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 그룹 총수 호통 청문회 우려…예행연습으로 청문회 준비 '올인'
↑ 사진=연합뉴스 |
대한민국 9대 그룹에 비상등이 켜졌습니다. 여야 정치권이 23일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 증언대에 총수 9명을 세우기로 최종 확정한 것입니다.
이미 검찰 조사 때 모든 것을 밝혔기 때문에 별도의 국정조사 청문회는 불필요할 뿐 아니라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도 악영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의견을 직간접으로 피력해온 재계는 이제 국회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입니다.
당초 예정보다 하루 늦어진 내달 6일 1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불려 나오는 총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손경식 CJ 회장 등 8대 그룹 총수와 GS그룹 회장인 허창수 전경련 회장 등 9명입니다.
조사실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으면서 검사의 질문에 답하는 검찰 수사와 달리, 국정조사 청문회는 전 과정이 TV로 생중계된다는 점에서 증언대에 서는 총수나 기업 모두에 큰 부담입니다. 총수의 발언 한마디가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1988년 '5공 청문회' 때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일해 재단에 출연한 이유에 대해 "정부의 기분을 나쁘지 않게 해서 모든 것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시류에 따라 돈을 냈다"고 한 말은 지금까지 회자됩니다.
이번 청문회도 미르·K스포츠 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배경 등이 주된 조사 내용이 될 전망입니다.
재계는 무엇보다 진상규명은 뒷전으로 밀리고 총수들을 카메라 앞에 세워놓은 채 의원들이 일방적으로 호통을 치는 청문회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검찰의 소환 조사를 통해 재단 출연금 모금 등과 관련된 내용이 이미 확인됐는데도 굳이 총수들을 국회로 불러내려는 것은 공개적으로 망신주기가 목적이 아니겠느냐는 게 재계의 시각입니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청문회에 불출석할 경우 국민적 지탄을 받게 될 것으로 우려해 울며 겨자 먹기로 청문회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각 그룹은 총수들의 발언 한마디 한마디가 방송을 타게 되는 상황을 앞두고 법무팀 등을 중심으로 대응전략 수립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대책팀을 구성해 예상질문을 미리 뽑고 답안지를 만든 뒤 여러 차례에 걸쳐 예행연습까지 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습니다.
일부 그룹은 대형 로펌을 선정해 청문회 답변을 준비한다는 소문도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청문회에 참여하는 특위 위원들을 접촉해 예상질문을 사전에 파악하는 방안을 고려했으나 자칫 그같은 사실이 알려질 경우 엄청난 역풍을 맞을 수도 있어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검찰의 칼날을 가장 정면에서 받고 있는 삼성그룹은 "기본 방침이 국정조사에 적극 협조해서 의혹이 남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라며 원칙론만을 내세운 채 이재용 부회장의 청문회 준비 등과 관련해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청문회에 출석하면 지난해 6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직접 나서 사과를 한 이후 약 1년 반 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셈이 됩니다.
이 부회장은 삼성이 승마협회 지원 프로그램 형식으로 최순실 씨 측에 35억원을 보낸 이유 등 최씨 모녀 지원과 관련된 의혹에 대한 답변을 준비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차그룹은 1938년생으로 해가 바뀌면 한국 나이로 80세가 되는 정몽구 회장이 장시간 증인석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점에 우려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9대 그룹 총수 중 최고 연장자인 정 회장은 작년 7월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할 때도 다른 그룹과 달리 김모 부회장을 배석시켜 보필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청문회에는 홀로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정 회장은 재단 출연 배경 외에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의 강요로 흡착제 제조사인 KD코퍼레이션으로부터 11억원 상당의 납품을 받게 된 과정, 최순실 씨가 실소유주로 있는 광고회사 플레이그라운드에 62억원 어치의 광고 일감을 몰아준 의혹 등에 대한 답변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출석에 대비해 법률 자문 등을 받아가며 예상 질의에 대한 답변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두 재단에 대한 출연이 최 회장 본인이나 동생 최재원 부회장의 사면과 연관성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고, 검찰도 뇌물죄 적용과 관련해 '대가성 여부'를 계속 수사한다고 밝힌 만큼 이런 의혹에 대한 답변을 집중적으로 준비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올해 2월 SK그룹이 K스포츠재단으로부터 80억원의 추가 출연 요청을 받고서 30억원을 역제안했다가 결국 '없던 일'이 된 것과 관련, 청와대의 요구에 대한 '사실상 거절의 표시'였다는 점을 부각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지난해 두 재단에 45억원을 출연한 뒤 올해 다시 70억원을 K스포츠재단에 추가로 냈다가 검찰 압수수색 직전에 돌려받은 사실이 드러난 롯데그룹도 신동빈 회장의 청문회 출석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롯데 관계자는 "남은 기간 국정조사 예행연습을 하겠지만, 이미 K스포츠재단과 접촉한 임원들과 신동빈 회장이 모두 검찰 조사를 받고 나왔기 때문에 새로 국정조사에서 밝힌 만한 내용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의원들의 질문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되는 '70억원 대가성' 부문에 대해서는 "뭔가 바라고 돈을 준 것이라면 4개월에 걸쳐 700여명의 임직원이 강도 높은 검찰 수사를 받고 20명 이상의 오너일가와 임직원이 기소된 것이나, 기부액을 절반으로 깎으려고 시도한 사실 등을 설명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한진그룹 측은 국정조사에서 미르재단 출연뿐 아니라 조양호 회장의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사임, 한진해운 법정관리 등 다양한 질문이 나올 수 있다고 보고 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르·K스포츠재단의 출연과 이재현 회장의 사면과의 관련성, 이미경 부회장에 대한 청와대의 퇴진 압력 등의 의혹에 휩싸인 CJ그룹의 손경식 회장, 전경련 회장을 겸하고 있는 허창수 GS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10여일 뒤에 있을 청문회에 대비해 준비 작업을 시작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들 9대 그룹은 최순실 게이트의 파장 속에서도 가급적 정기인사나 내년 사업계획 수립 등을 예정대로 해나가겠다는 입장이나 검찰 수사에 이어 국회 국정조사, 특검 수사까지 예정돼 있다 보니 적지 않은 차질과 혼선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두 차례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한 삼성그룹은 내달 초로 잡혀 있는 사장단 인사를 늦춰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고, 이미 10월 초에 사장단 인사를 단행한 한화그룹은 후속 임원진 인사를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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