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기계를 수입해 국내에 유통하는 중소기업 A사는 최근 해외 거래처 담당자로부터 회사 계좌번호가 바뀌었으니 바뀐 계좌로 수입대금을 입금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항상 거래하던 담당자로부터 온 메일이었기 때문에 별 의심없이 바뀐 거래처로 물품대금 1억원을 입금했다. 그런데 며칠 후 담당자로부터 대금 지급기일이 지났다는 전화를 받았다. 바뀐 계좌번호로 송금했다고 해명했지만 거래처 측은 관련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학기업인 LG화학이 최근 국제사기단으로부터 수백억원 규모 금융사기를 당해 업계에 파장이 일고 있는 가운데 금융감독원과 중소기업중앙회가 유사 사고 예방을 위한 공동대응에 나섰다. 중기중앙회는 금감원과 함께 내달부터 국내 기업들의 국제금융사기 피해예방을 위한 홍보 및 교육활동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10일 밝혔다.
국내 중소기업들이 피해를 보는 가장 대표적인 국제금융사기 유형은 A사와 같은 무역사기다. 사기단이 국내 무역업체 또는 해외 거래처의 이메일 계정을 해킹한 후 송금계좌가 변경됐다는 이메일을 보내 무역대금을 갈취하는 수법이다. 이원섭 중기중앙회 정책총괄실장은 “갑자기 결제계좌가 바뀔 경우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하되 반드시 기존에 사용하던 전화번호로 연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선불사기도 사기단이 자주 사용하는 수법이다. 거액의 유산, 비자금, 복권 당첨금 등을 나눠갖자는 명목으로 접근한 후 수수료나 보증금만 선불로 송금받고 잠적하는 방식이다. 사기범들은 주로 신흥국 고위직 관료나 유력인사를 사칭하면서 그럴싸한 공문서까지 제공하는가 하면, 제3국으로 초청하거나 직접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제안하는 방식으로 신뢰를 얻으려 한다. 이원섭 실장은 “수수료나 커미션을 먼저 입금하라고 요구하면 100% 국제금융사기로 생각해야 한다”며 “특히 직접 만나자는 제안에 응하면 사기조직에 납치될 수 있으니 절대로 응해서는 안된다”고 조언했다.
염색외화(블랙머니·화이트머니) 사기도 흔한 행태다. 사기단이 말하는 염색외화란 미국 정부가 분쟁지역 국가에 지원했던 돈을 해당 지역 권력자가 은밀히 보관하기 위해 염색해 둔 돈이다. 대량의 염색외화를 구했는데 이를 다시 달러로 바꾸려면 화공처리가 필요하다며 필요한 약품 구입비를 갈취하는 방식이다
중기중앙회와 금감원은 이 같은 국제금융사기 주요 수법과 피해유형, 대처요령을 책자로 정리해 배포할 예정이며 양 기관 홈페이지에도 관련 내용을 게재할 방침이다. 또한 금융기관, 경제단체가 기업 대상으로 실시하는 각종 행사를 통해 예방교육도 주기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정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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