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이패드 신제품을 출시한 애플은 태블릿PC와 함께 사용하는 스타일러스펜 ‘애플펜슬’과 스마트 키보드를 동시에 선보였다. 생전의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에 별도 입력장치를 추가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 것을 감안하면 벽세지감이 느껴진다. 잡스는 손가락을 쓰면 될 것을 왜 굳이 잃어버리기 쉽고 갖고 다니기 불편한 스타일러스펜을 별도로 만들어야 하느냐는 생각이 강했다.
그랬던 애플이 태블릿PC에 펜과 키보드를 덧붙인 계기는 후발주자인 마이크로소프트(MS)가 만들어줬다. MS가 아이패드를 모방한 서피스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스타일러스펜과 키보드를 함께 내놓은 것이 인기를 끈 것이 자극이 됐다. 펜과 키보드를 갖춘 서피스는 노트북 대용품을 찾는 사람들에게 제격이었다. 태블릿PC처럼 쓰다가 키보드만 갖다붙이면 업무용으로도 활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운영체계(OS)로 윈도우를 사용하는 것도 장점으로 받아들여졌다.
시장조사기관인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올해 태블릿PC 시장은 4%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1~2014년까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지만 이제는 시장이 포화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 맞서 태블릿PC 업체들은 노트북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노트북 수요를 대체하고 기업고객(B2B)을 잡기 위해서는 키보드나 스타일러스펜이 필수라는 인식이 덩달아 강해지고 있다. 애플이 ‘서피스 따라하기’라는 오명을 들으면서도 자존심을 접고 펜과 키보드를 내놓은 이유다. 뿐만 아니라 구글도 최근 신형 태블릿PC ‘픽셀C’를 선보이면서 149달러짜리 키보드를 함께 출시했다.
태블릿PC에서는 키보드 뿐 아니라 화면 키우기도 서로 따라하기 벌어지고 있다. 지난 9월 애플이 기존 아이패드 에어(9.7인치)보다 화면 크기를 78%나 더 키운 12.9인치의 아이패드 프로를 선보이자, MS는 이달 출시하는 서피스 프로4의 화면을 전작보다 0.3인치 늘려 12.3인치로 키웠다.
삼성전자는 여기에 한술 더 떠서 18인치대의 태블릿PC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갤럭시뷰로 이름 지어진 이 제품은 노트북보다 더 큰 화면 크기가 벌써부터 화제가 되고 있다.
애플은 앞서 패블릿(태블릿PC처럼 화면이 큰 스마트폰)으로 불리는 대화면 스마트폰에 있어서는 삼성전자를 따라했다.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스마트폰 크기는 한 손으로 조작이 가능한 3.5인치가 적당하다”고 강조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애플이 지난해 선보인 아이폰6 플러스는 화면 크기가 무려 5.5인치에 달한다. 삼성전자가 2011년 5.3인치 대화면이 달린 ‘원조’ 패블릿 갤럭시 노트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자 여기에 자극받은 것이다.
갤럭시 노트 출시 이후 시장은 급속히 대화면 스마트폰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최근 출시되는 스마트폰 화면 크기는 5인치대가 기본이다. 중국의 화웨이는 6인치가 넘는 폰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애플은 점점 아이폰의 크기를 키우다가 결국 패블릿 대열에 합류한 것이었다.
삼성전자가 풀 메탈 바디 스마트폰을 내놓은 것은 애플을 모방한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애플이 공개한 아이폰6가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풀 메탈 바디로 출시되자 삼성전자는 기존 갤럭시S6 시제품을 모두 버리고 새롭게 풀 메탈 바디 디자인을 적용했다.
이를 위해 조 단위 투자를 하면서 삼성 스마트폰의 강점으로 평가받던 배터리 탈부착 방식도 버리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 갤럭시S6의 풀메탈 바디는 삼성전자 디자인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8월 출시된 갤럭시 노트5에도 배터리 일체형 풀메탈 바디 디자인이 적용됐다.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서 서로의 장점을 베끼는 ‘창조적’ 모방은 흔한 일이다. 단순한 모방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혁신’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 오데드 센커 오아히오 주립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카피캣(copycats·흉내쟁이)’에서 “모방은 시장에서의 위험을 피하고 선도기업이 거친 시행착오로부터 많은 것을 무료로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옹호했다. 그는 모방이 혁신보다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일류 모방 기업들은 훔쳐낸 아이디어로 선도자보다 가격이 싸고 품질이 더 나은 제품
오데드 센커 교수는 “월마트의 샘 월튼도 브라질 업체를 모방해 하이퍼마켓을 열었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대화가인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의 카피캣이었다”며 “창조적 모방과 단순한 베끼기는 큰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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