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북쪽으로 40km 가량 떨어진 도시 ‘신트-카텔린-바베르(Sint-Katelijne-Waver)’. 한국 사람들에게는 낯설지만, 이곳에는 유럽 사람이라면 한 번 쯤 들어봤음직한 농산물 브랜드의 경매장과 물류기지가 자리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큰 경매장 중 하나로 꼽히는 벨로타(BerOrta)가 그것이다.
60ha(약 18만평)의 거대한 부지에 들어선 이 곳 물류기지에는 벨기에·네덜란드의 1350여 농가가 매일마다 보내는 120종의 채소, 30종의 과일로 가득차 있다. 웬만한 도매시장보다도 더 큰 규모로 들어선 물류기지를 운영하는 이곳의 주인은 산지 농민들이다.
웬만한 극장 크기 규모인 이곳 경매장을 들어가보면 깨끗한 시설에 다시 한 번 놀란다. 거대한 전광판이 경매장 앞에 자리하고 있고, 맞은 편으로는 150석에 달하는 좌석이 계단식으로 설치돼 있다. 각 좌석마다 컴퓨터 단말기가 설치돼 있어 경매 참여자들은 몇 차례의 버튼 조작만으로 경매에 참여가 가능하다.
이곳에서 이뤄지는 경매는 한국 도매시장에서 진행되는 경매와는 다른 면이 많다. 우선 농산물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농산물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경매를 진행하는 한국의 시장과 달리, 이곳에서 농산물은 물류창고에 있을 뿐 구매자들은 농산물의 등급 정보만으로 경매에 입찰한다. 품질에 대한 신뢰가 높은 대신 농산물이 입고될 때 엄격한 검수과정을 거친다.
그러다보니 이곳 경매장은 마치 증권거래소처럼 깨끗한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컴퓨터 단말기에서는 판매 농산물에 대한 정보를 할 수 있고, 여기서 바로 경매에 참여할 수 있다. 덕분에 이곳에서는 인터넷으로 경매에 참여하는 구매자의 비중도 크다. 직접 경매장을 찾는 구매자들은 전체의 3분의 1정도로 나머지 구매자는 유럽지역 사무실이나 자택에서 인터넷으로 경매에 참여한다.
경매 방식이 다른 점도 눈에 띈다. 낮은 가격에서 높은 가격으로 올라가는 한국 시장의 경매방식과 달리, 이곳에서는 전일 거래가격에서 일정금액을 추가한 값을 최고가를 설정한 뒤 가격을 낮춰가는 방식으로 경매가 진행된다. 전광판과 단말기 모니터 화면 한 쪽에는 시계모양으로 생긴 ‘경매 시계’가 자리하고 있는데, 시계바늘이 초침처럼 시계 테두리를 돌아갈 때 원하는 가격에 도달한 순간 버튼을 누르면 응찰할 수 있다.
일정 가격 이하로 떨어진 농산물은 경매에서 빠지게 되며, 이런 농산물은 자선 단체에 기부를 하거나 가축 사료용으로 내보낸다. 그마저도 안되면 폐기처분을 하게 된다. 이는 산지의 농산물 가격이 일정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벨로타의 뤼크 피터스 대외협력 담당은 “이곳의 경매수수료율은 평균 2.24%로 이익을 내기는 하지만 조합으로서 이익을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라며 “지금 우리도 우리의 앞선 세대 농민들이 투자한 것으로 이익을 내고 있는 만큼, 우리 또한 미래 세대를 위해 이익의 상당 부분을 투자에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이뤄지는 경매는 산지 경매라는 측면에서 한국 도매시장에서 벌어지는 경매와는 차이가 있다. 한국 도매시장에서의 경매가 산지에서 출하된 농산물이 도매시장에서 유통되기 전 단계에서 이뤄
피터스 담당은 “산지 입장에서는 높은 가격을 받는 것이 중요하고, 소비자에게도 낮은 가격만이 만족감을 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벨로타의 기본적인 마인드 셋”이라고 말했다.
[벨기에 신트-카텔린-바베르 = 최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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