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6시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 원전 1호기 주제어실. 국내 최초 원자력발전소인 고리1호기의 역사적인 영구정지의 첫 단계로 빨간색 '터빈발전 수동정지' 버튼이 눌러졌다. 고리1호기는 전날만 해도 정상적으로 전기를 생산하면서 주 계기판의 발전기 출력 표시창에 603MW(출력 99.3%)라는 숫자가 선명했다. 그러나 이날 터빈 수동정지 버튼이 눌러지고 전기 공급이 끊기자 해당 숫자는 '0'(출력 0%)으로 바뀌었다. 발전기 정지에 이어 오후 6시 38분에는 원자로도 정지됐다.
300도까지 올라가 있던 원자로 냉각재가 식기 시작해 18일 24시(19일 0시) 93도까지 떨어졌다. 고리1호기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이 순간 '영구정지' 판정을 내렸다. 의사가 명을 다한 환자에게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을 연상시킨다. 고리1호기는 지난 1978년 4월 첫 전기를 생산한 이후 39년 2개월 만에 영면에 들어갔다.
고리1호기는 1971년 11월 본공사에 착공해 1977년 6월 원자로가 최초임계에 도달해 불이 붙여진 이후 1978년 4월 본격적인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총 건설비용은 1560억원이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 470억원의 3배가 넘는 단군 이래 최대 사업이었다.
고리1호기는 40년 동안 총 15만5260GW의 전기를 생산했다. 이는 부산 전체 전력사용량의 34배에 해당한다.
2007년 설계수명 30년이 만료됐지만 10년 간 수명이 연장돼 지금까지 전력을 생산해 왔다. 영구정지가 결정된 건 2015년 6월이다. 당시 국가에너지위원회는 고리1호기 영구정지를 한수원에 권고했고, 한수원은 2차 계속운전 신청을 하지 않았다. 지난 9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한수원이 제출한 영구정지 운영변경 허가신청을 의결하면서 고리1호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지난 1979년 입사 이후 고리1발전소에서만 38년을 근무해 온 박지태 고리1발전소장은 "외국에서는 두 차례 수명연장을 통해 60년 이상 운영하는 원전도 있기 때문에 (영구정지에) 아쉬움이 있긴 하다"며 "그러나 경제성, 방사능폐기물 수용성, 해체산업 육성 등을 고려해 내린 결정인 만큼 고리1호기 영구정지를 한국 원자력의 새로운 성장 기회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고리1호기는 수명을 끝냈지만 한수원과 한국 원자력업계에 원전 해체라는 그동안 가보지 않은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원전 해체는 △해체 준비(해체계획 등 수립) 2년 △사용후핵연료 냉각 및 반출 5년 △제염(방사성 오염물질 제거)과 시설물 철거 8년 △부지 복원 2년의 네 단계를 거쳐야 한다. 모든 과정을 마치는데 최소 15년이 걸릴 예정이다. 방사능에 오염된 원전 시설과 설비를 완전히 제거하고, 폐연료봉 등 폐기물 처리도 만만치 않다. 땅도 원전이 지어지기 이전 상태로 돌여놓고 다른 용도로 쓸 수 있게 해야 한다. 토양이 완전히 복원되는 데는 40년 이상이 걸릴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실제 1967년 영구정지된 미국 CVTR 원전은 완전 해체에 42년이 걸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고리1호기 해체 비용을 6437억원으로 잡아놓고 있다. 그러나 실제 원전 해체비용에 들어가는 돈은 1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고리1호기 해체를 계기로 한국은 440조원(2014년 기준)으로 추정되는 전 세계 원전 해체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는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611기 원전이 지어졌고, 현재 449기가 가동 중이다. 2020년을 전후로 1960~80년대 지어진 원전 대부분이 설계수명을 다하게 된다. 2015~2019년 76기, 2020년대 183기, 2030년대 127기 원전이 설계수명을 끝낸다. 거대한 원전 해체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딜로이트는 2030~2049년 원전 해체 시장 규모를 총 185조원, 연 평균 9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전 세계에서 해체를 완료한 원전은 19기에 불과하다. 원전 해체 경험을 갖고 있는 나라는 미국(15기) 독일(3기) 일본(1기) 세 나라 뿐이다. 미국을 제외하곤 뚜렷한 강자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이 선제적으로 해체 경험을 쌓게 되면서 큰 과실을 따먹을 가능성이 커진다.
한수원은 현재 원전 해체에 필요한 58개 기술 중 41개를 확보했다. 고리1호기 본격 해체에 돌입하는 오는 2022년까지 5년 동안 나머지 관련 기술 확보에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부산 기장 = 고재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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