견됐다면, 이보다 더 높은 에너지에서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입자가 나타날 수 있다. 마치 물속을 헤엄쳐 나갈 때 작은 물고기가 지나갈 때보다는 사람이, 사람보다는 배가 많은 물방울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CERN은 LHC 가동을 통해 3가지 발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선 이미 발견됐지만 여전히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힉스입자 특징을 알아내는 것이 목표다. 과학자들은 대부분 입자들에서 발견되는 특성인 '스핀'성질을 힉스입자도 갖고 있는지 발견하고 싶어 한다. 투수가 던진 야구공이 회전을 하는지 안하는지 알아내는 것과 같다.
두 번째는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제5의 힘'을 찾아내는 것이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는 "큰 에너지의 양성자가 충돌했을 때 발생하는 어떤 입자들이 기존 4가지 힘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며 "자연계에서는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힘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과학자들이 찾고 싶어하는 것은 우주의 24%를 차지하고 있지만 아직 그 누구도 정체를 찾지 못한 '암흑물질(Dark Matter)'이다. 밤하늘에 볼 수 있는 별은 지구로부터 수천, 수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다. 별에서 발생한 빛은 지구로 날아오면서 암흑물질 때문에 휘어지는데 인간은 암흑물질이 뭔지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암흑물질도 빅뱅 이후 생겨났기 때문에 LHC에서 발생하는 입자들을 분석하면 그 후보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전세계 1만여명의 과학자들은 이처럼 인간의 호기심을 풀고, 우주 탄생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다시 한번 CERN에 모인다. 매년 1조 원 규모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LHC가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등처럼 사람에게 유용한 뭔가를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경제·사회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기초과학'임을 알기에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
세계는 이제 LHC 이후 입자가속기를 그리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지난해 2월, LHC보다 7배 강력한 에너지로 양성자를 충돌시킬 수 있는 '미래형 원형 충돌기(FCC)' 개발을 위한 타당성 조사를 시작했다. 둘레가 80~100㎞인 FCC는 LHC와 같은 부지에 건설될 것으로 보이며 2019년께 예상비용과 설계구상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기초과학 분야에 천문학적 투자를 하고 있는 중국도 둘레 50~80㎞에 달하는 입자가속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예상 비용만 대략 3조 원에 달한다. 이미 중국은 전당 52㎞ 규모 입자가속기 건설을 추진 중이다. 다른 나라가 비용을 분담해 참여한다면 80㎞ 둘레로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일본은 직선 구간 터널에서 입자를 충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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