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적성장포럼’에 참석한 교수들은 지금 한국 사회의 갈등 상황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게임의 룰’을 다시 짜야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참석자들은 한국경제의 가장 큰 위협 요인으로 한국의 소득격차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OECD가 발표한 주요 회원국 빈부격차(상위 10%의 소득과 하위 10%의 소득비교)는 평균 9.6배다. 한국은 OECD 국가 34개국 가운데 23등(10.1배)다.
자산 격차는 소득 격차보다 더 커서 한국은 전체 가구의 자산기준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 상위 10%에는 재벌, 대기업 정규직, 공무원 등이 속한다. 하위층에는 청년, 노인, 비정규직 등이 포진해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6월 청년실업률은 10.3%를 기록해 1999년 6월(11.3%)이후 17년만에 가장 높다. 우리 근로자들의 지위는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이냐에 따라 사실상 4개의 계급으로 나뉘어져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대규업 정규직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총액을 100으로 봤을 때 대기업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은 65, 중소기업 정규직은 49.7,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3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65세이상 노인빈곤율은 48.6%로 OECD 중 1위다. 2014년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55.5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자살자는 1만 4000여명(2013년 기준)으로 교통사고 사망자의 약 3배에 달한다.
◆자유시장경제 ‘기본축’ 한국서 작동안해
곽수일 서울대 명예교수는 14일 서양원 매일경제 국차장 사회로 열린 포럼의 첫번째 모임에서 ‘왜 포용적 성장인가’에 대해서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지난해 발간된 로버트 라이시 UC버클리대 교수의 저서 ‘자본주의를 구출하라(Saving Capitalism)’에 나온 미국 건국 초기 정치인 존 테일러의 글을 인용했다. 존 테일러는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갑자기 폭력으로 부자들의 것을 빼앗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천천히 합법적으로 사유재산을 빼앗는 것이다”라고 썼다. 곽 교수는 “우리 사회에 현재 테일러가 지목한 후자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전자와 같은 현상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곽 교수는 “10년전 은퇴 고별강연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사람이 만든 가장 좋은 제도가 자유시장경제라는 얘기를 했었다”면서 “그러나 자유시장경제가 자체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유시장경제의 기본축으로 ▲사유재산 ▲공정한 경쟁·계약·기회 ▲인센티브 ▲선택의 자유를 꼽으면서 과연 우리사회에서 이 네 가지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곽 교수는 “사유재산은 절대적으로 보호해줘야하지만 만약 10여개의 가족들이 어떤 나라의 국부를 전부 가진다면 그런 상황에서 경제성장이 지속적으로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공정한 경쟁에 있어서도 경쟁규칙을 만드는 사람이 결국 권력자라는 점에서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요즘 경제관료들이 민간에 취업하는 것과 관련해 마피아(재정부 출신 ‘모피아’, 공정위 출신 ‘공피아’)라는 용어를 쓰는데 이들이 은행이나 대기업으로 간다면 공정한 규칙이 만들어질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곽 교수는 “인센티브라는 차원에서도 신입사원은 연봉으로 3000만원을 받고 최고경영자(CEO)는 30억원을 받는 것이 아무리 시장경제라도 맞는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경제에서 사유재산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규칙이 강자에게 유리하게 정해졌거나, 다른 한쪽의 이득을 침해하는 자유가 허용된다면 이는 시장경제의 기본 틀을 깨는 것이다”라면서 “이는 결과적으로 시장경제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고 강조했다.
곽 교수는 “사회주의가 70년간의 실험끝에 1990년 붕괴되면서 시장경제가 경쟁에서 승리했다”면서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저서 ‘역사의 종언’에서 말한대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western liberal democracy)가 인류의 최종정부 형태로 남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시장경제가 인간이 만든 가장 좋은제도이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롯해 전세계적인 흐름을 보면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포용적 성장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이는 결국 시장경제의 기본축을 지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전관예우는 공정한 룰 파괴
김대식 한양대 교수는 “월소득 200만원 이하가 우리나라 전체의 50%에 육박한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가 제대로 지속성장할지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그동안 대기업이 잘되면 그 과실이 일반 국민에게 돌아가는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로 잘 살게 된다고 얘기했고 혹시나 하고 믿다보니 여기까지 왔다”면서 “성장에 따른 낙수효과는 이제 기대할 수 없고 다른 해결책을 내놔야한다”고 말했다.
지용희 서강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부를 부도덕하게 쌓았던 것이 결국 부자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빌 게이츠나 워런버핏 같은 사람이 존경을 받지만 우리나라는 부의 축적과정에서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가 많았다”면서 “최근 법조계에서 홍만표·진경준 검사처럼 전관예우를 통해서 부를 축적한 것을 보면 좌절한 청년들이 ‘헬조선’이라는 얘기를 안할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조남신 한국외대 교수도 “(최근)사법제도에서 문제가 터져나오는 것은 우리 사회를 와해시키는 아주 나쁜 사례”라면서 “우리사회의 신뢰가 깨진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는 “지금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는 대공황 직후인 1930년대와 비슷하다”면서 “당시 경제학자들이 요즘 래리 서머스가 얘기하는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와 유사한 얘기를 했었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당시에도 지금처럼 소득분배가 악화되고 투자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자산가격이 폭락하면서 소비가 줄어들고 실업이 늘어났다”면서 “유럽에서 국민투표로 브렉시트가 결정되고 미국에서 트럼프가 인기를 얻는 것은 당시 히틀러가 민주적인 선거로 정권을 잡은 것을 연상시킨다”고 경고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구조 만들어야
결국 이같은 불균형과 사회적인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혁을 통한 포용적 성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정화 한양대 교수는 “사회가 빈부격차와 불평등을 뒤집은 유형은 크게 세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유혈혁명, 둘째가 급진적 사회개혁, 셋째가 전쟁 등을 통해서 사회전체가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두번째 밖에 택할 수 없는데 1920년대 미국 사례를 보면 소위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이 과감하게 사회개혁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포용적 성장은 저성장 상태에 빠진 우리 경제가 다시 뛰게할 원동력이라고 학자들은 지적했다. 곽 교수는 “한 젊은이가 예식장사업을 해서 성공을 했는데 대기업이 진출해 예식장까지 하는 것을 보고 한국에서 사업을 접고 중국으로 갔다”면서 “대기업의 막무가내식 진출을 막는 것이 포용적 성장의 중요한 포인트”라고 말했다. 그는 “시장경제에서는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구조를 만들어줘야하는데 우리 경제를 활성화 하려면 공정한 기회를 주는 한편 낙오한 층을 껴안난 포용적 성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사각지대에 있는 노인빈곤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포용적 성장의 중요한 과제라고 학자들은 공감했다. 조윤제 교수는 “우리나라의 노인빈곤비율이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편에 속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가계실태를 보면 소득하위 10%의 80%가 노인가구층이고 하위 20%의 60%이상이 60세이상 가구”라고 지적했다.
◆포용적성장포럼 =
포용적성장포럼은 갈등이 심화되고 위기에 처한 우리 사회를 구하기 위해서는 포용적 성장이 필요하다는데 뜻을 같이하는 우리사회 원로와 젊은 교수들이 모여 출범했다
매일경제신문과 한국경영연구원(KMDI)이 공동으로 개최하며 장은공익재단이 후원한다. 지용희 서강대 명예교수, 곽수일 서울대 명예교수, 전용욱 세종대 명예교수, 조남신 한국외대교수, 김용준 성균관대 교수, 오세종 장은공익재단 고문, 서양원 매일경제신문 국차장 등이 포럼에 참여하고 있다.
첫 포럼은 이번달 14일 ‘왜 포용적 성정인가’라는 주제로 열렸고 앞으로 ‘포용적 성장의 저해요인과 과제’ ‘중소기업의 생존기반과 포용적 성장’ ‘일자리 창출과 포용적 성장’ ‘포용적 성장을 위한 법과 제도’ ‘한국 자본주의 문제점과 포용적 성장
한국경영연구원(KMDI) 1974년 경영학 전공 교수들에 의해 경영학에 기반해서 사회 발전에 기여하자는 취지에서 설립된 사단법인이다. 장은공익재단은 한국장기신용은행의 장은산업기술상을 계승하고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된 재단이다. 중소기업 육성과 각종 학술연구를 지원한다.
[이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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