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브랜드가 내놓은 첫번째 출시작이자 최상위 모델 ‘EQ900’를 타고 서울 W호텔에서 춘천 로드힐스CC까지 왕복 140km 구간을 달렸다. 엔진은 3.3 터보 GDi. 갈때는 보조석 뒷자리, 올때는 운전석에 앉아 ‘쇼퍼 드리븐(chauffeur driven·기사가 모는 차)’과 ‘오너 드리븐(owner driven·직접 운전하는 차)’을 한번씩 테스트했다. EQ900은 쇼퍼 드리븐과 오너 드리븐을 동시에 충족하는 최초의 국산 세단을 표방하고 있다.
EQ900는 이전 모델 에쿠스보다 전장이 4.5cm 더 길게 나왔다. 옆에서 보면 그보다는 더 길어보인다. 차량 보닛에서 앞바퀴까지의 간격을 좁히고 휠간 간격을 더 넓힌데서 비롯되는 착시효과다. 앞뒤 바퀴 사이가 넓어지면 차는 훨씬 더 안정감 있게 다가온다. 보닛에서 전면유리까지 앞 부분은 늘렸고 후면 유리부터 트렁크까지의 길이는 줄였다. 고성능 스포츠 세단이 주로 채택하는 ‘롱 노즈 숏 데크(Long nose-Short deck)’ 스타일이다. EQ900가 에쿠스보다 미끈한 느낌을 주는 결정적인 이유다.
EQ900의 표면은 무수한 별들이 명멸하는 은하계를 펼쳐놓은 것처럼 반짝거렸다. 독일 화학회사 머크에서 개발한 안료 ‘판데라 실버’ 특유의 스파클링 효과인데 그 느낌은 절제된 화려함같은 것으로 EQ900가 지향하는 명품 컨셉과 맥이 닿는다.
운전석에 앉자마자 EQ900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는 ‘스마트 자세제어 시스템’을 테스트했다. 운전석 도어에 있는 스마트 버튼을 누르자 신장, 앉은키, 몸무게를 설정하는 창이 계기판에 떴다. 신체정보 설정을 마치고 확인을 클릭하니 운전석과 아웃사이드 미러가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당 체형에 최적화된 착좌 자세와 운전 환경을 기계가 알아서 맞춰주는 것이다. 시내구간에서 60km 이하 속도로 달리는데도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온다. 사뭇 경쾌하고 파워풀한 주행감인데 낮은 RPM에서부터 최대토크를 발현하는 터보 GDi 엔진의 힘이다.
EQ900 시승에 앞서 ‘꼭 한번 테스트해보고 싶다’ 마음먹은 것이 있었다. 차간거리제어기능(ASCC)에 차선유지기능(LKAS)을 결합시켜 탄생시킨 고속도로 주행지원시스템(HDA)이다. 차량이 알아서 앞차와 거리를 유지하는 기술은 다른 국산 신차들도 채택하고 있지만 차선까지 유지하는 것은 EQ900가 처음이다. 톨게이트를 나가자마자 HDA 모드로 전환하고 최고 속도를 120km로 설정했다. 먼저 엑셀레이터에서 발을 떼고 그 다음 핸들에서 살짝 손을 뗐다. 기계를 ‘통제’밖에 둔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안감이 가슴 한켠에서 일기 시작할 즈음 핸들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곡선 구간이 나타나자 움직임은 더 명확해졌다. 정확히 차선 정중앙을 달리고 있다.
약 20초가 지났을때 HDA모드를 해제한다는 경보음이 들렸다. 핸들에서 계속 손을 떼고 운전하는 것은 아직 현행법이 허용하지 않으므로 일정시간 후에는 HDA가 자동 해제되도록 설계됐다. 경보음이 울린후 실제 HDA기능 해제까지는 약 5초 간격이 있다. 이 사이에 핸들을 다시 잡을 필요도 없이 살짝 쳐 주기만 해도 또 다시 20초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시속 120km로 달리던 차는 느리게 가는 앞차 속도에 맞춰 아주 자연스럽게 속도를 시속 100km로 떨어뜨렸다. 차선을 바꿔주자 다시 속력을 높였다. 시속 100km 제한구간에서는 앞차가 없어도 속도를 낮췄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동승자가 ‘EQ900를 타면서 딱지 떼일 일은 없겠다’고 한마디 했다. 차선을 알아서 지켜주니 졸음 운전으로 사고날 일도 없을것 같다. 톨게이트부터 톨게이트까지, 즉 고속도로 구간에서는 20초마다 한번씩 핸들을 툭 쳐주는 것 말고는 운전자가 할 일이 없다고 봐도 좋다. 이 시스템에 숙달되면 운전석에 앉아 책을 읽을수도 있을 것같다. 물론 아직은 내놓고 권장할만한 운전법은 아니다. 자율주행은 그러나 성큼 눈앞에 와 있다.
EQ900의 주행감은 최고급 세단답게 딱히 흠잡을데 없이 훌륭했지만 그 중에서도 인상적인 것은 정숙성이다. 시속 140km를 밟는데도 거의 풍절음을 느낄수 없었다. 예전같으면 고무패킹으로 이어붙이던 곳을 용접으로 밀폐해 소음유입 원천을 최소화하고 차량 뒷유리를 포함한 모든 유리에 이중 접합 차음 소재를 적용했다고 한다. 시내 주행을 할때 과속방지턱을 넘는 느낌도 남달랐다. 타이어 공명음을 최대 5dB까지 낮춘 탓에 덜컹하는 소리가 작았고 차가 뜬다는 느낌이 없었다.
뒷 좌석은 최고급 세단으로서의 EQ900 정체성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최신형 항공기 1등석을 본떴다는 ‘퍼스트 클래스 VIP 시트’의 작동 버튼과 움직임은 실제 항공기 1등석과 거의 유사했다. 자동차의 공간 한계상 180도로 눕혀지지 않는다는 점만 다를뿐 14가지 방향의 시트 조절이 가능하다. 휴식모드 버튼을 누르자 보조석이 거의 앞 유리창에 붙을 정도로 당겨지면서 뒷좌석 하단부가 수평으로 펼쳐졌다. 뒷좌석에도 에어컨 조절 장치가 있어 뒷좌석 승객이 실내 온도와 풍량, 풍향을 독립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 뒷좌석 정면에 설치된 9.2인치 모니터는 TV시청이나 영화감상에 부족함이 없다.
멀티미디어 기능 중에서 하이라이트를 꼽으라면 오디오 음질을 꼽고 싶다. 주파수 분석을 통한 사운드 재배치 기술로 풍부한 입체 음향 효과를 구현했다. 일반모드, 콘서트홀 객석에서 청취하는 느낌의 ‘관객 모드(Audience Mode)’, 지휘자가 돼 무대 위에서 청취하는 느낌의 ‘무대 모드(On Stage Mode)’ 등 3가지 사양이 있는데 EQ900 특유의 정숙성과 맞물려 차에서 음악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여건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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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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