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이 삼성과 애플에 통보한 배상금 산정 협상 기한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미국 법원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2015년 11월 15일까지 행정판사와 함께 화해를 위한 협상을 마무리하라”고 통보했다. 두 회사 모두 이에 대해 긍정적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삼성과 애플의 특허 소송전이 일단락될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2011년부터 시작된 삼성과 애플의 특허 소송은 지식재산권(IP)의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는 사건이다. 특허청은 미국 시장에서 성공하는 게 다른 어떤 나라에 진출하는 것보다 중요한 만큼 미국 진출을 앞두고 있거나 계획하고 있는 기업은 애플과 삼성의 특허전을 통해 ‘D’ ‘J’ ‘G’ 등 3개 알페벳을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디자인(Design)과 배심재판(Jury), 그리고 그레이스 피리어드(Grace Period) 제도다.
◆ 디자인 가볍게 생각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아이폰 모서리의 둥근 사각형 디자인에 대해 미국 법원은 삼성이 특허를 침해했다고 인정했다. 배상금은 9억 2000만 달러로 우리 돈 1조원에 가깝다. ‘그 정도 디자인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범용적인 것 아니냐’고 생각했다가 큰 코 다칠 수 있다는 얘기다. 디자인은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기업이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다. 미국에서는 디자인 특허를 침해한 제품에서 디자인이 기여한 부분만을 고려해 손해액을 산정하지 않는다. 해당 침해 제품 전체 판매 이익을 기초로 손해액을 산정하므로 고액의 손해배상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 국가에서 침해 제품 디자인이 기여한 부분만을 고려해 배상액을 산정하는 것과 비교하면 미국만의 독특한 제도다. 예를 들면 A사 스마트폰이 B사 디자인 특허를 침해했는데, A사 스마트폰이 미국 시장에서 판매돼 얻은 이익이 1000억 원이면 스마트폰에서 디자인 특허가 기여한 비중을 고려하지 않고 바로 1000억원에 기초해 A사 손해배상금을 산정한다. 서을수 특허청 산업재산보호정책과장은 “미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디자인 특허에 대한 권리범위가 우리나라에 비해 넓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며 “타인 디자인 특허를 다소 변형해 제품화하려는 의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 일반인을 설득시켜라. ‘배심재판’
애플은 미국 시장에서 특허 소송을 시작하면서 배심재판을 선택했다. 이는 애플이 미국 시장에서 승리를 거두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배심단원은 삼성과 애플이 권리로 주장한 디자인 특허 및 상용 특허에 대해 “특허가 무효다”라고 단 한 번도 평결하지 않았다. 만약 애플이 주장한 특허 중 몇 개라도 무효 판정이 났다면 양사 특허 분쟁 흐름은 달라졌을 수 있다. 배심재판은 미국 헌법상 보장된 권리다. 민사 재판의 경우 당사자 중 일방이 원하면 배심원에 의한 재판이 진행된다. 판사는 배심원 판단과 다르게 판결할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배심원 평결이 사실상 판결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미국에서 특허권자로서 소송을 준비해야 한다면 애플처럼 배심재판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박경진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 연구기반팀장은 “특허 전문가들과 달리 일반인들은 특허가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익숙하지 않다”며 “무효 판단을 하려면 선행기술과의 복잡한 대비가 필요하므로, 일반인들로 구성된 배심재판에서는 특허 무효 평결이 쉽게 내려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배심재판이 진행되지 않은 한국에서는 삼성과 애플이 주장한 특허 중 절반 정도가 무효로 판결났다.
◆ 미국에만 있는 유예기간 ‘그레이스 피리어드’
삼성이 갖고 있는 ‘3G 통신 전력제어 기술’ 특허가 이번 소송에서 한·미 두나라에서 동시에 다루어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 법원에서만 삼성이 갖고 있는 특허가 무효처리 됐다. 특허가 무효인 만큼 애플이 삼성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판결이 났다. 한국에서 특허 무효가 된 이유는 삼성이 특허출원 전, 관련 기술이 적힌 보고서를 작성해 공개했기 때문이었다. 국내에선 아무리 삼성이 보유한 기술이고, 유효 출원일 전에 공개했더라도 출원 절차에서 이를 신고하지 않으면 ‘특허 신규성’이 결여돼 특허로 인정받지 못한다. 한국 뿐 아니라 유럽, 중국, 일본에서도 동일하다. 이를 피하려면 특허청에 반드시 관련 내용을 보고해야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다르다. 특허 출원일로부터 1년 이내에 관련 기술을 스스로 공개해도 특허출원이 가능하다. 이 1년의 기간을 ‘그레이스 피리어드’라 한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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