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반도체를 그룹의 핵심으로 키우기 위한 SK 역사상 최대 도전에 나선다.
올해 7조원의 공격적인 반도체 투자를 진행하는 동시에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인 도시바 반도체사업부(도시바 메모리) 인수를 성사시켜 '반도체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다.
최 회장은 지난 13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서울캠퍼스에서 특강을 마친 뒤 "지금 진행되는 (도시바메모리) 입찰은 법적구속력이 있는 입찰이 아니라서 금액이 큰 의미가 없다"며 "(법적구속력 있는 입찰이 시작되면) 본격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5월 중 진행되는 2차 입찰에서는 공격적으로 참여해 반드시 인수를 해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이 오는 21일 시한인 출국금지가 해제되는 대로 일본과 미국 출장을 통해 인수전에 참여할 우군 확보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최 회장이 도시바 반도체사업부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낸드플래시 메모리부문의 성장 가능성 때문이다. 도시바 메모리의 주력인 낸드플래시 메모리는 전원과 함께 기록도 사라지는 D램과 달리 전원이 꺼진 상태에서도 기록이 유지된다. 하드디스크를 대체하고 있는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에 낸드플래시가 주로 쓰이면서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 볼때 SK그룹이 새 핵심 성장동력으로 ICT(정보통신기술) 육성에 나선 상황에서 낸드플래시부문이 세계 5위로 상대적으로 약한 게 고민이었다. SK하이닉스가 올해 7조원을 투자해 충북 청주 신공장 증설을 하는 것도 낸드플래시 역량 강화를 위한 것이다.
지난해부터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돌연사(써든데스)할 수 밖에 없다"며 위기감을 강조하는 최 회장은 반도체 사업을 새로운 성장 축의 하나로 판단하고 있다. 이른바 '4차산업혁명'의 본격화와 함께 반도체 시장이 "불황이 사라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호황기에 접어들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난해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243억파운드(약 36조원)에 사들인 ARM가 반도체 설계 업체인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또 주변 반대를 무릅쓰고 인수한 SK하이닉스 인수가 성공했다는 '승자의 기억'도 최 회장이 반도체에 집중하는 이유다. 2012년 하이닉스가 SK로 간판을 바꿔단 이후 그룹의 ICT관련 사업이 빠르게 성장했다. 2011년 그룹 전체로 17조6000억원에 머물렀던 ICT 매출(SK텔레콤·C&C 등)은 지난해 37조4000억원 수준으로 배이상 늘었다.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은 이같이 SK그룹으로서는 대단히 중대한 결정이다. 당연히 최 회장이 주도를 해야했다. 하지만 최 회장이 출국금지에 묶인 탓에 해외 출장 등은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과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나서고 있는 상태다. 둘다 핵심 경영진이지만 도시바메모리 공동 인수에 나설 파트너 협상 등에 있어서는 총수가 직접 나서야하는 탓에 어려움이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재계에선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기소하는 17일 께에 최 회장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리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 회장에 대한 출금을 하루라도 빨리 풀어서 경영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진행된 도시바메모리 1차 입찰에는 총 10여사가 참여했다. 도시바와 반도체 업계 등에 따르면 현재 유력한 인수 후보는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대만 훙하이(폭스콘), 미국 통신회사인 브로드컴과 웨스턴디지털 등 4개사다. SK하이닉스가 인수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난관이 적지 않다. 아사히신문을 비롯한 일본 언론 등에서는 14일 미국 브로드컴을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보도했다. 금액면에서는 훙하이가 3조엔으로 경쟁사들에 비해 1조엔 가량 높은 금액을 제시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를 비롯해 도시바 내외부에선 "첨단 기술 유출 염려가 있는 대만·중국 기업에 넘겨서는 안된다"는 반대여론이 높다.
SK하이닉스와 웨스턴디지털의 경우엔 현재 반독점법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도시바메모리는 주력인 낸드플래시 메모리 시장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이 20%(2016년 기준)이다. SK하이닉스(10%)나 웨스턴디지털(16%)이 인수할 경우 시장점유율이 30% 수준으로 올라서게 된다. 따라서 두 회사가 인수에 성공할 경우 미국과 EU 등에서 당국의 반독점조사를 거쳐야 한다.
최근 이뤄진 도시바의 의료기기부문 매각 때는 반독점조사에만 9개월이 걸렸다. '6월 최종 인수자 결정, 내년 3월 매각 완료'라는 원칙을 세운 도시바
여기에다 도시바메모리의 주력 욧카이치공장을 공동 운영중인 샌디스크의 모회사인 웨스턴디지털이 독점 교섭권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변수다. 일각에선 웨스턴디지털 요구로 인수전이 중단됐다는 관측도 나왔으나 도시바는 "인수 절차는 정상적으로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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