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인류의 요람이다. 하지만 인류가 영원히 요람에만 머물 순 없다.”
우주로 가기 위한 발사체를 처음으로 고안한 소련(옛 러시아)의 과학자 콘스탄틴 치올콥스키. ‘우주여행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그는 1903년,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개발해 하늘을 날고 있을 때 ‘반작용 추진장치에 의한 우주탐험’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우주를 내다봤다.
치올콥스키는 ‘우주정거장’을 상상했다. 지구 대기권을 탈출한 발사체가 잠시 머무르며 연료를 주입하고, 또 다른 행성을 향해 여행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믿었다. 그의 상상은 2000년 ‘국제우주정거장(ISS·International Space Station)’ 건설로 현실화됐다.
2015년 11월은 ISS에 인간이 처음 발을 들여놓은지 15년이 되는 달이다. 천문학적인 건설비가 사용된 ISS는 인류에게 어떤 존재일까.
1950년대부터 시작된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 경쟁은 치열했다. 인공위성은 러시아가 먼저 쏘아 올렸지만 미국은 이보다 앞선 기술로 달에 발을 디뎠다. 이후 벌어진 경쟁은 우주정거장 건설. 1971년 러시아는 ‘살류트 1호’를 발사하며 경쟁의 서막을 열었다. 미국은 1973년 ‘스카이랩’을 발사했다. 이때의 우주정거장은 사람이 머무를 수 없고 우주선이 잠시 도킹할 수만 있었다. 형태를 갖춘 우주정거장은 러시아가 먼저 쏘아올렸다. 1986년 러시아는 ‘미르’를 발사했다.
냉전이 끝난 뒤 우주정거장은 과학기술의 국제적 협력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프랑스, 영국, 일본 등의 우주인이 미르를 방문했으며 1995년에는 미국 우주왕복선 애틀랜티스호가 미르에 도킹했다. 러시아는 이후 미르를 운영할 돈이 부족해지자 대기권으로 떨어트려 남태평양에 수장시켰다.
ISS 건설은 국제 협력을 통해 진행됐다. 축구장 크기의 ISS는 미국을 주축으로 유럽, 러시아, 일본, 캐나다 등 16개국이 참여했다. ISS 건설에 쓰인 돈만 우리 돈으로 174조원. 인류가 역대 건설한 구조물 중 가장 비싸다. 힉스입자를 발견한 거대강가속기(LHC) 건설에 8조원이 든 것과 비교하면 20배가 넘는 규모다. 이주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항공우주응용재료팀 선임연구원은 “미국과 러시아 등 각국의 왕복선이 수십차례 걸쳐 지구와 우주를 왕복하며 건설했다”고 말했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굳이 ISS를 건설한 이유는 무엇일까.
ISS는 지구가 물체를 잡아당기는 중력과, 지구를 회전하면서 만들어지는 원심력이 서로 상쇄되면서 중력이 ‘0’인 무중력 상태가 된다. 지구에서 무중력 상태를 만들려면 높은 곳에서 떨어트리거나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자유낙하를 시켜야 한다. 이 선임연구원은 “ISS에서는 사람이 장기간 우주 환경에 노출됐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다”며 “이밖에도 생물학·화학·물리학 등 다양한 연구가 진행돼 인류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적으로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지구는 중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리 정교하게 화합물이나 재료를 만들어도 불순물이나 균열이 생긴다. 장영근 한국항공대 항공우주및기계공학부 교수는 “무중력상태에서는 불순물을 걸러내는게 용이해 순도 100%의 화합물·재료 제작이 가능하다”며 “신약 생산, 고품질 재료 등을 생산할 수 있는 우주 공장 건설의 기반 연구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174조원의 투자를 생각한다면 이같은 효과는 미미할 수 있다. 경제적 가치로만 따진다면 ISS 건설은 실패다. 하지만 ISS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치올콥스키의 바람대로 더 먼 우주로 나아가기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적 가치로 따질 수 없는 효과를 갖고 있다.
인류는 언젠가 달이 아닌 또 다른 행성에 발을 디딜 것이다. 이때 ISS의 가치는 무궁무진해진다. 먼 우주로 갈 때 필요한 물자를 ISS에서 보급 받을 수 있다. 그만큼의 무게를 줄인 상태에서 발사가 가능한 셈이다. 이때가 되면 공상과학(SF)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도킹 후 연료 주입’도 기대할 수 있다. 화성탐사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관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이 ISS 건설에 참여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장 교수는 “수십년 뒤 ISS가 활발하게 활용될 때 우리나라는 어떤 권리도 요구할 수 없다”며 “미래의 ISS가 갖고 있는 가치는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2000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ISS 건설 참여를 요청했지만 예산 부족으로 무산됐다.
중국도 우주정거장이 갖고 있는 중요성을 인식하고 독자적인 정거장 구축에 나섰다. 이미 중국은 실험용 우주정거장인 ‘텐궁1호’를 2011년 발사했다. 현재 우주에 떠 있는 우주정거장은 ISS와 텐궁1호 뿐이다. 영화 ‘그래비티’에 등장하는 작은 우주정거장이 바로 텐궁1호다. 이를 바탕으로 2020년 ISS와 같은 우주정거장
장 교수는 “눈앞의 이익을 따지지 않고 깊고 멀리 보며 만든 것이 바로 ISS와 같은 우주정거장”이라며 “인류의 지식을 넓혀주고 우주로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인류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호섭 기자 /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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