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마이너리티(minority)’는 정보통신기술(ICT)의 숙명일 지도 모르겠다. 의료·금융 등 다른 영역과 결합할 때 ICT는 주연보다 조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메인 부문을 지원하는 보조 업무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한 탓이다. 국내 이동통신사들 합작사가 대표적 예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국내 이통사들은 포화상태에 도달한 통신시장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금융, 의료, 엔터테인먼트 등과 결합하며 ‘영토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 10월 모바일 금융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하나금융지주와 자본금 500억 원 규모 핀테크 업체 ‘핀크’를 설립했다. SK텔레콤이 플랫폼 기술과 빅데이터 분석을 맡고 하나금융은 이를 기반으로 모바일 자산관리, P2P(개인간) 금융 등을 개발한다. SK텔레콤은 엔터테인먼트와도 손을 잡았다.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업체 SM과 합작법인 설립을 진행중이다. SK텔레콤이 보유한 옥수수, Btv 등 미디어 플랫폼과 SM 콘텐츠를 결합해 뉴미디어 산업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헬스케어도 ICT와의 융합이 활발한 분야다. KT는 지난해말 바이오업체 젠큐릭스와 엔젠바이오를 설립했다. 대규모 유전자를 분석하는 KT 빅데이터 기술과 암 진단 키트를 개발하는 젠큐릭스의 결합이다. KT는 지난 5년간 암 유전자 분석 알고리즘과 진단 기술을 개발하는 바이오인포매틱스 사업을 진행해왔다. 이를 기반으로 엔젠바이오는 지난 6월 유방암 진단 키트와 소프트웨어를 출시해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 임상허가를 준비중이다. SK텔레콤도 2011년 서울대병원과 ‘헬스커넥트’라는 합작법인를 설립한데 이어 2013년 건강관리서비스 ‘헬스원’을 선보였다. 중국에 당뇨병 진단 키트를 수출하는 성과도 올렸다.
이처럼 이동통신사들과 타업종간 이종결합이 활발하지만 ICT 업체들은 어디까지나 조연에 그치고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금융, 의료 분야 등에서 사실상 기존 기술과 제품 위주로 개발이 진행된다”면서 “IT가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힘든 구조”라고 했다. 관련 법 역시 IT가 주도권을 쥐는데 큰 걸림돌이다. 금융지주회사법상 금융지주회사는 1대주주로 참여하는 자회사만 계열사로 둘 수 있다. 핀크에서 SK텔레콤이 1대 주주로 나서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한 이유다. 이달중 본인가를 앞두고 있는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 역시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금지) 규제 때문에 반쪽짜리로 출범하게 됐다. 은산분리를 완화하는 은행법 개정안과 특례법 제정안이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KT는 비금융주력자의 의결권 있는 은행 지분 보유를 4%로 제한한 은산분리 규제에 묶여 K뱅크 지분 8%(의결권 지분 4%)만을 보유하고 있다. 헬스커넥트 역시 서울대병원이 51%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SK텔레콤이 SM과 설립을 진행중인 합작법인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금융, 의료 등 분야에서 기존 사업자들이 주도권을 쥐면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파격적 혁신이 어렵다”면서 “그러나 각종 규제 때문에 지금은 정부가 하라는 것 외에 새로운 사업을 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임성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