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부서는 분위기가 엄숙해서 아침부터 뭐라 말 한마디 꺼낼 수도 없는 분위기입니다”(기획재정부 A 사무관)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오후3시 탄핵안 표결이 예정돼 있던 9일, 세종시 관가의 공무원들은 폭풍 전의 고요를 연상케 하는 미묘한 분위기 속에 업무를 이어갔다.
경제부총리 등이 새롭게 중심을 잡고 경제정책을 마련해야한다는 지적과 함께 해외투자자 등 경제 주체들을 고려할 때는 탄핵안 가결이 오히려 불확실성을 줄이는 소식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정부 입장에서 조속한 탄핵을 지지할 수도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실장급 이상이 모두 부총리를 따라 정부서울청사로 이동해 빈 기재부에서는 나머지 국과장들이 일상업무를 진행하며 국회 소식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여럿 목격됐다.
경제부처 A국장은 “이미 레임덕을 넘어서 정권이 교체기에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며 “5년 장기계획의 마지막 단계에 왔는데 더 이상 무슨 일을 추진해도 안 될거 같아서 힘이 빠진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아마 내년 초에 발표할 업무계획은 이번 정권 들어 가장 부실한 업무보고가 될 것”이라고 걱정하기도 했다. 다만 “정권이 교체되면 다시 새롭게 정책들이 제안되면서 사정이 나아지지 않겠나”며 자조 섞인 태도로 말했다.
대외업무를 맡은 B과장은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는 대통령을 탄핵 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적 불확실성을 줄이는 길”이라며 “탄핵 이후가 어떻게 이같은 불확실성을 줄여나가면서 다음 정권으로 안착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해외 업무를 보고 있는 또 다른 과장급 인사 C씨도 같은 맥락에서 “그 동안은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느냐 탄핵 당하느냐를 놓고 상황이 계속해서 변하면서 어지러웠다”며 “해외 투자자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박 대통령이 탄핵된다면 그 이후의 시스템만을 염두에 두고 의사결정을 하면 되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제거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세종시에서는 이에 앞서 부처 고위 공무원들은 해외 출장 일정을 속속 취소하는 한편 국·과장급 이하 실무진들도 미리 잡힌 일정을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사회부처의 한 과장급 인사는 “오후에 잡혀 있던 회의가 특별한 사정 없이 취소됐다”며 “타 부처 주도로 진행하는 회의였는데, 당장 급한 현안이 아니라 미룬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다들 말은 안하고 있지만 뉴스를 예의주시하면서 상황을 지켜봤다”고 말했다.
앞서 조경규 환경부장관은 당초 8일저녁에 출발해 9일 하루동안 ‘제13차 한-베트남 환경장관 회담’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7일 급히 일정을 연기했다. 매년 정례적으로 이어온 2자회담이 여름부터 계속 밀려 겨우 9일로 잡은건데 마침 탄핵안 표결일이어서 고심끝에 연기를 결정한 셈이다. 13년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온 회담이 해를 넘길 위기에 처
유경준 통계청장도 당초 ‘통계기술 ODA 관련 에콰도르 완료보고회 및 콜럼비아 착수보고회’ 출장이 12월10일부터 20일까지 예정돼 있었지만 어수선한 정국에 당초 예정돼 있던 남미 출장에 참석하지 않고 국장급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승윤 기자 /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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