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발 물류대란을 해소하기 위한 자금지원액이 1600억원까지 늘어난 한진해운은 한숨을 돌렸지만, 여전히 물류대란의 완전 해소까지는 갈 길이 멀다.
한진해운은 확보한 자금으로 하역을 하기 위해 해외 하역업체들과 하역료 협상을 해야 하고, 압류금지명령 승인을 받아 입항 가능 항구를 늘려야 한다. 하역된 화물을 최종 목적지까지 보내는 책임은 포워딩업체(운송 물류의 제반 업무를 대행하는 업체)들이 지고 있다.
23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전날 대한항공과 산업은행이 한진해운의 매출채권과 보유 부동산을 담보로 잡고 각각 600억원, 500억원을 지원키로 해 하역작업에는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 자금으로 압류금지명령(스테이오더)이 승인된 나라의 거점 항만에 하역료를 지불하고 한진해운 선박의 화물을 내릴 계획이다.
한진해운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400억원),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100억원), 대한항공으로부터 지원받은 1100억원을 어느 항구에 투입할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중이라고 이날 밝혔다. 업계에서는 우선 싱가포르항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화물을 하역하기로 한 거점항만 중 가장 많은 7척이 하역을 해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항 다음으로 미국 뉴욕항(5척), 스페인 발렌시아(3척)·알헤시라스(3척), 독일 함부르크(3척) 순이다.
정부의 합동대책 태스크포스(TF)는 현재 외국 항만에 화물을 하역해야 하는 집중관리 대상 선박은 29척이라고 밝혔다. 지난 19일에는 집중관리 대상 선박 수가 35척이었다. 미국 롱비치항, 싱가포르항, 스페인 발렌시아항 등에서 하역이 이뤄지고 있어 집중관리 대상 선박 수는 꾸준히 줄고 있다.
한진해운의 협상력도 물류대란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자금력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앞으로 하역할 화물에 대한 비용만 싸게 협상해야 현재 배에 싣고 있는 화물을 모두 내릴 수 있어서다. 하지만 한진해운이 밀린 하역료를 빌미로 앞으로 내릴 화물에 대한 하역료를 높게 부르는 항만도 있다.
실제 싱가포르 법원은 한진해운 선박에 대한 압류금지명령을 잠정 발효했지만, 항만 하역업체들이 평소의 2배에 달하는 하역료를 요구해 하역이 지연됐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싱가포르항 하역업체들과 협상을 통해 물류대란이 발생하기 전 하역료의 50% 정도를 올려주고 계약을 했다”고 말했다. 반면 스페인에는 압류금지명령을 신청하지도 않았지만 발렌시아항 하역업체·선주사가 한진해운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원활하게 협상한 뒤 하역을 하는 중이다.
세계 각국에서 압류금지명령을 받아내는 것도 관건이다. 한진해운이 밀리고 있는 하역료·용선료·유류비 등 상거래 채무가 6000억원을 훌쩍 넘기고 있어 항만에 들어간 한진해운 선박이 하역도 하기 전에 채권자들로부터 압류를 당할 수 있어서다.
운하가 있는 파나마와 이집트에서도 압류금지명령 승인이 필요하다. 현재 미국 뉴욕항, 시애틀항에 하역해야 할 선박 중 일부가 압류 걱정에 파나마·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지 못하고 운하 입구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고 정부 합동대책 TF 관계자는 설명했다.
하지만 압류금지명령 승인은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아직까지 압류금지명령이 승인돼 한진해운 선박이 안심하고 드나들 수 있는 나라는 미국, 일본, 영국 등 3곳에 불과하다. 싱가포르는 잠정 발효 상태이고 벨기에는 승인 여부를 심사하는 중이다. 정부 합동대책 TF 관계자는 “독일 법원은 이날 압류금지명령을 승인했지만 한진해운 선박이 채권자들의 압류를 피하기 위해선 선박별로 승인을 다시 받아야 한다”며 "독일 함부르크에 하역할 예정인 선박 3척은 개별 승인까지 받았다"고 설명했다. 한진해운은 네덜란드, 스페인, 이탈리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호주, 인도, 캐나다, 벨기에, 멕시코 등에 준비가 되는 대로 압류금지명령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이 같은 과정이 원활히 이뤄져 화물을 모두 하역해도 이를 최종 목적지까지 보내는 문제가 남는다. 이는 포워딩업체의 몫이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