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짝 다이어트했습니다. 이제 가벼워진 몸으로 뛸 일만 남았어요.”
18일 2분기 실적 성적표를 받아든 두산그룹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여기에는 최근 2년간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에서 살아 돌아온 안도감과 이제는 해 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글로벌 불황 여파로 재무위기에 빠져 선제적 구조조정에 나섰던 두산이 부활을 날개를 펴고 있다. 18일 두산그룹 지주사인 (주)두산은 연결 재무제표 기준 전년 대비 63.9% 불어난 3063억원 영업이익을 일궜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2분기(3080억원) 이후 4분기만에 분기 영업이익 3000억원대를 회복한 것. 당기순이익은 1812억원으로 762.8%나 불어났다.
재계에서는 이번 분기를 기점으로 두산이 고강도 구조조정 끝에 자력으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박용만회장 뒤를 이어 지난 3월 사령탑에 오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내부 장애물을 걷어내며 이제 자기의 색깔을 낼 수 있게 됐다.
◆중공업 선택과 집중
두산 2분기 실적을 쪼개보면 그룹 외형은 줄이더라도 알짜사업만 남기고 가겠다는 ‘선택과 집중’ 포석을 읽을 수 있다. (주)두산은 올해에만 공작기계·방산부문·보일러 등 2조5000억원 어치 자산을 팔아치우며 매출액(4조2514억원)이 7.6% 줄었다. 하지만 이익은 높이고 몸집은 줄이며 영업이익률은 4.1%에서 7.2%로 크게 높아졌다.
특히 구조조정 진통이 컸던 (주)두산 손자회사 두산인프라코어 이익률은 1년새 4.7%에서 10.7%로 두배 가량 높아졌다. 구조조정 효과가 ‘약발’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본사와 중국 구조조정과 자회사 두산밥캣 외형 성장으로 영업이익이 127% 늘었다”고 말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인건비·고정비·구매가 절감으로만 2268억원 영업이익 개선 효과를 낸 것으로 분석된다.
그룹 주력인 두산중공업은 2분기 들어 사우디아라비아 라빅 화력발전소 등 대형 사업이 끝나며 영업이익(725억원)은 22.8% 줄었다.
하지만 실적은 바닥을 다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날 두산중공업 측은 연초 잡았던 올해 수주목표(10조6000억원)를 11조4000억원으로 높여잡았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하반기부터 베트남 하노이 송하우 화력발전소 등 대형 프로젝트 공정이 가시화한다”며 “쿠웨이트 도하 해수담수화플랜트 공사 수주 등 신규 수주 매출도 잡히기 시작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선제적 구조조정 약발
두산그룹 핵심은 두산중공업, 인프라코어, 건설, 엔진 등 대규모 투자로 먹고 사는 ‘중후장대’ 사업이다.
글로벌 경기 불황 직격탄에 깊은 내상을 입으며 일각에서는 대규모 나랏돈이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이 있었지만 과감히 팔·다리를 잘라내며 ‘베드 컴퍼니’로 전락할 가능성을 자력으로 차단했다.
두산은 지난해 6월 건설·광산장비를 생산하는 두산인프라코어 프랑스 자회사 몽따베르를 미국계 기업에 1350억원에 파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자산 매각에 나섰다. 주력 시장인 중국 굴삭기 판매가 급락하자 사전 구조조정에 나선 것.
지난해 말에는 신입사원 희망퇴직까지 단행하며 여론 뭇매를 맞기도 했지만 올해 방위산업 부문(두산DST), 한국항공우주(KAI) 지분, 공작기계사업부, 배열회수보일러(HRSG) 사업 등을 잇따라 팔아치우며 악착같이 실탄을 마련했다. 2년간 이렇게 조달한 자금만 3조6000억원에 달한다.
올 하반기에는 두산밥캣 상장 등 대형 기업공개(IPO)가 예정됐다. 두산 측은 밥캣 상장이 마무리되면 그룹 차입금이 11조원에서 8조원대로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밥캣 IPO까지 완료되면 두산에서 당분간 유동성 문제는 제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물 탈출한 박정원 시대
이같은 선제적 구조조정 ‘뒷심’에는 올해 그룹 키를 잡은 박정원 회장 의중이 강력히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박 회장은 “상반기까지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마무리하라”고 경영진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재계 관계자는 “박정원 회장 첫 관문은 그룹 생존을 위해 얼만큼 제값 받고 자산 매각을 성사할지 여부였는데 무난히 통과했다”고 평가했다.
이제 박 회장은 실적 바닥을 다진 중공업 부
두산 고위 관계자는 “올해 창업 120주년을 맞은 두산이 연료전지와 장비 생산 로봇 산업 분야에서 차세대 성장 동력을 발굴한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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