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의 미래도 못보는 공무원들이 규제보다 더 큰 애로사항이다.'
'포화상태인 시장, 짙은 불확실성, 계단을 오를 때마다 턱턱 막히는 보이지 않는 장벽 등으로 정주영 신화는 옛 이야기로만 생각된다.'
대한상의가 경영자들의 절박한 호소를 담아 준비한 '제19대 대선후보께 드리는 경제계 제언문'에 등장하는 사례다.
상의는 22일 "경제계는 기득권을 먼저 내려놓고 정치권은 재계와 함께 대한민국의 미래를 고민해보자는 제안을 담았다"며 "제언문을 23일 더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5개 당대표를 찾아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언문에서는 대한민국 희망 복원을 위한 3대 틀로 △공정사회 △시장경제 △미래번영을 제시했다.
상의는 대선 때마다 구체적인 정책 요구사항을 담은 제언집을 발표했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 당시에는 9대 리스크와 함께 법인세 인상에 대한 재검토, 중구난방식 중소기업지원제도 재정비 등 구체적인 28개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이번 대선 제언집은 틀을 확 바꿨다. 상의는 "재계가 바라는 내용만을 담은 '위시리스트'가 아니라 국가경제의 핵심현안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어떤 해법이 좋을지 대선주자와 경제계가 함께 고민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언집은 전국 72개 상의 회장단의 의견을 수렴한뒤 보수·진보학자 40여명의 자문을 받았다.
재계의 일방적인 주장 외에 재계에 대한 비판도 수용했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상의는 "불투명한 경영관행과 불공정거래, 종업원들 위에서 군림하는 특권의식에서 기업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비롯된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반성문까지 내놨다. 또 "기득권을 내려놓음으로써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선언했다.
대대적인 변화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의 주문에 따른 것이다. 박 회장은 23일로 국회 방문 날짜가 잡히자 하루 일정으로 출장지인 미국에서 귀국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박 회장이 이처럼 '대화'를 통한 해법 모색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반기업정서 확산에 대한 위기감도 한몫했다.
재계에선 대선 분위기가 달아오르면서 법안논의 과정에서 경제계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염려가 커지고 있다. 국회에서는 기업의 경영권 보호 등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상법개정안, 중소기업들의 인력난 가중에 대한 염려가 제기되는 '52시간 이상 근로금지법' 등이 쏟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상의는 '공정사회 틀' 회복을 위해 경제주체 상호간의 신뢰회복과 기업지배구조 개선 및 고용 이중구소 해소를 3대 과제로 제시했다.
신뢰회복과 관련해 "불신으로 인해 규제만 늘고 있다"며 신뢰만 회복해도 4% 성장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지배구조와 관련해서는 "현재 논의되는 상법개정안은 주식회사의 기본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시장경제원칙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산업화시대 도입한 근로자보호제도는 정규직만 혜택을 보는 상황인만큼 "정규직의 양보와 사회안전망의 확충을 통해 고용 이중구조를 해소하자"고 제안했다.
'시장경제의 틀' 구축을 위한 3대과제로는 △ 정권이 바뀌어도 중장기 경제정책의 일관성 유지 △네거티브 방식(금지하는 것 외에 모두 허용)으로 규제정책 전환 등을 통한 혁신기반 구축 △ 소상공인 보호에 치중한 서비스산업 관점을 산업 육성차원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독일 게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자신의 재선을 포기하면서까지 노동개혁을 추진했다. 이에 비해 우리의 경우엔 동북아금융허브(노무현 정부), 녹생성장(이명박 정부), 창조경제(박근혜 정부)로 중장기 국가정책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또 "정부가 방향을 정하고 기업이 노력하는 식의 과거 '주식회사 대한민국 성장공식'은 이제 포기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4차산업혁명에 맞춘 인프라
'미래번영의 틀'에 대해서는 △ 재원조달 원칙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복지 확대 △ 산업계 수요를 반영한 창의성·유연성 교육 전환 △ 기업문화와 이민정책 개선을 통한 노동인구 확대 전략 등을 3대 과제로 꼽았다.
[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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